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파 서민호 묘역 월파 서민호 선생은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었다.
자료사진
다음은 한 신문의 비중있는 부고 기사다.
"타계한 월파 서민호씨, 정계의 거목 불굴의 투사"란 제목을 달았다.
최근 항일 독립운동에서 몸을 일으켜 해방 후 정계에 투신했던 거성들이 하나 둘 떨어져가는 가운데 24일 월파 서민호 선생이 또 세상을 떠났다. 이같은 거성들의 잇단 별세는 한 시대의 막이 서서히 내리고 있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월파선생은 한국정치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불굴의 투사였다. 청년시절에는 항일운동에 투신,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른 독립투사였고 해방 후엔 야당 생활로 일관하면서 반독재투쟁에 앞장섰던 반골정치인이었다.
3.1운동 당시 보성중학 3학년 학생이던 그는 시위군중의 앞장에 서서 일본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기마대가 앞길을 가로막자 일경이 타고 있던 말의 뒷다리를 힘껏 차 말이 놀라 뛰는 바람에 길을 트고 앞으로 진출한 용맹스런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3.1운동 당시 <반도목탁지>사건으로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그후 일본 와세다대학과 미 웨슬리안대 및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일정하의 조국에 돌아온 그는 남서무역회사 사장으로 있으면서 조선어학회에 자금을 대어 조선어학회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해방과 더불어 전개되기 시작했다. 전남지사를 거쳐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월파는 6.25동란의 부산피난 시절에 거창양민학살 사건과 국민방위군 사건 등 자유당정권의 비정을 파헤쳐 폭로하여 정계를 뒤흔들었다. 당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타협을 모르는 반독재투쟁 자세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의 미움을 샀던 것이다.
그러던 중 1952년 순천의 평화여관에서 서창선(徐昌善) 육군대위를 권총으로 사살한 사건이 일어나 그는 현역의원의 몸으로 구속됐다.
"내가 만일 4.19 후 과정 수반 같은 지위에 있었다면 이 박사를 하와이로 망명시키지 않고 일반과 똑같이 법으로 취급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는 하와이 망명 중인 이 박사가 고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말을 하자 인간적인 동정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아무튼 월파는 강한 자에게는 호랑이처럼 무섭게 덤벼드는 성미였으나 약자에게는 한없이 물러서는 온후한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4.19로 영어(囹圄)에서 풀려나온 그는 언제나 "내 남은 목숨은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하면서 4.19정신을 정치의 신조로 삼아왔다고 한다. 단련된 체력의 소유자로 늘 스틱을 짚고 다니는 그는 제5대 민의원에서 부의장을 지냈고 5.16 후에는 6.7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면서 언제나 풍운을 몰고 다닌 정치생애를 마쳤다. 그는 여느 보수정객과는 달리 시대의 흐름에 민감해서 남북교류를 처음 제창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과감히 제시했으며 한일협정 비준파동 때는 의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야당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와중에서 당적을 자주 옮겨 자민당 최고위원, 민중당 최고위원, 대중당 당수를 역임했다. 그와 친분이 두터운 한 야당정치인은 "월파는 고집이 센데다가 자기중심으로 매사를 이끌어가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이라 자주 당적을 옮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협을 모르는 불굴의 투사였던 월파는 중요한 정치적 고비에서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67년 야당 단일대통령 후보에 대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대통령후보를 선선히 사퇴했고 71년 선거 때도 신민당후보 김대중씨를 지지, 자신의 물러날 시기를 찾을 줄 아는 지혜를 발휘했던 것이다.
작년 1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사재를 털어 '통일연구협회'를 창설, 만년을 통일문제의 연구와 계몽에 몸 바쳤다. 그는 타계하기 며칠 전 측근에게 "소원은 조국통일을 보고 죽는 것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튼 항일운동과 반독재투쟁에 파란많은 한 생애를 바친 풍운의 노정치인이 그의 소망인 조국통일의 날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은 월파 한 사람만의 슬픔이나 한 만은 아닐 것이다. (주석 1)
주석
1> <동아일보>, 1974년 1월 25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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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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