기자도 시민도 알아야 하는 저널리즘

[김성호의 독서만세 178] 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등록 2023.02.05 14:09수정 2023.02.0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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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가까이 기자로 일했다. 일생 글을 쓰며 살자고 뜻을 세운 뒤로 얻을 수 있는 직업 중 기자가 단연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신문사엔 나와 같은 이유로 기자일을 택한 이들이 없지 않았다.

왜 아니었겠나. 마크 트웨인, 찰스 디킨스, 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모두 같은 이유로 기자를 선택했었다. 한국에서도 김훈과 기형도 같은 걸출한 작가가 기자로 일했다. 독자를 움직인 걸출한 작가들의 전직을 살펴보다 보면 기자와 비행사, 항해사 같은 직업이 유독 많단 걸 알 수 있다.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도록 하는 일이 창조의 밑바탕이 된다는 걸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적지 않았다. 수많은 업무가 시시때때로 닥쳐왔고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채 겪고 다루어야 하는 사건들이 많았다. 개중에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루고 써냈던 기사들도 수두룩했다. 그럴 때면 그저 글이 좋아 시작한 나와, 세상이며 사회에 관심이 깊어 기자 일을 고른 이들 사이에 적잖은 격차가 느껴지는 듯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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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책 표지 ⓒ 한국언론진흥재단

 
저널리즘이 뭔지 아시나요?

이따금 선배를 찾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고민을 토로한 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끝에선 대개 "기자 일은 누구한테 배우는 거 아니야"란 냉랭한 답이 돌아오곤 했다. 때로는 나보다 더 헤매고 있는 누구의 현실을 마주하기도 했다. 과연 정말 그런 걸까.

5년의 시간 동안 나는 저널리즘이란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 내가 훨씬 자주 마주한 건 마감이며 매출이며 클릭수와 같은 이야기였다.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조지프 퓰리처가 경쟁하던 언론의 황금기에야 콘텐츠가 돈이 되었겠으나 오늘날 언론 가운데 콘텐츠의 질을 제일의 미덕으로 삼는 언론은 대중의 생각만큼 많지가 못하다.

언론사를 그만둔 뒤 낯선 이들과 100여 번의 모임을 가졌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전시를 즐기며 감상을 나누는 모임들, 그렇게 만난 이들이 벌써 수백을 헤아린다. 그 모든 자리에서 나는 언론에 대해 질문하곤 하였다. 신뢰하는 언론사와 기자가 있는지, 좋아하는 언론사와 기자가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책과 영화, 글과 전시를 애정하는 수백 명의 인간 가운데 언론과 기자를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가 나는 궁금하였다.

언론은 매일 새롭게 실패하고 있다

놀랍게도 채 스무 명이 되지 않았다. 비율로 따지면 10퍼센트가 되지 않는다. 작가와 감독, 배우며 화가들을 줄줄 꿰는 이들이 기자와 언론사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젓기 일쑤였다. 어쩌다 등장하는 이름들은 대개 언론계의 스타로 한정됐으나 그조차 지지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몇몇 이는 가디언의 프리즘 사건 보도 같은 외신의 걸출한 보도를 줄줄 꿰고 있으면서도 한국 언론은 신뢰하지 않는다 했다. 그저 성향 때문이 아니라 보도의 수준과 철학 때문이라 하는 그 말에 나는 납득할 밖에 도리가 없었다.

일 년여 간 수많은 이들을 만나 거듭 질문을 던지는 동안 나는 내심 우려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언론은 독자며 대중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깊어지지도 충실해지지도 못했다는 창피한 이유로 말이다. 나름대로 투철하게 해왔다고 믿었던 나의 지난 시간 역시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단 걸 알았다. 민망하고 참담하였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내가 나의 저널리즘을 포기하고 언론 밖으로 나온 뒤 집어든 책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이 책은 번역이 아쉽다는 합당한 평에도 불구하고 읽어봄직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특히 한국의 언론이 무언가 잘못돼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대목이 적잖을 것이다.

우리가 저널리즘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

저널리즘을 행하는 이들조차 무엇이 저널리즘인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 미국의 기자들은 저널리즘이 너무나 자주 오용되며 가끔은 고민조차 되지 않는 현실에 주목했다.

그들은 기자라는 직업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상당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미용사들보다도 직업적 교육을 적게 받은 채 업무에 임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리고 사건에 치이고 마감에 치이다 제가 무엇을 잘못하는지도 모른 채 수많은 잘못들을 하고 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언론이 그 역할의 중요도 만큼 충실히 기능하고 있다고 설득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언론을 포기하고 조롱이며 비난이란 쉬운 선택을 하기엔 그들이 지닌 가능성과 역할이 너무나도 아깝다. 언론의 가능성을 시민 스스로 포기한다면 그 다음은 더욱 중요한 무엇을 포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언론을 더 잘 알아야만 한다. 언론을 망치려는 이들로부터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언론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 책보다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저술을 나는 얼마 알지 못한다.
 
몇몇 부장들은 두 종류의 독자가 있다는 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 가지는 우리가 무엇을 쓰든 그 문제에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 군이다. 이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기사를 읽는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비판적일 것이다. 다른 종류는 단지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시간이 부족하다. 이 사람들이 어려운 독자들이다. 이들은 기사를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이들을 당겨오는가이다. 기자가 머릿속에서 해야 하는 게임은 그러면 어떻게 정확하고 무게 있게 기사를 써서, 특히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기사를 써서, 예를 들면 대학 기숙사 문제나 개인 교습 문제를 전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다. -59p
회사 안에서 공익적 의무를 주장했던 기자들은 순진하거나 구식이거나 아니면 어려운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당신이 경영하는 사람과 대화에서 '공공서비스'를 언급하면, 그들은 당신을 이상주의자, 혹은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부르며, 당신의 얘기를 듣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편집 책임자로 2000년부터 2005년 사이 5년 동안 무려 13개의 퓰리처상을 받게 한 존 캐럴 씨의 말이다. 그는 그 뒤 시카고에 있는 모회사 트리뷴 사의 임원들과 싸우다 회사를 떠났다. -106p
덧붙이는 글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 개정 4판

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 (지은이), 이재경 (옮긴이),
한국언론진흥재단, 2021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한국언론진흥재단 #빌 코바치 #톰 로젠스탈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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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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