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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으로 얼룩진 데이원 쇼크, 누가 책임질 것인가

[주장] 선수들과 농구팬만 애꿎은 피해자 돼... 신생팀 창단 기준 점검해야

23.02.08 13:34최종업데이트23.02.0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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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프로농구 신생 구단 고양 캐롯이 모기업 대우조선해양건설의 경영 악화로 끝내 매각 절차를 추진중인 것이 알려져 농구팬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매각이 진행된다면 캐롯은 한 시즌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단명 구단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난 2월 7일 연합뉴스 등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캐롯의 운영주체인 데이원스포츠가 매각을 추진중이며 현재 한 기업과 농구단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데이원스포츠는 대우조선해양건설을 모기업으로 하는 법인으로, 지난 2022년 고양 오리온 농구단을 인수해 재창단했다. 팀명은 캐롯손해보험이 네이밍 스폰서를 맡으며 고양 캐롯으로 정해졌다.
 
또한 데이원은 농구계 레전드이자 방송인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던 허재를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했고, 안양 KGC의 우승주역인 김승기 감독과 슈터 전성현 등을 영입하며 화제를 모았다. 고양 캐롯은 신생구단임에도 올시즌 20승 19패로 5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하며 6강플레이오프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운영주체인 데이원은 출발부터 불안했다. 데이원은 이미 오리온과의 인수 협상과정에서부터 잡음이 많았고, 그 핵심은 구단의 '재정 안정성'에 대한 불신이었다. 지난 6월 KBL에서 진행한 신규 회원사 가입 심사에서는 자료 부실을 이유로 회원 가입이 보류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자금 운영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하고 재정의 연속성과 투명성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결국 데이원스포츠의 모기업인 대우해양조선건설의 지불 보증이 이뤄지고 나서야, KBL의 승인을 받을수 있었다.
 
그럼에도 데이원은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서는 KBL 가입급 15억 원 중 우선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5억 원을 내지 못해 우려를 낳았다. KBL은 이에 캐롯의 정규시즌 출전을 불허할 수 있다며 경고했고, 데이원은 개막 직전에야 뒤늦게 1차 가입금을 납입하면서 간신히 시즌에 정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데이원의 운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현재 데이원은 KBL에 지불해야 할 2차 가입비의 납부 마감일인 3월 31일까지는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여기에 캐롯 선수단, 사무국에 대한 임금이 벌써 두 차례나 체불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프로농구에서 구단이 경영난과 매각설 등으로 위기에 봉착한 사례는 2001년 여수 코리아텐더(현 수원 KT) 와 2012년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등이 있다. 특히 코리아텐더는 모기업의 재정 상태 악화로 선수단에게 약 6개월 동안 월급을 지급하지 못했고, 구단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는 프로농구가 아직 자리잡지 못한 초창기였고 이후로 한동안 비슷한 사태가 재현된 경우는 나오지 않았다. 농구인기가 침체된 시기에도 안정적인 구단 운영과 급여-복지 등 충실한 계약이행은 외국인 선수와 에이전트들도 극찬할 만큼 KBL의 높은 신뢰도를 상징하는 자랑거리였다. 주로 국내 굴지의 유명 기업들이 운영해온 프로농구에서 적자로 어려움을 겪을지언정, 대부분 최소한의 구단 운영 자체는 정상적으로 이뤄져왔다. 심지어 데이원처럼 1년도 안 된 신생구단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막장으로 치달은 경우는 전대미문이다.
 
현실적으로 데이원이 회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데이원의 모기업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지난 6일 법원이 기업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내릴 정도로 경영이 크게 악화했다. 김용빈 대우조선해양건설 회장도 지난달 초 경영환경 악화를 이유로 대한컬링연맹 회장직과 대한체육회 이사직에서도 물러난 상태다.
 
문제는 이런 사태를 과연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운영주체인 데이원과 대우조선해양건설에 있지만, KBL과 농구계도 이 사태를 방치하고 악화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데이원에 대한 의구심은 이미 농구단 인수 작업 때부터 숱하게 제기된 바 있다. 데이원은 농구단을 창단하면서 여러 스포츠에 동시에 손을 뻗쳤고, 고양에서 프로축구단 창단도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고양시는 데이원스포츠의 자금 조달과 운용 계획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부적격 판정을 내린 바 있다. 결과적으로는 고양시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반면 같은 상황에서도 농구계의 판단은 달랐다. 고양 캐롯의 전신인 고양 오리온의 모기업 오리온 구단은, 대구 시절부터 25년 역사의 농구단을 충분한 검증도 없이 매각하고 KBL와 농구팬들에게 폭탄을 떠넘긴 격이 됐다. 또한 KBL은 이미 데이원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10개 구단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만 집착하여, 데이원의 리스크를 적당히 눈감아주는 실책을 저질렀다. KBL은 데이원의 가입비 미납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일시적인 9개 구단 체제와 리그 파행을 감수하고서라도 데이원의 리그 참여를 불허했어야 했다.
 
또한 허재는 '농구계의 아이콘'이라는 자신의 위상을 바탕으로 캐롯 농구단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예능 방송인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귀>에 선수단에 함께 고정출연하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공식석상에서 허재는 항상 캐롯의 '구단주'로 자신을 소개한 바 있다. 그렇다면 구단을 둘러싼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태도와 답변을 내놓아야할 의무가 있다.

창단 당시 허재는 구단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우려도 자신감을 드러내며 "아무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 시즌 후 평가해 달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구단을 둘러싼 각종 상황이 악화된 이후에는 입을 닫고 침묵만 지키고 있다.
 
평생 농구선수와 감독만 경험하며 행정이나 경영 관련 경력은 전무한 그가 처음부터 과연 구단의 경영상태와 내부 사정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개인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그저 농구단 마케팅을 위한 '얼굴마담'에 불과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체면을 구기고 있다.
 
KBL은 그동안 캐롯과 데이원에 대한 우려가 나올 때마다 '지켜보고 있고,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뻔한 답변만 내놓았다. 가뜩이나 프로농구의 인기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농구단 운영에 뛰어든 기업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도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오히려 리그를 파행 위기에 몰아넣는 상황을 부채질한 격이 됐다.

무책임으로 얼룩진 데이원의 1년 행보 동안, 묵묵히 최선을 다한 선수들과 농구팬들만 애꿎은 피해자가 됐다. KBL과 농구계는 이제라도 이 사태에 분명한 책임을 지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한다. 또한 데이원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생팀 창단 기준과 검증 절차부터 다시 점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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