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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지는 안과 밖의 격차... 한겨레 신문 위기의 본질

[주장] 주주 독자와 동떨어진 사장 선출제도 고쳐야, 신뢰회복 위해 법조기자실 개혁 앞장서라

등록 2023.02.11 18:09수정 2023.02.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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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본사. ⓒ 연합뉴스

 
<한겨레> 사장 선거(주주사원 투표)가 지난 8일 있었습니다. <한겨레>는 권언유착, 경언유착의 낡고 썩은 기존 언론 상황 속에서 1987년 민주화운동의 바람을 타고 전 시민적인 지지 속에서 탄생한 역사적 경위가 있고, 그동안 진보적인 미디어, 대안 미디어의 맏형 노릇을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민사회가 사장 선거를 포함해 <한겨레>의 장래와 운명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명의 후보가 출마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젊은 후보, 그것도 공채 출신이 아닌 최우성 후보가 뽑혔습니다. 한겨레 35년 역사 중 창간 주역 또는 공채 출신이 아닌 첫 사장의 등극입니다. 오는 3월 25일 주주총회 선임 절차를 거쳐 3년 임기의 대표이사에 취임하게 됩니다.

<한겨레> 안에서도 이변으로 받아들여지는 최 후보의 당선은, 석진환 전 부국장과 대장동 사건의 주역인 김만배씨 사이의 '9억 원 거래' 사건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겨레> 창간 이래 최대의 추문인 이 사건이 내부에 몰고 온 충격과 위기의식이 때마침 있었던 사장 선거에서 이변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겨레>의 안과 밖

그러나 여기서 냉철하게 돌아봐야 할 것은 <한겨레> 밖의 위기의식과 <한겨레> 안의 위기의식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입니다. <한겨레> 사원을 안, 독자와 주주를 포함한 시민사회를 밖이라고 한다면 안과 밖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의 <한겨레> 사장 선거가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 외부에서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언론' '또 하나의 언론이 아닌 다른 언론'이라는 창간 초심에서 점차 멀어져 가는 보도 태도를 위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에서는 기업으로서 <한겨레>의 지속 가능성이 깨질 수 있다는 걸 가장 큰 위기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쉽게 말해 '가치 지향'의 밖과 '물질 지향'의 안 사이의 낙차입니다. 이런 내부의 인식은 최 신임 사장을 포함해 이번 선거에 출마한 5명의 선거 홍보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 사장 후보는 당선 일성으로 "매우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습니다"라면서 "구성원들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한겨레가 신뢰받는 언론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두루 지혜와 마음을 모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외부의 시각에서 보자면, '구성원들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보다 '신뢰받는 언론으로 거듭나는' 것을 앞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당연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석진환 전 부국장 추문이 터지자마자, 시민언론 <민들레>에 <'읍참 한겨레'를 해야 한다>는 긴급 기고를 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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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사는 지난 8일 주주 사원 투표를 통해 제21대 대표이사 후보로 최우성 미디어전략실장을 선출했다. 최 대표이사 후보는 오는 3월 25일 열리는 주주총회 선임 절차를 거쳐 3년 임기의 대표이사에 취임하게 된다. 최 후보는 2006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경제부 금융팀장, 한겨레21 편집장, 경제산업부장 등을 거쳤으며, 한겨레신문 시민 경제센터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 한겨레 제공

 
'창간 정신'과 '생존', 원심력과 구심력의 간극

저는 <한겨레>의 안과 밖의 인식이 점점 멀어지는 근본 원인이 한겨레 사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겨레> 사장 선거 제도의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겨레>의 경영권 창출 방식을 안과 밖의 차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고치지 않으면, 갈수록 이런 차이와 갈등은 커질 것이라고 봅니다.

<한겨레> 사장 선출제도는 그동안 세 차례 바뀌었습니다. 가장 처음엔 창간위원회에서 사장 후보를 뽑았고, 1992년부터 사외 대표 10명, 사내 대표 10명으로 구성된 경영진 추천위원회에서 사장 후보를 간선하는 식으로 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999년부터 사원 직선으로 사장 후보를 뽑는 사원 직선제가 도입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도의 변천 방향을 보면, 점점 주주의 참여보다 '효율'을, 사외보다 '사내'를 중시하는 흐름이 강화됐습니다. 경영권 창출 과정에서 점차 주주가 배제되는 방향이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사원 직선제 초기만 해도 안과 밖의 괴리가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창간 멤버들도 많이 남아 있고, 창간 정신에 공감해 입사한 '열혈 사원'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겨레>의 사원 정도면 창간 정신을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듯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창간 정신은 흐려지고 제도는 힘을 발휘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창간 정신을 중시하는 바깥의 원심력과 기업의 생존을 중시하는 안의 구심력이 불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굳어진 것입니다.

저는 안과 밖을 분단하고, 안과 밖의 거리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지금의 사원 직선제가 <한겨레>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따라서 <한겨레>의 사장이 누가 되든 밖의 소리와 생각을 구조적으로, 의무적으로 받아들이는 식으로 경영권 창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한때 정부의 임명이나 이사회에서 뽑았던 <한국방송> <문화방송> 등 공영방송의 사장 선출 과정에 바깥의 시각을 반영하는 시민평가단 제도가 도입된 데 비해, 애초 주주의 뜻으로 사장을 뽑았던 <한겨레>가 바깥 시선을 경시해도 되는 폐쇄적인 사원 직선제를 고수하고 있는 모순된 현실을 잘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취재·보도 방식 개혁 그리고 잘못된 보도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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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3일 당시 유현정 서울중앙지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TF 팀장(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검사)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 구속기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경영권 창출 제도 개혁 말고도, <한겨레>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또 있습니다.

최근 문제가 된 대장동 사건 취재에 관련된 기자의 영향이 작용했는지 아닌지를 점검해 공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검찰 및 법조 기사의 취재·보도 방식을 점검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검찰·법원 기자실을 탈퇴하느냐 마느냐 하는 낮은 차원을 넘어 기자실과 기자단 제도가 갖는 문제를 들춰내고 개혁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더불어 최근 거의 모든 기소 사안에 관해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난 윤미향 의원(무소속) 사건과 관련한 보도도 <한겨레>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검증해 공개 보고서를 내야 한다고 봅니다.

잘못된 보도를 반성하는 것은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뉴욕타임스>나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의 언론들이 큰 오보나 추문이 터질 때 신뢰 회복을 위해 대응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는 또 <한겨레>가 창간 초기에 두었던 여론매체부를 부활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미디어의 일탈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이 중요한 시기는 없다고 봅니다. 미디어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일뿐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미디어 환경은 좋은 뉴스 소재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미디어 전담 부서나 팀의 존재는 <한겨레>의 내부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겨레>가 아직도 이 시대의 귀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한겨레>가 이 시대에서 지고 있는 소명이 무엇인지를 절감하고, 이 나라의 언론 발전을 위해 다시 힘찬 발걸음에 나서길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전 <한겨레> 논설실장입니다.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한겨레 #사장선거 #대장동 #법조기자단 #윤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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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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