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 미용실 찾아 하루종일 헤매다가 알게 된 것

등록 2023.02.06 17:45수정 2023.02.0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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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 미용실 개업 이벤트 전단이 붙어있다. 한 번쯤은 미용실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눈여겨보았다. 이벤트 할인치고는 파격적이지 않아 확인차 전화를 걸었다. 컷은 4번 해야 10% 할인이라고 했다. 겨우 10%라니. 그것도 4번째 방문에 적용한다. 이벤트 할인치곤 시시하고 화끈한 맛이 없어 휴지통에 버렸다.


미용실에 가긴 가야 한다. 흰머리가 지저분해지기 시작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 쓰였다. 내가 자를 수 있는 긴 머리 수준이 아니다. 짧은 머리임에도 흰머리가 치솟는 걸 감당하기 힘들다. 거울 보며 가위질을 해보려 했지만 멋진 흰머리가 될 거 같지 않았다. 기필코 미용실에 가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4년째 미용실에 간 적이 없다. 미용사가 머리를 홀랑 태워버린 이후로 미용실을 안 갔다. 마침 그 당시 동료 직원도 단발머리를 자기 손으로 깎았고, 기안84도 <나 혼자 산다>에서 혼자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나도 용기를 얻어 집에서 깎기 시작했다. 유명한 싸이도 자신의 머리는 자신이 손질한다고 했으니 생각만 바꾸면 못 할 것도 없다. 더구나 코로나로 접어들면서는 핑계 삼기도 좋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대충 잘라도 그게 그거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만족했다. 길러서 자르고 길러서 자르고... 자연인 생활을 반복했다. 아무도 내가 머리를 집에서 자른다고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그런데 염색을 안 하자 흰머리와 '투톤'이 되면서 지저분해 보였다. 계속 잘라줘야 하는데 기르기 전에 짧은 머리를 정리하는 건 어설픈 내 솜씨론 어림없었다.   

이왕이면 시내로 가야지 하는 마음에 무작정 중앙로로 향했다. 중앙로 버스 정류소에서 내리자마자 빈 건물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원래 편의점이 있던 자린데 폐업으로 흉물스럽게 텅 비어있었다. 걸음을 옮기자마자 중앙로임에도 빈 건물이 속출했다. 당장 명동 한복판에 있던 편의점 3개가 없어져 빈 건물로 텅 비었고, 줄지어 있던 여행사 4개도 문을 닫고 임대라고 크게 붙어 있다.      

와중에 미용실 간판은 여기저기 많았다. 가격표를 확인하니 평균 컷 기준 20000원이었다. 10000원 할 때 갔으니 정확히 2배 올랐다. 가격표시가 안 된 곳은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대부분 18000~20000원 수준이다. 기술을 요하는 쇼트커트도 아니고 단발이니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한 곳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컷 8800원이라고 적혀있는 간판을 찾았다. 검색을 하니 프랜차이즈 같다. 반가운 마음에 걸음은 빨라졌다. 건물 이층이었다.


이층 복도가 어두웠다. 우측 식당은 폐업이라고 적혀있다. 좌측이 미용실 같은데 다가가 자세히 살피니 건물 안이 텅 비었다. 대신 작은 안내문이 붙어있다. '내부수리로 당분간 휴업합니다.' 맙소사. 폐업이 아니라 휴업이라 다행이지만, 이곳은 중앙로 가장 요지 아닌가.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도 문을 닫았고, 3층 병원건물도 임대라고 붙어있다. 롯데리아는 2층을 폐쇄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은 옛말 같다. 번듯한 고층 건물 두 채가 전부 임대라고 붙어있다.

저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뭐로 생업을 이어갈까, 나처럼 백수로 지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곳에 취업했을까. 괜히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일터를 잃고 어디론가 떠났을 사람들을 생각하자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착잡했다.

저렴한 미용실도 못 찾고 마음도 찬바람인 상태로 집까지 걸었다. 40분 거리를 걸으면서 임대라고 붙은 건물들을 지나칠 때마다 뭔가 휑했다. 코로나 여파라고 하기에도 너무 심하다. 명색이 인구 10만이 넘는 시인데 중앙로 빈 건물은 폐허처럼 참담했다. 

내친김에 걸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동네미용실은 조금 저렴할까 싶어 발품을 팔았다. 동네 미용실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현금가 최저 13000원에서 20000원이었다. 최저가 미용실에 가기 위해 블록을 지날 때마다 빈 건물이 속출했다.

내가 좋아했던 짜장면집이 사라졌다. 가끔 먹던 닭갈빗집, 돼지갈빗집, 뼈다귀 해장국집이 다 사라졌다. 한 번도 간 적은 없지만 횟집도 문 닫았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식당 자리에 빈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밀키트 무인점포도 '임대'가 붙어있다. 중앙로뿐 아니라 우리 동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동네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변명 같지만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외식도 배달도 안 했다. 사람도 안 만나고 집밥을 먹기 시작했으니 외식 시장은 알지 못했다. 장도 집과 산책로를 통한 마트만 왔다 갔다 했으니 모를 수밖에, 더구나 그것도 어쩌다 한 번 가는 마트였으니 집 밖 세상은 혹독한 겨울임을 알지 못했다.

그나마 가끔 같이 가던 노래방 친구를 언제 만났는지 기억에도 없다. 노래방까지 문 닫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가까운 동네소식도 모르면서 세상 소식 알겠다고 온라인만 주야장천 들여다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은 하루다.

최저가 미용실로 향했는데 '외출 중'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며칠 전 개업한 미용실 이벤트가 화끈하지 않아서 야박하다고 불만했는데 어쩌면 현재 좋지 않은 경기의 현주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맞물렸다. 예전의 나는 최저가 미용실을 찾아 헤매지 않았다. 수십만 원도 아깝다는 생각 없이 머리에 돈을 들였다. 돈은 얼마라도 좋아, 내 맘에 들게만 해줘, 하면서 향했다.

나이 탓일까, 수입이 없는 탓일까, 개념이 생긴 것일까, 이젠 생각이 변했다. 변했으니 변한 대로 살아야 한다. 바람도 차가운데 하루 종일 최저가 미용실을 찾아 헤매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수입 없는 소비를 반복하면서 빈 건물처럼 그 구간에 적응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최저가 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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