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는 숙명

[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97화 나에게 쓴 글

등록 2023.02.06 14:57수정 2023.02.0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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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립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고려 상감청자 ⓒ 박도


나는 이양하 선생의 '나무'를 좋아한다. 이 글은 한 글자라도 빼면 어딘가 빈 듯하고, 한 자를 더하면 군더더기가 될 만큼 거의 완벽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수필이다.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날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 이양하 '나무' 에서

이 문단 가운데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는 대목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고독을 괴로워한다. 나도 젊은날, 고독에 괴로워하고 몸부림쳤다. 집안의 몰락으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 또한 홀로 낯선 객지에서 떠돌이생활을 했던 고교 대학시절, 아버지의 투옥과 가족의 이산과 죽음.... 그때마다 절망적인 고독과 방황으로 죽음도 생각했다.

그야말로 <25시> 작가 게오르규의 말처럼 "고독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고통이다. 어떠한 공포도 모두 함께 있다면 견딜 수 있지만 고독은 죽음과 같다"를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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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가 오는 한 여름날, 처마 밑 시루 위에서 고독에 겨워 하품을 하는 고양이 ⓒ 박도

 
고독을 이기라

고독을 견디고, 이기고, 즐겨라. 물론 말은 쉽다. 그러나 우리가 고독의 그 본질을 안다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애초부터 고독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이 세상을 떠날 때도 혼자 떠난다. 사랑하는 부부도, 연인도, 가족도, 친구도 늘 함께 있을 수 없고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깊은 고독 속에 있다. 절대 고독, 그것은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다. 고독하다고 몸부림친들 해소되지 않는다. 그리고 고독을 잊고자 아무하고나 어울린다면 걷잡을 수 없는 나락의 길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보다 나을 것이 없고 내게 알맞은 길벗이 없거든 차라리 혼자 가서 착하기를 지켜라. 어리석은 사람의 길동무는 되지 말라."

고독을 느낄 때는 더 깊은 고독에 빠져들어라. 고독한 시간, 그 고독에 침잠(沈潛)할 때 오히려 그 고독을 이길 수 있다.

고독으로 괴로워하지 말라. 이 세상의 위대한 예술이나 학문, 사상, 종교는 모두 고독한 시간에 이루어진 '고독의 결정체'다.


정철의 '사미인곡'이나 '속미인곡'은 그가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 전라도 창평에서 고독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작품이요, 김만중의 '구운몽'은 남해 귀양지에서 고독의 나날을 보내며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 귀양지에서 무려 18년이라는 긴 유배생활이 있었기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여 권의 저술을 남길 수 있었다.

또, 국보 180호인 '세한도'를 남긴 김정희는 유배지에서 고독한 생활 가운데서 탄생됐다.

빈 센트 반 고흐는 생애 대부분 실의와 실연 등 좌절 속에 살았다. 그는 그의 불운과 고독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되물으며, 자신의 실재(實在) 모습을 찾고자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그래서 그의 자화상은 후세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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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상원사 가는 길섶의 동자상 ⓒ 박도

 
고독은 나의 영혼을 살찌게 한다

에밀리 브론테는 짧은 생애를 독신으로 깨끔하게 살다갔다. 목사인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의 6남매 중 넷째 딸로 태어났으나 그가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자 대신 이모의 보살핌으로 자랐다.

그가 자란 호워스 마을은 히스 꽃이 만발하면 평화스런 자연 경관을 이루지만, 대부분 혹독한 눈보라와 더불어 음습한 날씨가 계속되는 황무지였다. 자신의 병약함과 고독, 거친 들판 그리고 폭풍 등 이런 배경이 한데 어울려 불후의 명작 <폭풍의 언덕>이 탄생됐다.

인도 카피라 왕국에서 태어난 싯다르타는 출가 뒤 가장 어려운 고행만을 골라 수행했다. 어느 날, 홀로 숲 속에 들어가 커다란 보리수 아래에 단정히 앉았다. 싯다르타는 비장한 맹세를 했다.

"이 자리에서 육신이 다 죽어 없어져도 좋다. 우주와 생명의 실상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

어느 하루, 태자는 문득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넘쳤다. 이제는 두려워 할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진리가 그 앞에 밝게 드러났다. 태어나고 죽는 일까지도 환히 깨달았다. 온갖 집착과 고뇌가 자취도 없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우주가 내 자신이요, 내가 우주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부처가 되셨다. 뼈를 깎는 고행과 고독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위대한 예술이나 학문, 그리고 사상이나 종교들은 깊은 고독 속에 맺어진 열매다. 고독은 나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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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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