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오스 독립기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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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시기 짧게 일본의 지배와 전후 혼란기를 겪은 라오스는 1946년 8월, 프랑스 연맹 산하의 반독립국이 되었습니다. 점차 자치권을 확대하던 라오스가 완전히 독립국가가 된 것은 1953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라오스를 비롯한 인도차이나 전역의 이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수하죠.
라오스는 1955년 처음 총선을 치렀고, 각 세력 사이의 연합정부가 수립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생 독립국가의 다양한 정치세력이 함께 정부를 세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죠. 라오스의 정치는 한동안 연합과 쿠데타, 내각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라오스의 공산주의 세력, '파테트 라오'의 힘은 점차 거세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2차 인도차이나 전쟁, 곧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역시 지난번 언급한 것처럼 라오스는 전쟁의 당사국이 아님에도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폭격을 받았습니다. 이 당시 발생한 불발탄은 지금까지도 라오스 국토 개발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도 벌어졌죠.
결국 베트남 전쟁이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가던 시기, 라오스에도 공산주의의 승리가 분명해졌습니다. 사이공이 함락되고 4개월 뒤인 1975년 8월, 파테트 라오도 비엔티안에 입성했습니다.
라오스 왕국은 그렇게 무너졌고, 라오스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당시 파테트 라오를 이끌던 수반으로, 라오스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초대 주석이 되는 수파누웡 본인이 라오스 왕국의 왕족이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지요.
비엔티안에서 버스를 타고 태국 농카이로

▲ 라오스 주석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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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수립된 라오스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비엔티안을 수도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뒤로 여러 개혁과 개방을 거치며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색채는 많이 옅어졌지만 말이죠.
라오스의 현대사는 주변국과 끝없는 충돌의 연속이었습니다. 내륙국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태국의 지배로 도시는 파괴되었고,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또 그 사이를 베트남이 밀고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라오스의 수도는 태국과 접경하고 있는 비엔티안입니다. 라오스는 최근 중국의 막대한 투자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라오스가 가장 많이 교역하는 국가는 태국입니다. UN 세관통계 자료를 보면, 태국과의 교역량은 2위인 중국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라오스는 라오어와 함께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 프랑스어를 활용하는 경우는 없다지만, 관공서의 표지판은 라오어와 프랑스어가 늘 병기되어 있습니다. 라오스는 프랑코포니 회원국이기도 하죠.
베트남과도 썩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도 공산주의 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베트남과 라오스는 동남아시아 정치에서 중요한 파트너이고 협력국입니다. 파테트 라오의 집권 자체가 베트남의 도움을 크게 받은 면이 있었죠. 덕분에 베트남군은 한동안 라오스에 진주하면서 라오스의 정치와 경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결말도, 내륙국의 숙명이라면 숙명일까요.

▲ 농카이에서 메콩강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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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국가주석이 기거하는 주석궁 뒤, 메콩강을 끼고 있는 작은 공원에는 아누웡 왕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칼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손을 뻗어 강 너머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강을 넘어 보이는 태국의 영토를요.
비엔티안에서 버스를 타고 태국의 농카이로 넘어오며, 저는 짧은 라오스 여행을 마쳤습니다. 강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우측통행을 하던 차선은 좌측통행으로 바뀌고, 돈도 언어도 바뀝니다.
농카이에도 강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장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설치된 것은 장군이나 국왕의 동상이 아닌 불상입니다. 높은 사원의 지붕에 앉아 평화로이 강 너머의 비엔티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지요.
비엔티안을 향한 불상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강 하나를 넘으면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다섯 나라와 땅으로만 국경을 접한 라오스의 역사가 알면 알수록 역설과 난제로 가득했던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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