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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의 교훈 잊은 윤핵관... '조중동' 말이라도 듣기를

[取중眞담] 정치가 실종된 국힘 전당대회... 윤석열 '신탁' 통치의 수준

등록 2023.02.06 18:58수정 2023.02.0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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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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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대통령실과 친윤 진영이 이처럼 대놓고 특정인을 공격하고 대통령 탈당까지 거론하는 것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그렇게 해서 특정 후보가 당대표가 된다 한들 흥행도 감동도 주기 힘들다."

진보 매체의 사설이 아니다. <조선일보> 6일자 사설의 일부이다. <조선>은 이날 "'安 이기면 대통령 탈당' 얘기까지 나온 與 경선판"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대통령실이 특정 당대표 후보를 대놓고 비판하는 것도 전례 드문 일"이라고 짚었다. 이어 "나경원 전 의원의 출마를 두고 파열음이 난 지 보름도 안 돼 같은 일이 재연되고 있다"라며 "경선이 '윤심' 논란으로 얼룩지면 윤 대통령 국정 운영이나 총선 승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만이 아니다. 같은 날 <중앙일보> 역시 "윤 대통령 발언까지 전해진 여당 전대 우려스럽다"라는 사설에서 "대선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대통령의 탈당과 신당 창당 얘기가 나오나"라고 따져 물었다. "여당 전체가 진흙탕으로 빠져드는 분위기" "허구한 날 이전투구 양상만 노출"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동아일보>의 지난 4일자 사설도 마찬가지였다. "유승민 나경원 이어 안철수까지… 이런 '쳐내기 전대' 있었나"라는 제목의 해당 사설은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향해 "막장 양상" "볼썽사나운 윤심 마케팅 경쟁" "지금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라고까지 꼬집었다.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국내 대표 보수 언론들마저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향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친박의 교훈을 완전히 잊은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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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자 <조선일보> 사설 <"안 이기면 대통령 탈당" 얘기까지 나온 여 경선판> ⓒ 조선PDF

 
지금까지 이런 전당대회는 없었다. 국민의힘 계열이든 민주당 계열이든 모든 정권은 대통령과 일체감이 높은 인물이 여당 대표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무언가를 바라는 것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하던 시절도 아닌데, 특정 후보를 당대표에 앉히겠다는 대통령(실)의 의지를 이토록 우악스럽게 관철시키려고 하던 때가 있었던가?

굳이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새누리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박근혜 청와대에서 바랐던 당대표는 서청원 의원이었지만, 그는 친박에서 비박으로 변모한 김무성 당시 의원에게 밀려 대표최고위원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친박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의 실질적인 당 장악력은 대표 이상이었다.

친박계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 받아야" 한다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메시지를 충실히 수행했고, 비박계를 향한 공천 학살은 그 유명한 '옥새들고 나르샤' 사건의 배경이 된다. 그렇게 청와대의 주문대로 친박계가 주도한 총선은 '참패'로 귀결됐다.


그러나 정권 후반기에도 당의 그립을 놓고 싶지 않았던 당시 청와대는 별다른 교훈을 얻지 못한 듯 보였다. 총선 패배 후에도 오히려 친박계의 독주 체제는 완고해졌다. 새누리당 제4차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박계는 최고위원 1명을 배출하는 데 그치며 학살당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당선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일성은 "이 시간부터 새누리당에 계파는 없다"였다. 언뜻 탕평과 화합을 뜻하는 듯 보였지만, '계파는 없다'는 말은 '친박의 완벽한 당 장악'으로 귀결됐다.

친박 순혈주의에 매몰된 당의 결말은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탄핵 국면이었다. 이정현 당시 대표는 "뜨거운 장에다가 손가락을 넣어서 장을 지지겠다"라는 말만 남긴 채 무대 뒤로 퇴장해야 했다.

감동도 재미도 신념도 염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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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지금의 용산 대통령실과 여의도 여당 역시 당시에 몸소 체험한 교훈을 완전히 잊은 것 같다. 심지어 '당무 개입'에 관해서는 더 노골적으로 변모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부당한 공천 개입으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그를 기소한 건 서울중앙지방검찰의 특수부였고, 그때의 서울중앙지검장이 바로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를 넘어 상식적인 납득조차 잘 되지 않는다.

집권 여당의 전당대회 레이스가 진행 중인데, 비전도, 정책 대안도, 생산적 의제도 없다. 오로지 윤심이 누구에게 있느냐만을 두고 다투는 와중에, 대통령실의 대응은 다분히 선택적이다. 김기현 의원의 노골적인 윤심팔이에는 별 말을 않더니, 대통령 선거 당시 단일화 당사자인 안철수 의원의 '윤안연대' 발언을 두고서는 "적" "방해꾼" 같은 단어가 튀어 나온다. <조선>조차도 "감동"이 없다고 한 게 괜한 말이 아니다.

"감동"만 없는 게 아니다. "재미"도 없다. 용산의 시그널에 초선을 중심으로 한 당내 친윤계는 전위대가 되어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 이재오 상임고문이 괜히 이들을 '깡패'에 비유한 게 아니다. 용산의 좌표찍기에 충실하게 집단 구타를 일삼은 이들은 사실상 민주화 이전까지 어깨에 힘주고 다녔던 정치깡패의 또 다른 버전이나 다름없다. 유승민 전 의원을 두들기던 이들이, 나경원 전 의원을 향해 연판장까지 돌려가며 매섭게 물어뜯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빨을 안철수 의원에게 드러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오세훈-안철수 경선 구도 당시 당 소속도 아닌 안철수 후보를 밀었던 이들이다. 애초부터 금도도, 신념도, 지조도 없었던 것이다. 그 역풍으로 안철수 의원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자, 부랴부랴 가족여행을 떠난 나경원 전 의원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까지 향한다. 서울 동작의 사무실도 찾아가 연판장을 돌린 데 대해 뒤늦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때려놓고 맷값이라도 주려는 것인지, 염치도 없다. "추방돼야 할 정치적 사기행위"이라며 매섭게 날을 세우던 게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조중동의 말이라도 제발 귀담아 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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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도 신년대법회에서 축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불기 2567년 대한민국 불교도 신년대법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이날 신년대법회는 불교계 30개 종단의 협의단체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주최했으며, 현직 대통령 부부의 신년대법회 참석은 이번이 처음이다. ⓒ 연합뉴스

 
이처럼 집권여당의 전당대회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그러니 정치도 없다. '바르게 일하고 물을 다스려' 민생을 살필 정치는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무엇인가? 툭 하면 화를 내는 대통령은 전지전능한 신에 가깝다. 이를 전하는 익명의 용산 고위 관계자와 윤핵관들은 그 신탁을 전하는 사제들처럼 보인다.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일삼고 있는 친윤계는 신관이 전한 메시지에 벌벌 떨고 있는 신도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천공이니 건진이니 하는 인물을 온전히 배제하고서라도 이 통치가 과연 고대 그리스 델포이와 어떤 수준 차이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이준석만 쫓아내면 지지율이 오를 것이다'라는 미신이 이미 깨졌는데도,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여전히 '당과 대통령실이 일체화되면 총선을 승리할 수 있다'라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총선에서 패배하고서라도, 친박이 그랬듯 여당의 그립만 강하게 쥐면 된다고 판단한 것일까?

알 수 없다. 안타깝게도 여의도 내 정치부 기자들 중 상당수는 용산의 신탁 해석을 이미 포기했다. 합리적인 추론과 예상은 번번이 빗나가기 일쑤이다. 대신 '설마'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난다. 그러니 이 역시 정치가 아니다. 확고한 목표를 향해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정무적 판단이 있을 뿐이다. 헛웃음만 유발하는 일련의 촌극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만 타들어가고 있다.

어차피 "정치공작 하려면 인터넷 매체 말고 메이저 언론 통해 하라"라고 했던 대통령과, 언론노조는 물론이고 한국기자협회까지 좌파라고 공격하는 집권세력이 진보매체 기자의 이런 말을 듣지 않을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최소한 '조중동'이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만이라도 귀담아 들으시라. 친박 세력과 전직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윤석열 #윤핵관 #친윤 #전당대회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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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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