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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없다고 느껴질 때... 연극 '노스체'가 건넨 위로

[리뷰] 원전사고 이후 25년, 한 시골 마을에서 펼쳐진 일을 다룬 <노스체>

23.02.09 15:34최종업데이트23.02.0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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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산실 선정작 연극 <노스체>의 공연장면 ⓒ 유경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우리는 재난의 시대를 어떻게 마주하고 있을까?" 

원전사고가 발생하고 25년 후의 모습을 그린 <노스체(NOSCE)>(2월 3일~12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를 쓴 황정은(41) 작가는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이 연극은 재난에 휩싸인 인간을 위해 개발된 로봇과 인류에게 불어닥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대재앙의 현장)에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특히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 놓인 산물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기 때문에 성격을 굳이 설명한다면, 암울한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재난 이후의 세계를 고민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맞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재난의 산물이 때로는 한순간에 죽은 마을로, 구역 안에 사람으로, 이곳에 파견된 로봇으로 대상이 옮겨가기도 한다. 이처럼 재난이 낳은 상흔을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대신해 희생될 누군가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재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하게 만든 연극이다. 

인간에 의해서 개발됐지만, 마지막 임무를 마치면 곧 폐기될 운명에 처한 재난로봇 '노스체'는 남겨진 구역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해결사로 등장한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안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재난로봇을 정했나 보다. 여하튼, '노스체'를 사이에 두고 재난을 마주하는 다섯 명이 벌이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가지 못하는 재난 현장에 투입되어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대신 처리하는 로봇은 (자신의 이름 덕분에) 세상의 모든 문제점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극중에서도 "재난이 있는 곳에 노스체가 갑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노스체가 갑니다. 여러분의 아픔을 노스체가 압니다"를 외치면서 등장하지만, 정작 최후의 순간에는 "전 이제 무엇을 하면 되죠?"라고 되물을 만큼 인간에 의해 조정되는 피동적인 처지에 놓인 노스체가 궁금하다.

로봇 통해 재난을 이야기하는 근본적인 이유    
 

창작산실 선정작 연극 <노스체>의 공연장면 ⓒ 유경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원전폭발 사고가 발생했던 중심지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 재난로봇이 들어온다. 언젠가 텔레비젼과 뉴스에서 본 듯한 로봇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연극은 '재난'이 전체를 짓누름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이 공연이 재난을 다루는 방법은 평온하게 흘러간다. 가령, 원폭 피해로 인한 상흔이 튀지도 않으며, 등장인물들은 건강이 불편해 보이지만 외형적으로 극단의 장애를 표현하지도 않았다. 이처럼 재난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무대 디자인은 여느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가정집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게 세팅했다. 아니 오히려 '한적하다'는 설명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와 관련하여 황정은(41) 작가는 원작을 쓰게된 계기를 사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언젠가 강의를 통해 2015년 미국에서 열린 '다르파 로봇 챌린지'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재난구조 로봇을 가리는 대회였는데, 당시에 대한민국 카이스트 팀의 휴보(HUBO)가 우승을 했어요. 휴보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눈길이 간 것은 중간에 넘어지면서 탈락한 로봇이었어요. 인간을 대신해 험지로 향할 로봇들이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대에 올라, 인간을 대신해 얼마나 인간답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시험받고 있는 것 같았죠. 그 모습을 보면 어쩌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대신해 희생될 누군가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요?" 

하지만 이 연극은 재난을 배경으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치지만, 오로지 재난을 부각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재난은 거들뿐 그것을 자극적으로 확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재난이 폭발했지만, 인간의 삶은 중단되지 않은 것을 강조하려 한다. 그래서 "재난이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우리는 이렇게 닥친 재난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화두에 올림으로써 인간 사회에 몰아닥친 재난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하려 의도했다. 이와 관련해 재난 이후를 다루는 장면을 무대로 옮긴 윤성호 연출가는 이렇게 작품을 소개했다. 

"작품에는 방사능으로 인해 커져버린 나무 열매도, 다리가 열 개씩 달린 가축도, 비정상적으로 커진 꽃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구역의 사람들이 남들보다 기침을 좀 많이 하거나, 청력이 떨어지거나, 갑상선이 약할 뿐이죠. 또한 재난 로봇이 등장하는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지만 작품은 그러한 문명의 흐름에서 비껴간 지역, 시간이 멈춰있는 공간에서 펼쳐집니다. 개념적으로는 원전 폭발이 일어났을 시점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로 두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시골 공간을 생각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공간에 들어오는 등장인물들, 그들이 지닌 소품들에서 무대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을 느낄 때 앞서 언급한 배경의 구조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창작산실 선정작 연극 <노스체>의 공연장면 ⓒ 유경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원전 폭발 후 25년 만에 토지와 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재난로봇 '노스체'가 들어온다. 노스체는 마을에 머물면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느낀다. 사람과 동물, 숲과 물이 오염되면서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다. 공식적으론 아무도 살지 않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몇몇은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세상과 단절된 채 내부에는 자신들만의 삶을 선택했던 세 명의 내부인들이 있다. 원전 폭발 후유증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현', 몸이 약한 '희'. 갑상선 수술을 했던 '옥'이 그들이다. 원전으로 인한 유해 물질 때문에 그들은 피폭당해서 건강과는 거리가 있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게 설정하지 않았으며, 25년간 천천히 영향이 끼쳤겠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처럼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내부인의 아픔을 표현했지만,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마을에는 멧돼지가 침범할 만큼 야생동물이 늘어났다. 여기에 무화과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이처럼 모든 것이 메말라 죽어보이는 땅에도 생명이 샘솟는 설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작가 '필'은 폭발지를 관광하는 다크투어에서 길을 잃고 마을에 들어온다. '현'은 어머니 '연'에게 왜 왔냐며 원망을 숨기지 않는다. '희'는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을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옥'은 오염되고 망가진 그 마을에도 생명이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필'은 그 마을과 '연'에 대한 연민으로 마을에 잠시 머물고, 이들은 묵은 감정과 두려움, 희망 등이 뒤섞인다. 

외부에서는 관광을 목적으로 마을에 호텔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외부에 대한 원망과 경계심을 보이던 '현'은 오히려 외부로 나가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던 '희'는 남기로 결정했다. 마을 사람들은 집을 팔고 외부로 나가든가, 더 깊숙한 곳으로 이주한다. 그곳에 홀로 남겨진 노스체는 마을의 유해 물질로 기능이 망가져 더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며 수명을 다한다.

재난을 마주하는 다섯 명의 또다른 시선들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온하지 않았던 그라운드 제로는 절처하게 외부와 격리됐다. 사고발생 이후 생활의 터전이라 믿고 자신들이 살아왔던 방법을 체득해온 세 명의 구역인들과 외부에서 저마다의 사연으로 경계 안에 유입됐던 두 명의 외부인이 출연한다. 이들은 비슷하면서 재난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에서 묘한 차이가 있다. 

#1. 재난이 발생한 이후 25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외부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한 70대 할머니 '옥'(구역인). 그는 "멀쩡한 사람들이 여길 왜 와? 그것도 관광으로"라며 경계 안에서 중심을 보여준다. 그는 "보상금 같은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우리 집에서 조용히 살 거"라며, 내외부가 섞이는 것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을 무작정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다친 건 그냥 안 보내, 그게 사람이든, 짐승이든"이라고 말하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2. 태어나면서 동시에 재난을 온몸으로 겪었던 20대 여자인 '희'(구역인)는 후유증으로 인해 몸이 좋지 않다. 기침이 멈추지 않지만 갇혀진 상황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다. 경계 안보다는 외부 사회에 대한 동경이 멈추지 않으며, "모르는 사람, 모르는 마을, 모르는 세상 등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현실보다는 이상에 가까운 꿈을 꾼다. 

#3. 앞선 '희'와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부터 원전 폭발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청각을 잃은 20대 남자 '현'(구역인). 그는 자신이 태어난 존재 이유조차 들을 수 없었으며,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경계 안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염세적이기는 하지만 이상보다는 현실에서 삶의 방식을 찾는다. 외부세계를 무작정 동경하기보다는 힘들더라도 밭일을 해서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려는 전형적인 현실주의자다. 

#4. 외부에서 바라보는 그라운드 제로의 삶이 알려진 것만큼 심각하지 않으며, 평온하다고 믿고 있는 시선을 가진 40대 사진작가 '필'(외부인). 그는 정확한 근거 없이 이곳을 단절시키려 했던 시위자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기 때문에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 순수하게 외부에서 유입됐지만, 구역인과 소외된 마을을 바라보는 선입견을 제대로 판단하고 싶은 인간미가 넘치는 유형이다. 

#5. 원전 폭발이 발생할 25년 전에 구역 안에 있었지만 사고와 더불어 살기 위해 외부로 도망갔던 40대 여자 '연'(외부에서 돌아온 구역인). 그는 구역인이었지만 사고가 발생하면서 외부에서 받는 따가운 시선과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움에 싸인다. 게다가 자식을 버리고 갔다는 죄책감은 그가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은 과거가 있었던 것을 회상한다.  


관계를 되돌리는 게 중요한가요?
 

창작산실 선정작 연극 <노스체>의 공연장면 ⓒ 유경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노스체>가 이렇게 재난을 대하는 다양한 시선을 들려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서로 다른 유형과 이유를 들어 재난을 대하는 방식에서 등장인물이 충돌하고 있지만, 노스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를 들어보면 여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재난으로 인해 수많은 상흔을 이전의 것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노스체가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즉,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인식하면서 그들은 재난에서도 살아가고 버티는 것을 생각할 것이라는 황 작가의 대답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재난 속에서, 우리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막연한 낙관만으로, 혹은 날카로운 냉소만으로도 대응할 수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것일지 모릅니다. 묵묵한 작은 걸음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주어진 선택지가 많지 않을 때, 그때에라도 우리가 내디딜 수 있는 작은 걸음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재난이 내재된 안이든 밖이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고 어떤 삶이든 사람이 발을 디딘 곳에는 각자의 역사가 흐른다는 사실도. 수많은 재난이 일어나고 어떤 선택권도 없이 무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것은 아닐까. 이것에 관한 마지막 대사가 은은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곳이 전처럼 좋아지지 않아도 괜찮다. 무화과가 열릴 수 있는 정도면, 그걸로 됐다."
노스체 창작산실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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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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