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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의 갑툭튀 '이승만 예찬', 무슨 역행인가

[주장] 민주주의 유린한 대통령이 추앙받는 현실... 대한민국 미래에 바람직한가

등록 2023.02.16 18:08수정 2023.02.1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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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4.3 희생자 추념일까지는 한 달 하고도 보름 정도가 남았지만, 4.3의 책임을 둘러싼 논쟁과 여론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거워진 듯하다. "4.3사건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라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이 몰고 온 파동이다.

제주도 시민사회와 국내외 4.3 유가족들이 깊은 충격과 우려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 태 의원은 끝내 발언을 정정하거나 사과하진 않고 있다. 4.3에 대한 몰이해가 한국 사회에 여전히 견고하다는 현실 앞에 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있는 사이, 이번엔 당시 학살의 최고 책임자 중 한 사람인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예찬의 목소리까지 나와 피해자들의 울분에 기름을 붓고 있다.

4.3이 이슈가 된 지금, 툭 튀어나온 '이승만 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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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동아일보> A30면에 실린 김순덕 대기자의 칼럼 '우리에겐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 ⓒ 동아일보 PDF

  
16일 자 <동아일보> 지면에는 '우리에겐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라는 제목의 '김순덕 칼럼'이 실렸다. 비록 칼럼은 표면적으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이승만'을 찬양하지만, 4.3에 대한 책임론이 사회적 화두로 대두된 이 시기에 주요 일간지에서 그를 예찬하는 글이 실렸다는 사실은 함의하는 바가 크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계엄법이 제정되지도 않았던 1948년 11월 17일 시점에 제국 일본의 법제를 근거로 제주도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 아래서 무소불위의 힘을 얻게 된 토벌대는 중산간 지역의 마을들을 초토화하고, 제주도민들을 살해·강간했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 변호를 시도한들, 당시 제주도에서 행해진 대규모 학살에 대해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 이승만이 갖는 책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이승만 전 대통령을 '위대하다'며 노골적으로 칭송하는 <동아일보> 칼럼이, 다른 때도 아니고 4.3책임 관련 논쟁으로 정국이 달아오른 이 시기에 게재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이자 최고위원 후보인 인물이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외면하고, 색깔론을 끄집어 내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 이를 개인의 돌출된 언동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태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지지를 얻기 위해 4.3의 책임을 김일성과 북한 당국에 돌릴 수 있는 배경엔 여전히 우리 사회에 견고한 '이승만 국부론'이란 역사관이 자리잡고 있어 보인다(관련 기사: '명백한 독재자' 추켜세우는 대선정국, 코미디이자 비극).

이번 <동아일보> 칼럼은 "좌파가 폄훼한 대통령 이제는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치적들을 나열한다. 이 전 대통령이 "공산주의의 실상을 꿰뚫어" 보고 남한에서라도"민주주의 정부"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쟁취"한 덕에 "우리는 경제 발전에 매진해 오늘의 번영을 누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칼럼은 거듭 이승만 전 대통령을 "위대하다"고 치켜세운다. 칼럼 어느 문단에서도, 이승만 정권 당시 자행되었던 반인륜적 범죄들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다. 


민주주의 정권? '역행'을 하나하나 읊어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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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대기 중인 제주도민들(1948년 5월) 4.3사건 당시 다수의 도민들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처형, 고문, 투옥, 강간 피해를 입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초법적으로 발령한 1948년 11월 계엄령 이후 토벌대에 의한 초토화 작전이 본격화되었다. ⓒ wiki commons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사악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세웠다는 민주주의란 도대체 무엇일까. 적어도 필자가 알고 있는 사전적 의미에서 생각해보자면,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혹은 반대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자국민을 탄압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정권 창립·유지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았다(4.3사건 및 여순사건 진압, 보도연맹 학살 등등).

-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서울에서 후방으로 도주하면서도 시민들을 속이고 퇴로를 끊어 희생자를 극대화시켰다(한강인도교 폭파).

- 점령 지역 수복 후에는 당시 남겨졌던 시민들을 상대로 부역자 처단 명목의 학살을 자행했다(다수의 한국전쟁기 학살사건).

- 거기에, 정적에 대한 사법살인에도 거리낌이 없었다(이종찬 육군참모총장 포살시도, 조봉암 사형 등).

- 집권연장이 위태로워지자 친위쿠데타 및 초법적 개헌을 강행하기까지 했으며(부산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 등).

- 견디다 못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시위대에 의해 혁명으로 축출되기에 이르렀다(4.19혁명).


이런 지도자가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 단순 사실만 돌아봐도 이때의 정권이 추앙할 만한 민주주의 정권이었다고는 평가할 수 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역행하는 다수의 만행들을 저질렀음에도 여전히 그를 국부로 예찬하며 긍정하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북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곧 표심으로 직결되는 이들에게 있어, 이승만 정권의 실상이 '무오류 수령'에 반기 든 이들을 '미제간첩'이나 '반동분자'로 몰아 숙청했던 북한 정권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사실일지도 모른다. 이 진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테니까.

이대로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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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7일자 동아일보 3.15 부정선거 개표결과 이승만 대통령 4선 당선, 이기붕 부통령 당선을 보도한 기사. ⓒ wiki commons

 
그러나 정치공학적 이해에 따른 것이든 혹은 신념에 따른 것이든 이승만 전 대통령의 만행에 눈을 감고 당시의 정권을 무작정 예찬하는 건 대한민국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했던 정권을 국가정통성의 토대로 세우고, 그 지도자를 국부로 숭상하는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인권의 가치를 감히 논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흑역사도 정리하지 못한 나라가 타국의 역사인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가족과 터전을 잃고 이국을 떠돌게 된 유족들조차 품지 못하는 나라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헌법 조문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을까(관련기사: 일본에서 만난 4.3유족의 불신... 태영호에게 묻는다).

독재정권에 맞서 시민들이 쟁취했던 민주주의적 가치, 그리고 그 민주주의적 가치를 토대로 공들여 쌓아왔던 대한민국의 현재 위상을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승만 정권과의 결별과 단절이 요구된다. 그것이 4.3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의 진정성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대한민국의 의지를 세계에 천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 믿는다.
#이승만 #독재자 #극우 #재평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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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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