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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에서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 이런 말은 하지 마시라

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우리 사회 곳곳의 '소희'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등록 2023.02.14 18:08수정 2023.02.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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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장면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지난 6일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구성원들이 영화 <다음 소희> 시사회를 가기 위해 모였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에 간 날이었고, 고 김동준의 어머니 강석경님과 고 홍수연의 아버지 홍순성님도 시간을 내 지역에서 올라오셨다.

2017년 홍수연님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돼 만들어졌다는 <다음 소희>는 현재의 소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돌아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죽음과 아픔들에 교육제도의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나와 당신은 책임이 없는지를 묻고 있다.

<다음 소희>에서 보여주듯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일터 괴롭힘을 당하고도 말할 수 없고, 대응할 수 없고, 산업재해지만 혼자 감당하고 감내해야 하는 '소희와 그 친구들'의 모습이 지금은 사라졌을까.

현장실습에 없는 노동권과 건강권

2014년 CJ제일제당 진천공장, 김동준님
2016년 분당 외식업체, 김동균님
2017년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홍수연님
2021년 여수 요트업체, 홍정운님


실적을 요구하면서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 노동현장의 현실이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다쳐도 아파도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 어리고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직장 괴롭힘을 당하지만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고, 임금은 적게 준다.

회사는 '지금의 나'와도 경쟁하는 곳이며 노동자권리는 법에만 있다는 것을 취업하기 전 가르치는 기회가 되고 있다. 졸업 하기 전 현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직무를 수행하는지를 배운다는 취지보다는 조기취업으로,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가 될 뿐이다.


전공과 관련되지 않은 업체로 현장실습을 나가는 것이 일상화돼 있었지만 현장실습생들에게는 거부권이 없었다. 회사에 의해 구사대가 된 학생도 있었다. 2001년 충남 아산시 ㈜세원테크에 민주노조가 만들어졌다. ㈜세원테크 회사 측은 노동조합을 없애려고 온갖 탄압을 했고, 이에 맞서 노동조합은 2002년 파업을 진행했다. 회사측은 조합원들의 회사 출입을 막으려고 '구사대'를 앞세웠는데 현장실습생도 구사대로 동원됐다.

1일 7시간, 주 40시간 이내, 장시간-심야노동을 금지하는 현장실습표준협약은 문서일 뿐이었다. 2011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현장실습생이 주말 특근에 2교대 야간근무까지 투입돼 뇌출혈로 쓰려지기도 했다. 

김동준님, 김동균님도 그랬다. 현장실습생으로 나간 직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해야했고, 같은 노동환경에 놓여있지만 선배라는 권력을 가진 노동자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화상도 입고 다치기도 하고 회식자리도 술도 억지로 마시기도 해야 했다. 홍정운님도 다르지 않았다. 현장실습생이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을 사업주는 지시했고 그 지시에 따라 일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홍수연님은 동준, 동균, 정운님처럼 전공과도 다른 곳에서 다른 노동자들이 피하는 힘든 일을 배치 받아서 실적을 쌓도록 요구받고 질책 받아가며 장시간 노동을 했다. 경쟁과 실적, 성과주의로 무장한 일터는 <다음 소희> 속 소희를 저수지로 끌고 갔다.

대학생 현장실습생들도 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에게 나타나는 문제들은 대학생 현장실습생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더 심한 상황이다. 대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간다고 하면 대부분 자격증을 따기 위해 가야 하는 실습과정이나 인턴제도라고 생각한다. 대학생 현장실습제도에 대한 미흡한 인식이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의 폐해를 유지시켜주고 있다. 문제가 문제로 드러나지 않게 만들고 있다.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는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는 특정한 과에서 졸업을 하고 전문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교과과정은 제외된 현장실습이라서 학생들의 선택에 의해 실행된다. 그런데 일부 대학에서는 모든 학생은 현장실습학점을 취득해야만 졸업자격이 주어지는 필수 교과과정이 돼 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그 시간을 욕하며 그냥 버틴다. 졸업을 위해서.

대학에서 배우는 전공과목과 연관된 곳으로 현장실습을 가서 실무도 미리 익히고 내 적성에 맞는지 점검하는 현장실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동일하게 전공과 무관한 곳으로 실습을 나간다. 기업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훈련할 기회를 주기 위해 뽑지 않는다. 지금 당장 부족한 인력을 충원할 뿐이다.

학교는 학생들을 보낼 기업을 찾고 계약을 체결하느라 힘들었다고만 하고, 학생들의 현장실습교육과정에 대해 점검하고 확인하고 책임지지 않는다. 특성화고도 대학도 마찬가지다. 악덕 기업을 뛰쳐나온 학생들에게 오히려 후배들의 취업을 막는다며 윽박지르고 버티라고만 한다. 취업률이 특성화고와 대학의 평점이 돼 지원금이 달라지는 운영평가 시스템 때문에 지옥 같은 일터를 버티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지원금이 된다. 그래서 오히려 문제가 된 현장실습업체가 다음 학기에 다시 현장실습 기업 명단에 버젓이 올라있다.

대학은 현장실습을 나가는 학생들에게 실무실습을 중심으로 하는 표준현장실습인지,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자율현장실습인지 알려주지 않고, 학생들은 자신들이 받아야 할 월급이 적당한지, 노동시간이 너무 많은 건 아닌지 자신들이 어떤 실습을 나가는지 잘 알지 못한다. 대학생 현장실습생들에게 산재특례조항이 적용된 것은 2018년이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2021년 하반기가 돼서야 대학생 현장실습생들을 받아들일 기업체의 산재보험가입이 의무가 됐다. 

정부와 교육부는 기업을 위한 현장실습제도를 유지하고 확대하고 있다. 교육부가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를 관장하고 있고, 노동부는 장기현장실습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1년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 현황 자료에 의하면 4주 이상 현장실습을 이수한 대학생은 2020년 당시 2만2588명이다. 2020년 노동부는 50억 원 정도를 지원해 1298개 기업에 대학생 장기현장실습생 3181명을 보냈다.

별도로 대학 내에 기업 주문식 교육과정이 설치되어 2021년에 133개 대학에 677개의 교육과정이 운영됐고, 전문대학의 강점을 살린다며 학생선발부터 교육과정 구성과 운영까지 기업과 공동운영하는 '사회맞춤형학과'를 2021년 참여대학 40개교가 평균 9.1개를 운영했다는 교육부 발표도 있었다.

특성화고도 대학교도 취업을 위한, 기업의 필요에 따라 교과과정마저 바뀌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학교가 인력파견소와 무엇이 다르냐"는 <다음 소희> 오유진 형사의 대사는 이래서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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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개인이 책임질 수 없는 일  

현장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당한 차별과 지켜지지 않은 근로조건은 홍수연님을 절망하게 하고 분노하게 했고, 성과 압박과 감정노동은 그를 옥죄었다. 홍수연님의 죽음에 학교, 교육청, 경찰, 노동부 어느 한 기관도 적극적으로 가족과 친구, 지인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죽음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현장실습을 나가서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 그들에게 더 이상 "그렇게 힘들면 학교로 돌아오면 되지, 현장실습 때려치우면 되지"라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달라.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라면, 그런 말이야말로 현장실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영화 속 오유진 형사를 제외하면 <다음 소희>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고 다큐멘터리다. 모든 것을 성과로 평가하는 정부에게 예산은 무기다. 교육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교육을 왜 하는지는 사라지고 정부가 원하는 경쟁논리 안에서 모든 것이 돌아간다. 경쟁논리는 결과적으로 오롯이 기업을 위해 쓰여진다.

누군가에게는 성적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취업을 요구한다. 교육청은 그것을 이유로, 학교는 그 기준을 근거로, 교사는 그 지침을 모토로 학생들을 이리저리 줄 세운다. 노동부와 경찰은 그런 학생들의 죽음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어떤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나의 자리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일부의 사람들만이 이런 구조를 만든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고 연대하고 있다.

현장실습을 제대로 운영할 능력도 생각도 없는 기업들을 못 본 척하며 학교의 예산이 삭감되고 저평가 받지 않으려던 노력들이 결국 학생들을 죽이고, 노동을 멸시하게 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만든 정부정책에 저항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죽음을 만드는 특성화고 산업체파견 현장실습이 교육과정이 될 수는 없다. 전공과 무관한, 취업률만 고려한 교과과정이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의 운영현실이라면 대학생 현장실습제도도 재검토돼야 한다.

영화 속에서 추운 겨울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앉은 시리고 시린 소희의 발등을 비춘 한 줄기 빛. <다음 소희>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 홍수연님의 아버지 홍순성. 김동준님의 어머니 강석경. 김동균님의 아버지 김용만... 그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시작된 이야기 <다음 소희>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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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권미정님은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입니다.
#다음 소희 #대학생_현장실습 #김용균재단 #권미정 #특성화고_현장실습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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