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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길을 계속 걷게 해 준 이 영화, 꼭 보세요

뮤지컬 영화 <영웅>이 나의 인생작인 이유

23.02.13 14:18최종업데이트23.02.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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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이 누적관객수 300만 명을 넘기며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 <영웅> 포스터 ⓒ CJ ENM

 
동명의 뮤지컬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부터 하루 하루 영화의 개봉을 기다렸기에, 개봉 당일 바로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과거 뮤지컬 <영웅>을 여러 번 관람한 입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구현된 <영웅>은 신선하고 이채로웠다. 특히 안중근의 의병 활동 등 기존 뮤지컬에는 없던 이야기들이 추가되면서 '안중근=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공식을 넘어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그가 수행했던 또 다른 독립운동들을 관객들에게 널리 알린 점도 특기할 만한 점이라 하겠다.

"안중근 유해 발굴하고 싶다" 꿈을 격려해준 <영웅>

내게 뮤지컬 <영웅>은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 2009년 초연 당시 나는 고3 수험생이었다. 

고2 때 우연히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나는 사학과로 진학해,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내 손으로 발굴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거창한 포부와 달리 입시 실패로 좌절을 겪으며 방황하고 있을 때 <영웅>을 만났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 하늘에 대고 맹세해 본다." - 뮤지컬 <영웅> OST '장부가' 中

교수대 위에서 부르는 안중근(정성화 분)의 '장부가'에 그야말로 압도당했다. 가사처럼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2010년 11월 20일, 뮤지컬 <영웅> 관객이벤트 '안중근과의 데이트' 당시 출연진들과 함께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관람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 김경준

 
결국 원하는 대로 사학과에 진학했지만, 의지가 약했던 나는 늘 좌절과 고뇌에 시달려야만 했다. 공부를 할 자질이 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했고, 당장의 생계 해결이 급해 학부 졸업 후 전공과는 무관한 직장에 들어가는 등 꽤 길게 방황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것이 바로 뮤지컬 <영웅>이었다. <영웅> 넘버들을 들으며 내가 처음 품었던 꿈을 되새겼고, 결국 1년 반만에 미련 없이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뒤늦게 다시 대학원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공부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흔들릴 때마다 마음 속으로 '장부가'를 부르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비록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고 싶다는 꿈을 아직은 이루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큰 성과가 있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문일민(1894~1968)이라는 독립운동가의 삶을 발굴하여 석사학위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훌륭한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선 순간이었다.
 

석사학위논문이 나온 직후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잠든 효창원(효창공원)을 찾아 논문을 헌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 김경준

 
갈림길에서 다시 만난 영화 <영웅>

그러나 이후 나는 다시 한 번 극심한 슬럼프를 겪어야만 했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한다는 소명의식과 자부심을 안고, 이런 저런 연구기관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줄줄이 낙방하면서 자존감을 많이 상실한 것이다.

결국 아직은 내 실력이 부족한 탓이라 자책하며, 미진한 공부를 더 이어가기 위해 박사과정 진학이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됐다. 그러나 막상 박사과정 진학을 결정한 뒤로도 '내가 걷던 이 길, 끝까지 가면 이룰 수 있나' 회의와 번뇌에 시달렸다.

석사과정보다 훨씬 길고 힘든 과정, 나이 서른 넘어 아직도 제 앞가림도 못하는 자식을 향해 쏟아지는 부모님의 눈총, 이미 번듯한 직장을 갖고 가정을 꾸린 또래 친구들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큰 압박이고 부담이었다.

과연 이러한 부담을 뒤로 하고 이 길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점점 흐릿해져 가던 순간. 그렇게 <영웅>을 다시 만났다. 이번엔 스크린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14년 전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뮤지컬 <영웅>을 보며 품었던 꿈과 초심이 떠올라 한참 눈물을 쏟았다. "나 오늘 이 순간 후회 없이 살고 싶어"(영화 <영웅> 삽입곡 '그날을 기약하며' 中)라는 구절을 들으면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영웅>은 내게 '기약 없는 내일과 두려운 미래' 앞에서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격려하고 있었다.
 

영화 <영웅> 스틸컷 ⓒ CJ ENM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원동력이 되어주기를

영화 <영웅> 덕분에 나는 우리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초심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아직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은 역사학자로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좌절과 방황의 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영화 <영웅>을 보면서 '불망초심(不忘初心: 초심을 잊지 말자)' 넉 자를 되새기려 한다.
 

2011년 8월 7일 안중근의사기념관 대학생 안중근 의사 해외독립운동사적지 탐방단 소속으로 중국 하얼빈역을 찾았을 당시 안중근 의사의 저격지점(삼각형) 앞에 묵념을 올리는 기자의 모습 ⓒ 김경준

 
이것이 비단 내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는가. 보다 많은 이들이 영화 <영웅>을 통해 본인이 처한 역경과 한계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어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끝으로 윤제균 감독, 정성화 배우를 비롯한 영화 <영웅> 출연진, 제작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여러분이 만든 작품이 이렇게 한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영웅 안중근 윤제균 정성화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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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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