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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유가족 2차 가해 용인하는 용산구청과 법원

[주장] 분향소 에워싼 신자유연대 천막 방치하는 행정기관... 법원은 접근금지 가처분 기각

등록 2023.02.08 16:38수정 2023.02.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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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평역 인근 이태원참사 시민분향소가 극우단체의 현수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 공정경

 
최근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참사 시민분향소에 갔다. 이름은 '이태원광장'이지만 광장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협소한 공간이었다. 시민분향소는 극우단체의 현수막으로 다 막혀있어 고립된 섬 그 자체였다. 극우단체인 신자유연대 천막 3개가 분향소 옆에 맞닿아 있어 마치 분향소 부속 천막 같았다. 바로 옆에서 울려 퍼지는 극우단체의 막말, 분향소를 철거하라는 악다구니는 매 순간 비수가 되어 피해가족들의 가슴을 도려냈다.

유가족들은 국회와 힘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간곡히 부탁했다. 제발 극우단체들의 2차 가해를 막아달라고, 현수막을 거두어달라고... 국회의원과 서울시장, 잠깐이지만 국무총리와 행안부 장관까지 왔다 갔지만 지금까지 해결된 건 하나도 없다.

용산경찰서에 관련 문의를 하자, 집회 신고를 했기 때문에 철거할 권한이 없다고 하고 용산구청 또한 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한 사안이라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지 석 달이 됐는데도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하지 않는 것일까?

굳이 따지자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용산구청은 재량권이 있다. 법률이 행정 모든 분야의 구체적인 경우를 규정할 수 없으니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유재량으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데 이를 재량권이라 한다. 보도를 점거하고 있는 천막은 도로법상 철거할 수 있고 지자체는 재량권으로 결정한다. 

극우단체 천막 철거 방법 없단 구청, 그건 방관일 뿐

2022년 3월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자들이 SK서린빌딩 앞에서 농성할 때 종로구청은 천막이 국유지를 점유하고 있고 통행에 방해가 된다며 도로법을 근거로 강제 철거하겠다는 계고장을 여러 번 붙였다.

당시 종로구청 담당자는 판례까지 들먹이며 철거를 강행하려 했다. 농성장 천막은 도로의 절반 폭도 차지하지 않았고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과 관련한 농성이니 재량권을 발휘하여 철거를 유보해달라고 담당자에게 부탁에 부탁을 거듭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피해자들이 추운 날씨에 거리에서 고생하는 피치 못할 상황을 헤아렸는지 강제집행은 하지 않았다.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직후 정부가 영정과 위패도 없는 합동분향소를 다급하게 차려 강제적 애도가 이뤄졌다. 참사를 당한 유가족들은 상황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장례식부터 치렀다. 정신없던 유가족들이 늦게나마 겨우 모여 제대로 된 분향소를 처음으로 차렸는데, 그 공간이 시민분향소다. 한 개인의 분향소가 아니라 국가 책임이 명확한 사회적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다.

신자유연대 천막은 보도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유가족들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는 극우단체의 천막과 현수막은 용산구청의 재량권만으로도 얼마든지 충분히 철거할 수 있다. 방법이 없다는 말은 그저 방관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조하는 것이다.

법원의 접근금지 가처분 기각, 잘못된 신호 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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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부근 이태원 입구에 마련된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주위를 극우보수단체가 설치한 현수막 10여개가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 권우성


지난 6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임정엽 수석부장판사)는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신자유연대와 이 단체 김상진 대표를 상대로 낸 분향소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광장의 특성, 집회 및 분향소 설치 경위 등에 비춰 보면 유가족협의회의 추모감정(행복추구권)이나 인격권이 신자유연대의 집회의 자유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극우단체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이지만, 참사를 당한 피해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다. 법원은 피해자에게 생채기를 내는 표현과 피해자를 모욕하기 위한 집회를 통상의 경우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인가, 안 하는 것인가. 법원의 결정은 2차 가해를 방치할 뿐 아니라 극우세력들을 부추겨 계속 가해해도 된다는 신호로 인식될 수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법규범까지 갈 필요도 없는 사안이다. 사회규범으로 생각해봐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사회규범이란 어떤 상황에서 특정한 행동을 장려하거나 또는 억제하는,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강요된 태도를 말한다. 유가족을 괴롭히고 모욕, 폄훼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장려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앞장서서 널리 공유해야 하는 행동일까?

인권침해를 장려하는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는가, 인권침해를 억제하는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는가? 반인권적인 상황을 목격하고도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사회라면 과연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이태원참사 #2차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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