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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철길이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진다더니

[정면교사 일본 여행] 구마모토에서 타테노 가는 두 량짜리 기차

등록 2023.02.07 22:05수정 2023.02.0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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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발이 묶인 지 꼭 3년 만의 해외 나들이였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건 아니다. 마스크에 익숙해지듯 주말이고 휴가고 아무 데도 가지 않다 보니 무덤덤해지고 몸에 낀 역마살도 달아났다. 애초 이번 휴가도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할 요량이었다.

와중에 '기회'가 찾아왔다. 이태 전부터 불면증이 이따금 집적대기 시작했는데, 요 며칠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내 밤을 괴롭혔다. 그나마 주말이면 낮과 밤을 맞바꾼다 여기면 됐는데,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주중이면 말 그대로 잠들기 전쟁을 벌여야 했다.

바다 건너 외딴곳에 숨기로 했다. 휴가가 길다면야 저 멀리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를 염두에 뒀을 텐데, 호주머니조차 홀쭉해진 마당에 언감생심일 뿐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나라마다 국경이 완전히 열리지도 않았다. 이모저모 따져본 끝에 정한 곳이 이웃 나라 일본이었다.

우리 말을 한 마디도 들을 수 없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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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에서 타테노에 이르는 텅 빈 기차의 객실 내부. 정복 입은 승무원의 안내방송만 요란하다. ⓒ 서부원

 
알다시피,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다. 최근 코로나로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하고 엔저 현상까지 겹치면서 그러잖아도 한국인 관광객 천지였던 일본이 대세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사실상 중국으로의 여행이 봉쇄된 덕도 컸다.

그런 일본에서 외진 섬이 아니고서야 외딴곳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일본 지도를 펼쳐놓고 나름 세워놓은 기준을 대입해 보았다. 가깝지만 찾아가기 불편한 곳, 자동차와 사람들 시끌벅적한 소리보다 새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곳, 잿빛 콘크리트가 초록빛에 뒤덮인 시골, 무엇보다 우리 말을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는 곳이면 제격이었다.

그렇게 낙점된 휴가지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일본 섬 큐슈였고, 큐슈에서도 오지라는 아소산 중턱의 조용한 온천 마을 미나미아소였다. 큐슈 중심 도시인 후쿠오카에서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이 매우 불편한 곳이다. 더구나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으로 끊긴 철도와 도로가 아직 다 복구되지도 않았다.

가깝지만 복잡한 여정을 잠깐 소개하면 이렇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지하철로 하카타 기차역으로 간 다음, 신칸센을 이용해 구마모토에 도착한다. 구마모토 기차역에서 오이타나 벳푸행 기차로 갈아탄 후 타테노 역에서 내린다. 그곳에서 다시 마을버스를 타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기다리는 시간을 빼면, 2시간 남짓이면 족할 가까운 거리다. 다만 갈아타기가 번거롭고 기차와 버스 시간이 연동되지 않아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그만큼 여느 곳에 견줘 찾는 외지 관광객이 드물다는 뜻이고, 굳이 가자면 구마모토 등에서 렌터카를 이용해야 할 성싶다.

큐슈 여행의 기점인 후쿠오카의 하카타 기차역은, 조금 과장한다면, 마주치는 사람 열에 서넛은 한국인 관광객일 정도로 북적인다. 그래선지 기차역 곳곳에 물품 보관함이 즐비하지만,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모든 서비스에 한국어가 지원돼 의사소통의 불편함은 전혀 없다.

'한국보다 더 한국 같은' 후쿠오카와 가토 기요마사의 성곽 유적으로 유명한 구마모토를 벗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말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평일이라선지 한국인은커녕 캐리어를 끌거나 배낭 차림을 한 일본인 관광객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기차에 손님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구마모토 기차역에서 공항이 있는 히고오즈까지는 직장인과 현지 주민들로 보이는 이들이 분주히 타고 내렸지만, 이후로는 객차 한 량에 승객은 고작 몇 명뿐이었다. 언뜻 나만을 위한 전용 열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정복 차림의 승무원은 텅 빈 객실을 향해 쉼 없이 안내방송을 했다.

인적 드문데... 기차역 새로 짓는 이유

기차는 달랑 두 량으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었다. 원래부터 그랬는지, 승객이 적어서 줄였는지 알 수 없지만, 레일만 없다면 두 대를 이어붙인 기다란 굴절 버스처럼 보인다. 레일의 간격이 우리보다 좁아선지 밖에서 보면 흡사 장난감 같기도 하다.

타테노 역에서 내린 사람 역시 나뿐이었다. 역 주변은 썰렁하다 못해 황량했다. 툭 차면 바스러질 것 같은 낡은 플랫폼 위에 매표기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미나미아소로 가는 철길은 여기서부터 끊겨 있다. 한창 복구 중이라지만, 주변 상황을 보건대 하세월일 듯싶다.

미나미아소란 아소산 남쪽이라는 뜻이다. 7년 전 대지진 당시 피해가 가장 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군데군데 잘린 아스팔트 도로와 무너진 다리들이 당시의 참상을 보여준다. 지금은 족히 100m는 돼 보이는 협곡 위로 새 다리가 지어져 고립된 주변 마을들을 이어주고 있다.

타테노에서 종착역인 오이타나 벳푸로 가려면, 기차의 앞뒤 방향을 바꿔야 한다. 여기서부터 이른바 '스위치백' 구간이다. 가파른 고갯길을 넘기 위해 지그재그로 철길이 놓여 있어, 그것만으로도 색다른 체험이다. 우리나라에도 강원도 삼척과 도계 사이 철길 구간에 남아 있다.

역 바로 앞이 마을버스 정류장이다. 버스 그림이 그려진 표지판이 없다면, 그곳이 버스 정류장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주변엔 메이지 일왕 재위 시절 창립됐다는 만둣가게 하나뿐이다. 그나마 그 광고 문구가 아니었다면, 그곳이 식당인지 일반 가정집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다.

마을버스를 타려면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역에서 내린 사람이 나뿐이니, 아마 마을버스에 타는 사람도 나뿐일 것이다. 언뜻 보니 기차가 다니는 횟수보다 버스 시간의 간격이 더 넓은 듯하다. 철길이 끊기지 않았다면, 숙소 근처 역까지 기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하릴없이 타테노 역 주변 마을을 서성였다. 폐교한 지 꽤 돼 보이는 소학교 건물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과연 지금 사람이 사나 싶은 낡은 집들이 비탈진 산등성이에 늘어서 있고, 그 아래 새뜻한 도로에는 주전부리를 파는 간이 휴게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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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된 타테노 소학교의 흉물스러운 모습. 바로 옆이 타테노 기차역이다. ⓒ 서부원

 
새삼 깨닫게 되지만, 마을의 중심은 기차역이었다. 을씨년스럽게 느껴질지언정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이자 주변 마을들을 실핏줄처럼 이어주는 결절점이었다. 그제야 기차역 앞에 세워지고 있는 큼지막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역사로만 사용하기에는 규모가 컸다.

승객이 고작 몇 명에 불과한 기차 노선을 고집스럽게 운영하고, 소학교마저 폐교한 마을에 다목적 기차 역사를 짓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부러웠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투자라기보다 현지 주민들을 위한 배려처럼 느껴져서다. 미나미아소를 잇는 철길이 복구되면, 타테노는 스쳐 지나치는 간이역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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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테노 기차 역사 신축 현장. 규모로 볼 때 다목적 건물로 사용될 듯하다. ⓒ 서부원

 
'철도 대국' 일본에서 기차는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공공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일본에선 철길이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진다는 말이 두루 회자된다고 한다. 일종의 국민적 합의로서,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기차 노선을 없애는 건 부당하다고 믿는 셈이다.

철도 노선은 쇠락해가는 지방 살리기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보는 것이다. 어디 철도뿐이랴. 지방 소멸에 맞선 일본 정부의 대응엔 정면교사 삼을 만한 게 적지 않다. 당장 인적이 드문 오지 시골 마을에서도 병원이 쉽게 눈에 띄는 건 우리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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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테노 역에 나란히 정차 중인 두 기차의 모습. 내리는 승객이 아무도 없어 을씨년스럽다. ⓒ 서부원

 
타테노 역 플랫폼에 오가는 두 대의 기차가 나란히 섰다. 선명한 빨간색과 파란색이 대조되어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두 대 모두 내리는 사람은 없다. 몇 해 뒤에도 이 텅 빈 기차를 탈 수 있을까. 올해 말 기차 역사가 준공된다고 하니 적어도 노선이 사라질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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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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