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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학교입니까? 인력파견소지"... 한국의 현실입니다

[다시는 다음 소희가 없는①] 고 '홍수연'을 기억해야하는 이유

등록 2023.02.14 16:17수정 2023.02.1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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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된 영화 <다음 소희>(정주리 감독, 배두나·김시은 주연)는 2017년 LGU+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으로 일하다가 사망한 고 홍수연씨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와 실적 중심의 노동현장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지 잘 보여줍니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은 많은 사람들이 <다음 소희>를 통해 실업계 교육현장과 콜센터 노동현장의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관련 글을 3회 연재합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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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는 2017년 1월 전주 'LG유플러스' 콜센터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3학년 실습생 고 홍수연양의 산재사망 사건에서 시작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관련 기사: 부산영화제 최고의 문제작, 아이를 죽인 어른들 https://omn.kr/2155a ).

영화 모티브가 된 고 홍수연양 사건, 그 유족인 홍순성님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음 소희>가 개봉하기 전, 홍순성님과 함께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구성원들은 6일 시사회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저 또한 같은 산재 피해 유가족으로서 이날 시사회에 참석했는데,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장면 하나하나가 자꾸 눈 앞에 떠올라 힘들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넘어, 다른 유가족마저 경악하게 만드는 현실이 영화에는 담겨있었습니다.

특히 영화 제목이 '다음 소희'라는 게 참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이 어떤 노동자든 다시는 일하다 죽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다시는'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듯, 영화 <다음 소희>는 실습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교육 현장과 노동 현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누구든 '다음 소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다음 소희>의 영화 내용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눠집니다. 1부는 소희(김시은 분)가, 2부는 유진(배두나 분)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이 됩니다. 1부에서 소희는 특성화고 담임선생님이 추천하는 콜센터에 실습생으로 출근하게 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출근하면서 '소희가 자리를 잘 잡아야 특성화고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린다'는 압박이 함께 동반됩니다. 소희는 콜센터에서 시키는 일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소희를 둘러싼 상황은 참담합니다. 

모두들 말로는 '인간이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돈이 인간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성을 무시당하는 순간에는, 제대로 대처조차 못한 채 괴로움과 자괴감, 절망적인 기분을 느낍니다. 영화 속 소희처럼 인간성을 무시당한 채, 한숨과 눈물이 섞이는 모습으로 영화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됩니다.

"학교냐 인력파견소냐"... 따져묻는 형사 보며 눈물 났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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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포스터 이미지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영화 속 등장하는 유진 형사는 우리 유가족들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너무나도 닮아 마치 우리들의 투쟁을 거울로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유진 형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영안실 장면인데, 이 영안실에서 유진 형사는 소희 유가족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습니다.

소희의 시신을 확인하던 유가족의 '슬픔과 분노'가 시작될 것을 예상하니까 거리를 두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진 형사는 처음부터 경찰로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사건을 외면하려 했다가 나중에야 사건에 직면하게 됩니다.


유진 형사는 이후 소희가 다녔던 콜센터와 학교, 교육청 등을 찾아다니며 죽음의 책임을 밝히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 어떤 누구도 '자기 탓'이라고 하는 곳은 없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가해자들의 언행과 태도에 환멸을 느낀 유진 형사의 "힘든 일하는 사람은 더 존중받아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아. 아무도 신경 안 써!", "이게 학교입니까? 인력파견소지!" 같은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더 와 닿는 걸 느끼게 됩니다.

저를 포함해 산재 피해 유가족들이 현장을 쫓아다니며 울부짖고 분노하던 그 말들이 영화 속 형사의 입을 통해 나올 때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은 대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할까요?

죽음의 행렬을 끊자... '다음 소희'는 제발 없게

영화 <다음 소희>는 한국 사회에 산업체에 파견된 현장실습생들의 노동과 교육의 모순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현장실습생 제도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콜센터 노동자들의 현실과 노동인권 문제 또한 잘 드러낸 영화입니다.

오로지 학교의 취업률만을 높이기 위해, 특성화고 학생들이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도 모르고 인력파견소 마냥 학생들을 현장실습생으로 보내는 학교들과 학생들을 상대로 노동착취와 악행을 일삼는 기업들이 아직도 여전히 대한민국에 존재합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여러 산재사망사건에 관심을 가져,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 소희> 영화를 보며 우리 사회의 노동현장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영화 관람을 통해, 교육부도 교육청도 노동부도 학교도 기업도 다 잊었을 그 이름, '고 홍수연'양을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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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영화는 고 홍수연씨의 산재사망 사건을 실화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석채씨는 경동건설 산재피해자 고 정순규씨 유가족이며,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의 구성원입니다.
#다음소희 #산재사망 #배두나 #정주리 #홍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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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故정순규님의 아들 정석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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