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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여, 나는 그대에게 먹이를 주고 싶지 않다

겨울, 낙동강하구 맥도생태공원에서 쓴 일기 한 자락

등록 2023.02.10 17:51수정 2023.02.1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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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방생 법회 장면 녹색 사찰 백련사(울산시 언양읍 다개리 소재)가 기획한 생태 방생 법회 장면 (낙동강하구 맥도생태 공원) ⓒ 윤지형


지난 8일, 장대한 낙동강하구를 따라 조성된 생태공원 중 하나인 맥도생태공원의 한 구역인 동쪽 맥도강(麥島江)의 강변을 다녀왔다. 겨울 철새인 고니(백조의 순 우리 이름)에게 먹이를 주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햇살 가득한 날씨도 이날 모인 50여 명의 사람들의 환한 표정도 봄날만 같은 날이었다.


'2023년 큰고니 먹이 주기 생태 방생 법회'를 마련한 '녹색사찰' 백련사(울주군 언양읍 다개리 소재)의 스님들과 마흔 명에 가까운 불자들. 법회 전날 고니의 먹이로 고구마 600kg를 구입한 이들은 이틀에 걸쳐 그걸 잘게 썰었고 몇몇 '보살님'은 바삐 도마질을 하느라 손에 물집까지 잡혔다고 했다.

또 다른 고니의 친구들도 왔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법만 스님, '(사)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몇몇 활동가들,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의 김다미아나 수녀님과 동행한 거제성당의 여성 신도 그리고 길을 가던 몇몇 주민과 산보객, 비상하는 고니를 사진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

고니 위해 고구마를 던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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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하구를 지켜주세요!"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법만 스님 (오른쪽에서 두번째), 울산불교환경연대 대표 천도 스님 (왼쪽에서 세번째) ⓒ 윤지형


사람들은 저만치서 흘러가는 맥도강을 유영하거나 그 위를 멋지게 나르는 고니와 큰고니 떼의 수려한 모습에 탄성부터 금치 못했다. 맥도강은 그야말로 꿈의 '백조의 호수'였던 것이다. (큰)고니들은 부산하게 날개짓을 크게 하며 꾸욱, 꾸욱 저마다 소리를 질러댔다. 야생의 촉수로 사람들이 가져온 먹이가 강변에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그날의 '생태 방생 법회'를 앞장서 이끈, 백련사의 전 주지이자 울산불교환경연대 대표인 천도(千道)스님의 낭랑하고 힘찬 목소리도 떠올려본다.

"불가에선 전통적으로 물고기 방생과 같은 소극적 방생을 해 왔지만 강과 바다가 오염되면 물고기를 놓아주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날로 파괴되어 가는 생태계를 살려서 뭇생명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태 방생인 것입니다."


법회를 마치고 이어진, 고니에게 먹이를 주는 즐거운 일은 삽시간에 끝났다. 강 위로 만들어 놓은 좁고 길지 않은 데크 길로 걸어 들어가 강물에 박스와 자리에 담긴 고구마를 힘껏 뿌려주면 되었으니까. 우리가 고구마를 던지는 동안 멀찌감치 떨어져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고니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모를 사람은 없었다.  

"이젠 어서 물러갑시다. 그래야 쟤들이 안심하고 이쪽으로 와서 먹지요."
"근데, 오늘은 잘 먹겠지만 내일은, 앞으로는 어떡하나? 여기를 떠나 시베리아 등지로 날아가는 게 2월 말쯤이라는데."
"그야...."


하기야 좀 전 법회가 끝났을 때 천도스님은 이번 방생법회를 위해 많은 이들이 보시를 했다며 일금 100만 원을 '(사) 습지와 새들의 친구'에 전했다. 다음의 고니 먹이주기는 부산에서 해 달라는 당부였다. 마땅히 그리하면 될 터였다. 그런데 잠시 후면 강바닥에 가라앉아 있을 고구마로 즐겁게들 배를 채울 고니들을 뒤로 하고 맥도강변을 떠나오는 내 마음은 오히려 먹구름이 잔뜩 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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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야... 조금만 기다리렴 '녹색사찰' 백련사(언양읍 다개리)의 스님들과 신도들이 썰어온 고구마 600kg. ⓒ 윤지형


어째서 야생 고니에게 사람들이 먹이를 주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오랜 시간 동안 고니는, 저 고고한 백조는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아름답게, 독립적으로 잘 살아왔다. 시베리아와 낙동강하구 사이의 수천수만 킬로미터의 공간을 해마다 힘차게, 힘겹게 비행하며 가히 영웅적인 삶을 살아왔다 할 것이다.

눈먼 개발과 성장 제일주의가 모든 것을 압도해버리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무분별한 토목공사와 산업시설 유치로 낙동강하구의 광활했던 겨울철새 서식지를, 오래전 법으로도 자연보호구역으로 확보해둔 땅을 때론 야금야금, 때론 무자비하게 파괴하여 강물에서 절로 자라는 세모고랭이 같은 맛난 먹이를 점점 없애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람들도 이젠 더이상 모를 수가 없게 되었다. 전세계가 하나로 엮인 인터넷 시대 아닌가. 이른바 '환경보호'를 해야 한다는 것, 자연이 살아야 사람도 보다 나은 '웰빙'을 할 수 있다는 것, 생태계 파괴가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것, 지구의 기후 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것 등등을 사람들이 어찌 모를까.

고구마 던지는 사람들을 향한 고니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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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 먹이 주기를 끝낸 후 고니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대교 건설 철회를 요구하는 사람들. ⓒ 윤지형


부산시와 강서구청이 밀어붙이고 있는 대저대교 건설 관련 공청회에서 환경단체 사람들을 향해 "새가 그렇게 소중하면 새들하고나 살아라. 사람이 먼저다"라고 소리친 몇몇 강서구민들도 예외는 아니지 않았을까. 이윤 추구가 최상목표인 기업들도 친환경 운운으로 장사 밑천을 삼는 마당이니 '그런 정도는 아주 훤히' 알고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낙동강하구에 더 많은 '대교'(대저. 엄궁, 삼락대교)를 건설하는데만 혈안이 된듯한 부산시, 거짓작성된 것이 탄로나 진작 스스로 반려했던 환경영향평가서를  얼마전 원안 그대로 재접수한 부산시, 그나마 남아있는 낙동강하구 자연보호구역을 '재지정'이란 이름으로 축소하려드는 부산시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마냥 캄캄해짐을 어쩔 수가 없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이들만은 정녕 모르는 걸까? 뻔히 알면서도 막대한 돈과 결탁하려는 저 권력의 횡포 앞에 우리는 갈수록 그 수가 격감하고 있는 고니만큼이나 작고 여리고 아프다.

배고픈 이에게 밥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물 한 잔 건네는 일은 아름답다. 그것은, 갈수록 잊혀만 가는듯한 '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가 우리 욕심만 앞세움으로써 고니가 배고파하게 되고 굶어 죽어 가고 있다면 단 하루라도, 이틀이라도 먹이를 주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최소한의 사람의 도리일 터이다.

가깝게는 울산과 부산의 불교환경연대의 사람들, (사)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사람들, 이들과 함께 하는 적지 않은 시민들이 비록 철벽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낙동강하구를 지키자', '뭇 생명을 수호하자'고 외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음을 누가 모를까. 그럼에도 나는 오늘 내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다른 목소리를 듣는다. '고니여, 나는 그대에게 먹이를 주고 싶지 않다!'

그날 아침 우리가 맥도강변으로 다가갔을 때 고니들은 날개짓을 하며 소리를 질렀었다. 사람을 경계하는 야생 동물의 자연스런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 속에서는 먹을 게 점점 없어져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 가는 고니로선 굴욕적인, 슬픈 환영의 제스처이기도 했으리라. 필경 그래서였을 것이다. 20년 넘게 새들의 친구로 살아온 (사)습지와 새들의 친구의 박중록 운영위원장(64)은 며칠 전 지나가는 말로 내게 털어놓았다.  

"겨울철에 여기에 오면 마음이 아파서 다시 오기가 싫고 겁이 납니다."

백련사에서 맥도생태공원으로 달리는 전세버스 안에서 "마냥 눈물이 솟구쳤다"는 천도스님의 가슴에도, 당신네 사람들이 먹이를 주지 않아도, 더이상 생태계를 파괴, 교란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타고난 야생의 생명력과 고고한 자태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겨울철새 고니들의 항변과 호소가 가득 날개짓하고 있었을 터다.   

미국의 농부이자 생태적 삶을 실천한 웬델 베리는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성공할지 여부를 물을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우리는 '무엇이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만 물을 권리가 있다. 우리가 이 지구에서 계속 살고 싶다면 지구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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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가 고파요 (사)<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미국 기업 파타고니아의 지원금으로 제작한 낙동강하구 생태 지키기 홍보 포스터 5종 중 하나 ⓒ 윤지형

덧붙이는 글 인터넷 신문 <인저리 타임>에도 보냅니다.
#낙동강하구 #습지와 새들의 친구 #울산불교환경연대 #박중록 #천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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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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