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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4층 분향소? 숨도 못 쉬고 또 죽으란 건가"

[현장] 이태원 참사 유족들, 행정대집행 예고한 서울시 규탄... 정치권·시민단체·종교계 동참

등록 2023.02.06 16:24수정 2023.02.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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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10.29이태원참사 시청 분향소 철거 예고 규탄 기자회견’이 6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주최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히기 위해 붉은 목도리를 이어 잡고 있다. ⓒ 권우성

 
"지하 4층에 분향소를 차리라니... 숨도 못 쉬고 또 죽으라는 건가."
"살았을 때 지키지 못했지만 죽은 아이들 분향소는 꼭 지키겠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서울시의 합동분향소 철거 예고 시각인 6일 오후 1시에 모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엔 정치권, 시민단체, 종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힘을 보탰다. 서울시는 앞서 유가족 측에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보낸 뒤 예고 시각에 집행을 이행하진 않았지만, 이후 계고장을 추가로 보내는 등 분향소 철거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충돌·안전 우려? 서울시 여론 호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에 모여 "유가족과 시민의 온전한 애도를 탄압하는 서울시와 경찰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와 경찰은 분향소 철거 시도를 중단하고, 즉각 분향소 설치와 운영에 협조하라"며 "(현재 설치된) 차별과 펜스를 철거해 시민들의 조문과 1인 시위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서울광장 분향소는 지난 4일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 중 설치됐다. 유가족협의회는 "추모공간 마련에 협조하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약속을 믿고 서울시에 광화문광장 인근 세종로공원에 분향소 설치를 타진했으나 서울시는 분향소는 물론이고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위한 광화문 북광장 사용도 불허했다"라며 "서울시청 분향소는 경찰과 서울시의 방해 속에서도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힘으로 어렵사리 설치한 소중한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서울시는 유가족 측에 행정대집행을 예고하며 자진 철거 기한을 6일 오후 1시로 통보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광장 사용을 보장하고 시민들 간 충돌·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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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를 지키기 위해 온 시민들이 분향소에 헌화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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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시청앞에 설치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영정사진에 노란리본이 달려 있다. ⓒ 권우성

   
유가족협의회는 6일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시가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분향소는 애초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던 자리 인근에 더 작은 규모로 설치됐다"며 "누구나 광장을 통행할 수 있도록 시청 건물 가까이 설치돼 통행에 문제가 없어 시민들의 자유로운 광장 사용이 방해될 것이라는 주장은 억측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분향소 설치 당일 2~3시간 동안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분향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오히려 불필요한 충돌과 안전의 위험을 야기했던 것은 서울시와 경찰이다. 충돌과 안전을 우려했다면 유가족과 시민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시민분향소를 철거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유가족과 시민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지 강구했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분향소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감정에서 비롯된 '관혼상제'로서 헌법과 법률의 보호를 받는다. 서울시는 과거 수차례 분향소를 규제대상이 아닌 관혼상제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라며 "48시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철거할 것을 요구하고 계고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은 채 공익적 이유도 없이 행정대집행 절차를 밟겠다는 것은 절차적으로, 내용적으로 위법하다"라고 지적했다.

맨 앞에 앉은 유족들 "심장 같은 자식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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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히기 위해 붉은 목도리를 이어 잡고 있다. ⓒ 권우성

 
유가족 수십 명은 평소 매고 있던 빨간색 목도리를 풀어 서로 엮은 채 기자회견 현장 맨 앞에 앉았다. 유가족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사과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파면 ▲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재차 요구하며 서울광장 분향소를 철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마이크를 잡은 유가족협의회 부대표 이정민(이주영씨 아버지)씨는 "우린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많은 시민에게 보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런데 이곳에도 있지 못하게 나가라고 한다"라며 "살아 있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지만 죽어서 저 하늘로 간 아이들은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종철(이지한씨 아버지)씨는 "오늘 아침 제게 전화한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녹사평역 지하 4층에 분향소 자리를 제공하려는데 왜 그쪽으로 오지 않냐'고 말했다"라며 "지하 4층 굴 속으로 들어가 목소리가 사그라질 때까지 가만히 숨 못 쉬고 죽으라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녹사평역 지하 4층' 제안을 거절하자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그럼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어떻게 공무원이 국민들에게 목을 빳빳이 세우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나"라며 "우리 유가족들은 세금을 안 낸 적도 없고 반정부 투쟁을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우리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항의했다.

유족 이성환(이상은씨 아버지)씨는 "경찰 여러분, 저기 분향소에 있는 희생자들은 여러분의 친구이자 형이고, 누나이고, 동생들이다. 그들은 걷다가 영문도 모른 채 압사 당했고 차디찬 길바닥에 방치됐다가 전국으로 흩어져 죽어서 부모형제와 만났다"라며 "여기 유족들은 여러분의 어머님이자 누님, 아버님이자 형들이다. 하루아침에 심장과 같은 자식을 잃은 유족들의 절규가 보이지 않나"라고 호소했다.

이어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 국가는 없었고 경찰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들이 죽어 영정 속에 있는데 국가가 있다고 한다. 경찰도 여기에 많이 와 있다"라며 "경찰 여러분에게 국화꽃 한 송이 드리겠다. 제발 저 불쌍한 아이들을 건드리지 말고 헌화를 부탁드린다. 제발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야3당 한목소리 "오세훈, 악어의 눈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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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10.29이태원참사 시청 분향소 철거 예고 규탄 기자회견’이 6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주최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유가족들이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권우성

 
기자회견엔 야3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국회의원 및 지도부 30여 명도 참석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당내 용산이태원참사대책본부장)은 "이태원 참사 후 100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유가족들이 이렇게 찬 바닥에 있다. 오세훈 시장이 (참사 후) 흘린 눈물은 도대체 뭔가. 악어의 눈물인가"라며 "분명 사회적 참사라고 했는데 언제까지 유족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당해야 하나. 민주당은 온전한 추모공간과 소통공간이 마련되고 독립적 조사기구가 마련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이 분향소는 시민들이 말하지 않아도 정부가 먼저 나서서 설치했어야 했다. 대통령, 장관, 서울시장 모두 와서 유가족의 손을 잡아줬어야 했다"라며 "그러나 정부는 유가족을 시민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려고 한다. 정의당은 오늘 대정부질문을 통해 일련의 상황에 대해 엄중히 질문하고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도 "유가족을 고립시키고 탄압하는 방법이 세월호 참사 때보다 훨씬 더 교활해지고 교묘해졌다. (서울광장 분향소 때문에) 그렇게 (시민들 간 충돌과) 안전이 걱정된다는 오세훈 시장은 지금 녹사평역에서 유가족을 괴롭히고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그들을 먼저 제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현장 관리자 몇몇에게 책임을 지우고 자신과 고위공직자들은 쏙 빠져나간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가 지금 오세훈 시장의 안하무인을 불러왔다. 윤 대통령은 유가족과 피해자,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법적·행정적·정치적 책임이 있는 이상민 장관을 즉각 파면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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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6일 오전 서울시청앞에 모여 합동분향소에서 사용할 소형 난로 반입을 가로막은 서울시에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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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6일 오전 서울시청앞에 모여 합동분향소에서 사용할 소형 난로 반입을 가로막은 서울시에 항의하고 있다. 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씨가 참사 후 기자회견에서 눈물 흘리는 오세훈 시장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며 ‘악어의 눈물’이었냐며 항의하고 있다. ⓒ 권우성

 
한편, 이날 오전 유가족들이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시청에 진입하려고 했고 이를 경찰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일부 유가족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관련 기사 : [오마이포토] 서울시청 앞 쓰러진 이태원 참사 유족들 https://omn.kr/22mjd).

분향소에 소형 난로를 갖고 가다 서울시와 경찰에 제지당한 유가족 한 명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게 발단이었다. 유가족 측은 "실랑이를 벌인 유가족이 분향소 쪽으로 걸어가다 분통을 터뜨리다 실신했다"고 전했다.

시민대책회의는 "서울시 총무과장이 나와 '새로운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 외에 방한 물품 등 반입은 협의를 통해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라며 "유가족이 쓰러지고, 실려 가고 눈물로 호소한 다음에야 오늘 처음 꽉 막혔던 서울시와 대화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든 정부든 언론에만 '유가족과 소통하겠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며 "유가족들은 (서울시와 정부가) 연락만 해온다면 조율을 통해 만나서 협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 #서울광장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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