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2 11:43최종 업데이트 23.02.23 09:16
  • 본문듣기
"OO야, 올해 몇 학년 되니?"

많은 이들이 학교에 다닐 법한 나이의 아이들을 만나면 습관처럼 이렇게 묻는다. 이 질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별 고민 없이 답을 한다. "저 이제 중2 돼요!" "헐. 고3이에요"라고. 하지만, 상담심리사로 일해오면서 나는 알게 됐다. 이 질문이 때로는 매우 부적절할 수도 있다는 걸.


내가 만나고 있는 내담자들 중 몇몇은 제도권 교육 밖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종종 내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원해서 이 길을 선택했고, 나름 자랑스러운데 사람들이 학년을 물어올 때마다 뭔가 자괴감이 들어요. 학교 밖이 아니라 사회 밖에서 사는 느낌이랄까. 그럴 때는 '학교 안 다니는데요', 이 말이 잘 안 나와서 친구들 학년으로 대답하는데 그럼 뭔가 거짓말하는 거 같기도 하고 기분이 좀 그래요."
 

학교를 다니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가정 아래 자연스럽게 입에 붙은 이 질문은 다른 길을 걷는 아이들을 소외시키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만나면서 나는 수능 날이면 유독 마음이 불편해져 온다.

대입 시험 때문에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교통이 정비되며, 온 나라에 긴장감이 맴도는 그날. 그 시험을 치지 않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싶었다. 종일 수능 시험장 풍경과 시험 난이도, 예상 컷 라인으로 이어지는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에 도배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이들은 소외감을 느끼겠구나 싶어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런 소외감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면 단지 대입을 치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 대한 '부적절감'을 느끼겠구나 걱정도 됐다.

지난해 수능날도 나는 이런 기분으로 지냈다. 그러던 중 습관처럼 <오마이뉴스>의 홈페이지를 클릭했다.

'매년 수능 날마다 고졸인 내가 하는 일'( https://omn.kr/21ns9 )

이날 <오마이뉴스>의 톱기사 제목이었다. 학력차별 철폐를 위해 애쓰는 시민단체 '투명가방끈'의 활동을 담고 있었다. 나는 순간 마음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수능날 수능을 치르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 기사에 온종일 짓눌렸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수능을 '당연하게' 다루지 않는 매체가 있다는 데 안도감이 들었다.

창간 23주년을 맞은 <오마이뉴스>에 내가 바라는 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사회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는,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매체가 돼 주는 것 말이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022년 11월 17일, 수험생들이 전광판의 문자 응원을 받으며 고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잘 모른다'는 겸손한 자세로 바라보기

상담심리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잘 모른다'는 겸손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고, 다른 배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그렇기에 누구나 다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그 누구도 다른 이에 대해 함부로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집단주의 문화가 짙은 한국 사회는 종종 주류의 가치를 기준으로 타인을 마치 '잘 아는 듯' 판단하고 평가한다. 이럴 때 주류의 가치와 다른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소외감에서만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주류의 생각이 '전부'인냥 다뤄지는 뉴스들에 자주 노출되면서 이런 소외감은 '내가 잘못된 건 아닌가'라는 부적절감으로 이어진다. '부적절감'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고유한 삶의 길에 대해 부적절감을 느낄 때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때로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나는 주류의 가치를 '당연한 듯' 전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언론의 보도들은 누군가에게 수치심과 부적절감을 느끼게 하는 '집단 가스라이팅'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마이뉴스>가 상담자들이 훈련하는 'I don't know(나는 모릅니다)'의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런 집단 가스라이팅에 제동을 걸어줬으면 한다. 상담자들은 내담자들을 만날 때 '사람은 이럴 것'이라는 짐작하는 마음들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 대해 잘 모르니 내게 당신을 말해주세요'라는 자세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럴 때 타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떠한 현상을 '잘 모른다'는 겸손한 자세로 바라볼 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보일 것이고, 각기 다른 마음들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마음들이 존재함을 언론이 보여줄 때, 주류와 다르다는 이유로 '부적절감'을 느끼는 이들 역시 줄어들 것이다.

긍정적 정서를 일깨우기

나아가 이런 태도가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서로를 판단하는 대신 궁금해하며 존중하는 마음을 키우는 데 <오마이뉴스>가 기여하면 좋겠다. 그런데 이 '궁금해하는 태도'를 기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매몰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즉, 세상을 넓게 보는 마음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긍정적인 정서다. 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정서를 느낄 때 시야가 확장됨을 증명했다. 이른바 '긍정 정서의 확장 및 구축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긍정적인 정서를 느낄 때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가 확장되며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할 수 있을 때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되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보다 잘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긍정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기사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문화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한 글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의미를 건져낸 글들. 이런 글들이 더 많아져 <오마이뉴스>의 독자들의 마음에 긍정적인 정서들이 불러일으켜지길, 그래서 더 세상을 바라보는 폭과 자신과 타인을 수용하는 마음의 폭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다행히 <오마이뉴스>는 '시민기자제도'라는 좋은 발판을 가지고 있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판에 박힌 전문가의 시선이 아닌 소박한 시선으로 문화 현상들을 분석한 시민기자들의 글들엔 지금도 따스한 시선들이 많이 묻어난다. 시민기자들의활동이 보다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능날 수능을 치르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한 오마이뉴스의 기사 ⓒ 송주연

   
'나는 잘 모른다'는 겸손한 자세 그리고 '긍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따뜻한 시선. 이를 실천함으로써 나는 <오마이뉴스>가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아이들에게 '학년'을 물을 때, '나이'를 물어봐 주는 매체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시선들이 오고 갈 때 각자의 고유함과 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자기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 역시 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나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 시험 날 걸렸던 <오마이뉴스>의 톱기사('매년 수능날마다 고졸인 내가 하는 일')를 대학 대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한 한 청소년 내담자에게 보여줬다. 내담자는 기사를 보고 자신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느낌에 큰 위안을 받았고, 소외감과 부적절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에 이런 기사들이 더 많아지길, 그래서 주류의 '당연함' 속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부적절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돼 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