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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까지 간 '쎈수학 사건'의 믿을 수 없는 결말

[위기의 자영업]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으로 본 종속적 자영업자의 현실

등록 2023.02.12 12:10수정 2023.02.1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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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가맹점주 출신으로 현재 자영업자 단체인 전국수탁사업자협의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연재 '위기의 자영업'을 통해 기업에 종속되어 고금리, 고물가, 고임금, 그리고 본사 갑질에 시달리며 고사 중인 종속적 자영업자들의 가혹한 현실을 알리고자 합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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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속 주인공의 선택이 정말 싫었다. 그런데 부정할 수 없는 우리 현실이었다. ⓒ 영화사 진진

 
포스터 속 고뇌에 찬 주인공 모습에 이끌려 본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2014)은 솔직히 지루했다. 그런데도 끝까지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전에 경험했던, 그리고 현재 경험하고 있는 세상과 너무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결말이 너무 답답했지만 쉽게 떨치기 어려운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러하다.

주인공 미하엘 콜하스(매즈 미켈슨 분)는 말을 키워 돈을 버는 사람이다. 말도 잘 키우지만 올곧은 성격으로 신망도 두텁다. 덕분에 먹고 사는 데 걱정은 없는 프티 부르주아지(중산 계층)다.

사건의 발단은 콜하스가 말을 팔러 가던 날, 길에서 만난 남작(귀족)의 부당한 통행세 징수에서 비롯된다. 그는 그 부당함에 항의했지만, 말 두 마리를 압류당한다. 이후 콜하스는 공권력의 도움을 받고자 법원에 고발장을 접수했지만, 결과는 기각이다. 남작의 인맥이 법의 권위를 무력화시킨 것이었다. 이에 콜하스의 아내는 이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고자 왕가의 공주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러나 아내는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돌아온다. 공권력에 의한 정의 구현을 믿었던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콜하스는 죽어가는 아내 옆에서 기도한다.

"성경 말씀에 원수를 용서하라 하셨지, 나는 신께 기도한다. 우리가 남작을 용서할 때까지 나를 용서치 마시라고."

공권력에 배신당한 콜하스는 자력구제에 나선다. 비슷한 처지로 귀족에게 핍박받던 농민과 평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인다. 그렇게 콜하스 한 개인의 분노는 나라를 흔드는 큰 폭풍이 된다.

5세기 전 독일과 현재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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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업무보고 하는 한기정 공정위원장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1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새해 업무보고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500년 후, 2022년 10월 대법원은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전 MP 그룹 회장에 대해 유통과정에서 불필요한 가족회사를 끼워 넣어 치즈 '통행세(부당한 물류마진)'를 챙기도록 했다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도 유죄 취지로 판단,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앞서 1심은 해당 혐의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으로 봤지만, 2심은 공정거래법이 아닌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으로 판단했었다. 대법원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렇게 이 작은 정의가 세워지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사실 원부자재 유통과정의 '통행세'는 미스터피자만의 문제가 아닌, 지금도 고쳐지지 않는 프랜차이즈 업계의 고질적 관행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본사의 지위는 가맹점주에 비해 영화 속 남작처럼 압도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사건의 한복판에 있었던 미스터피자 점주 김아무개사장은 콜하스처럼 프티 부르주아지였다. 제법 큰 평수의 가게에서 상대적으로 평탄하게 가게를 운영했었다. 본사가 각종 명분의 통행세로 가맹점을 옥죄기 전까지는 말이다.

2015년 그는 동료들과 함께 본사의 갑질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그렇지만 500년 전 독일처럼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2017년 동료 점주가 생을 달리하고 그가 동료들과 함께 철야 농성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쩌면 그도 신에게 기도했을 것이다. '먼저 떠난 동료가 본사를 용서할 때까지 우리를 용서치 말라'고 말이다.

5년 후,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 오른 일명 '쎈수학' 사건은, 본사인 ㈜신사고아카데미가 2019년까지 신규 계약을 체결해놓고도 2020년 4월 느닷없이 가맹사업 중단하며 벌어진 분쟁이다. 본사는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지사장 상당수를 계약 해지하고 학원으로 가맹한 가맹사업자들에게는 교재, 동영상 등 영업 지원을 중단했다. 그야말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본사의 막무가내 계약파기였다. 이 사건은 공정위에 신고 되었지만, 이 또한 진척은 없었다. 이후 피해자들의 피눈물 나는 호소로 국감에 오른 것이다.

당시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가맹지사 계약 해지 부분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볼 수 없어 무혐의 처리했다"라고 밝혔다. 다만 가맹점(학원)에 대한 본사의 영업 지원 중단에 대해서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신고 내용이 계속 추가돼 조사가 지연되고 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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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쎈수학 분쟁건 무혐의 통보 ⓒ 권성훈

   
그런데 올해 1월 1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그조차도 '본사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다. 본사에서 가맹 계약서와 정보공개서에 기재하지 않고 사업설명회 등을 통해 안내한 내용(교재나 동영상 등 영업 지원)은 본사의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본사가 이행하지 않더라도 가맹사업법 위반은 아니라는 게 공정위의 해석이다. 지사장들과 가맹점주들은 그제야 알았다. 계약서 서두에 쓰인 '신의 성실'은 '을'에게만 지워진 의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과 우리나라 종속적 자영업자(가맹, 대리, 수탁, 하도급)의 현실은 무척 닮아있었다.

닮은 건 이뿐만이 아니다. 콜하스의 분노가 왕국을 흔들자 왕가는 그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무기를 버린다면 이전 고소 건의 재판을 청구할 권리를 부여하겠다.' 콜하스는 고민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판세가 바뀌자 왕가는 이 협약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깨 버린다.

2022년 던킨도너츠 본사는 제조공장 내 위생문제가 발생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10월, 가맹점주들에게 끼친 피해를 보상하겠다며 10억 원의 손실보전을 약속하는 등의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이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영화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아직도 합의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명순 '전국던킨가맹점주협의회' 회장은 합의문에 담겼던 약속이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분노했다. 

그때 미하엘 콜하스, 현재 이들의 선택

아디다스 가맹점 사장 A씨 : "왜 이런 글로벌 기업에 맞서냐고요? 솔직히 저는 몇 년 전부터 본사가 이런 태도를 보일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미 사업을 철수할 준비도 했죠. 그런데 제 작은 신념이 날 붙잡았어요. 교회에서 청년들을 지도하며 공정과 정의가 어쩌고저쩌고하며 입바른 소리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여기서 도망가면 제가 다 거짓말한 게 되잖아요."

던킨도너츠 송명순 점주 : "제가 곧 육십대가 돼요. 그동안은 이기적이었고 함부로 나서면 안 된다는 그런 두려움에 살았던 것 같아요. 제가 살던 안산에서 겪었던 세월호 사건이 제 인생의 분기점이었던 같아요.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생각만으로 안 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거죠. 만약 이 순간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용기를 내자."

황야로 내모는 국가, 그들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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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한 매장의 모습. ⓒ 연합뉴스

 
영화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의 백미는 바로 결말이다.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닫자 국가는 그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이에 콜하스는 죄를 지은 남작을 처벌해 달라는 것과 그가 끼친 피해를 정당하게 보상해달라는 것 그리고 이 사태에 휩쓸린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달라는 것이다. 국가는 그의 조건을 수용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사태가 진정되자 국가는 그에게 반대급부를 원했다. 왕국의 평화를 깬 죄로 목을 내놓으라고 말이다. 콜하스는 '선택'을 한다.

현재 본사와 치열하게 분쟁 중인 쿠쿠 도봉점 점주 이윤호 사장은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자신의 선택을 말했다.

"다른 점주보다 좀 더 나이 많은 내가 쫓겨나는 게 덜 억울하겠죠. 남은 사오십 대 사장들이라도 안심하고 일할 수 있으면 그게 최선 아닐까요? 그들도 나도 다 같이 쫓겨날 필요는 없잖아요."

이 영화의 원작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소설 <미하엘 콜하스>다. 작가는 자신의 삶과 당시 시대 상황을 이 소설에 투영했다고 한다.

"저는 그(법) 보호를 받아야만 평화롭게 사업을 번창시킬 수 있습니다. 그 보호를 믿었기에 모은 재산을 다 들고 이 사회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런 보호를 해주지 않는 것은 저를 황야의 야수들에게 쫓아내는 것입니다. 저 자신을 지키라고 제 손에 몽둥이를 쥐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소설 <미하엘 콜하스> 중에서
#공정거래위원회 #갑질 #프랜차이즈 #공정위 #가맹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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