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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차오른다~ 불 댕겨라!" 달집이 이글거렸다

전북 순창군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 5년만에 열려

등록 2023.02.06 14:17수정 2023.02.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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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순창군 유등면 정월대보름 행사장에서 달집이 타오르며 달을 삼키려는 듯 포효하고 있다. ⓒ 최육상


지난 5일 정월 대보름을 기해 전북 순창군 곳곳에서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렸다. 주민 건강·가내 평안·풍년 농사 기원, 모든 악한 기운 소멸, 한 해 소원 성취를 담은 의례인 달집태우기는 음력인 '달'과 관련된 행사로 물·여성과 연결돼 농사의 풍요와 생명력을 상징한다.


한 순창군민은 "정월대보름 행사는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우리 순창 같은 농경사회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안타깝게도 조류독감과 구제역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수년 간 정월대보름 행사를 치르지 못하다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대보름 행사를 할 수 있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어르신(90)은 "달집태우기는 농경사회에서 생산력과 생활력의 기준이 되는 음력(달) 중에서도 새해의 첫 보름달인 정월대보름달이 가장 크기 때문에 주술의 힘도 절정에 달해 농사지어 먹고 살던 농부들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풍년 농사" 등 다양한 소망 기원

지난 3~5일 3일간 둘러본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는 서쪽으로 해가 저물고 동쪽 하늘에서 보름달이 떠오를 때를 맞춰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고 악귀와 액운을 소멸시켜달라는 염원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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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순창군 유등면 정월대보름 행사장에서 주민들이 보름달을 향해 타오르는 달집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 최육상


지난 3일 오후 5시 순창군 유등면 유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된 달집태우기 행사장에 대나무와 볏단으로 만든 달집에는 "순창군민, 유등면민, 우리가족행복 기원", "유등면민 부자되세요", "농가주부모임 건강기원", "고뱅이농악단 발전 기원", "신부경 장가 가라" 등 주민들이 적은 다양한 소망 종이가 빙 둘러가며 매달렸다. 아들 여인호(3) 어린이를 데리고 나온 한 엄마도 소망 종이를 달집에 매달며 즐거워했다.

팥이 들어간 찰밥, 땅콩과 밤 등 부럼,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 고사리와 시금치, 취나물 등 대보름 음식을 한가득 준비한 순창농협 농가주부모임과 대한적십자사 유등단위봉사회 회원들은 "음식 준비하는 게 고생스럽기는 해도 오래간만에 많은 주민이 함께 모여서 맛있게 드시고 즐거워하니까 기분이 좋다"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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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순창군 유등면 정월대보름 행사장에서 최영일 군수가 제를 올리고 있다. ⓒ 최육상


5년만에 개최된 정월대보름 행사


지난 4일 오후 5시 순창군 구림면 구림면체육관 앞에서 진행된 달집태우기 행사는 5년 만에 개최되는 탓인지 면민들의 관심이 많아 보였다. 제를 지내고 술잔을 올리는 의례는 유등면 달집태우기 행사와 대동소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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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순창군 구림면 정월대보름 행사에 아린·하린(8) 쌍둥이 자매를 데리고 참석한 엄마. ⓒ 최육상


아린·하린(8) 쌍둥이 자매를 데리고 나온 한 엄마는 "저는 (구림면) 여기 옆동네인 오정자마을에서 태어났다"면서 "아이들이 지금 장구를 배우고 있는데 농악단이 흥을 돋우는 동네 행사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달집 옆에 자리한 소원성취 부스에서는 머리 희끗희끗한 주민들이 속곳에서 쌈짓돈을 주섬주섬 꺼내 건네며 달집에 매달아 태울 종이에 소원을 적기 바빴다. 이암마을 이순자씨는 "그냥 아이들 건강하고, 새해 복 많이 받게 해 달라고 적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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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순창군 구림면 정월대보름 행사장 옆에 마련된 소원성취 부스에서 주민들이 쌈짓돈을 건네며 종이에 소원을 적고 있다. ⓒ 최육상


행사장이 내려다보이는 낮은 언덕 가운데 의자에 나란히 앉은 주민 4명은 "오래간만에 이렇게 모이니까 기분이 좋다"면서 "달집 태울 때 소원 빌고, 맛있는 대보름 음식도 먹어야지"라고 말했다.

한 농악대원은 "지금은 전주에 살고 있지만 내 고향이 구림면이라서 즐겁게 참석했다"면서 "5년만에 개최되는 정월대보름 행사라서 감회가 새롭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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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순창군 구림면 정월대보름 행사장에서는 주민들로 구성된 자율방법대 대원들이 행사장의 안전을 돌봤다. ⓒ 최육상


대보름행사, 공동체 화합·단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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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순창군 동계면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에서 주민들이 댕기불을 들고 오른쪽 산마루 위로 하얗게 모습을 내비친 달이 차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 최육상

 
지난 5일 오후 6시 30분 순창군 동계면 구송정 앞에서 진행된 달집태우기 행사는 동계면청년회가 주최했다. 제례를 마치고, 달집에 불을 붙이려는 찰나 산마루 숲 사이로 하얀 달이 아른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달이 차오르고 있으니까, 아직 불 붙이지 말고 잠시 대기하세요."

주민들은 진기한 광경에 숨을 죽이며 댕기불을 들고 때를 기다렸다.

"달이 차오른다. 지금이다~ 불 댕겨라."

달집을 둘러싼 주민들이 일제히 댕기불을 놓자 족히 15m는 넘을 거대한 달집이 순식간에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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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순창군 동계면 정월대보름 행사에 동계 서호마을이 고향인 세 자매가 부모님과 자녀들을 데리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 최육상


동계 서호마을에서 태어난 3자매는 "대보름을 맞아 모처럼 부모님댁에 함께 모여서 달집태우기를 보러 왔다"며 "저희가 원래 4자매인데 막내만 일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부모님과 3자매·사위 그리고 3살부터 8살 손자손녀까지 3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쩌다 보니 대보름날 신문에 나올 가족사진을 찍게 됐다"고 말했다.

장철우 동계면청년회장은 "순창군내 가장 큰 달집을 세운 것 같다"는 질문에 "청년회 스무 명이 3일 동안 행사를 준비했다"며 "직접 들어간 비용만 500만 원 가량이고 자원봉사로 처리한 인건비와 굴삭기 등 장비 사용비까지 합치면 총 1500만 원 정도가 소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청년회는 앞으로도 동계면공동체를 위해 매년 대보름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라며 "주민들이 많이 참여하셔서 함께 화합하고 단합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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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순창군 동계면 정월대보름 행사에서 달집이 활활 타오르는 가운데 아래쪽에 하얀 보름달이 보이고, 주민들의 띄운 달항아리들이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다. ⓒ 최육상


순창군내 3개 면단위 공식 정월대보름 행사 이외에도 순창읍 장덕마을, 풍산면 두지마을, 팔덕면 청계마을, 복흥면 추령마을 등에서도 마을 단위로 행사가 진행됐다.

한편, 달집태우기 행사는 순창소방서 소방공무원 전원과 의용소방대 대원이 각 행사장 별로 소방차를 배치하고 화재 등 만일의 사태에 비상 대기하며 별다른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인구소멸위기에 놓인 시골의 세시풍속 잇기

옛날 설날은 가족 중심 명절이었고, 대보름은 마을공동체 명절이었다. 순창과 같은 농경사회에서는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한해 농사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한 날이다. 3일간 지켜본 순창군내 정월대보름 행사는 시골농촌 주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정겨운 삶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마을주민이 줄어들면서 정겹고 흥겨운 시골농촌의 세시풍속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순창군은 전국 지자체 89곳과 함께 행정안전부가 지정, 고시한 인구소멸위험지역이다. 또한, 순창군은 통계청이 조사한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기초자치단체 229곳 중에서 인구증가율 -4.2%로 인구감소율이 전체 1위에 올랐다.

순창군민들은 정월대보름 행사에서 한 목소리로 "군민 건강과 풍년 농사, 순창군의 발전"을 기원했다. 순창군민들은 인구소멸을 극복하면서 시골농촌의 세시풍속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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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순창군 동계면 정월대보름 행사장에 설치한 달집에 “동계면민 무병장수와 풍년을 기원”하는 현수막이 달렸다. ⓒ 최육상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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