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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1심 판결문이 '탄핵'한 검찰·언론의 '마녀사냥'

[분석] 3년 전 언론보도와 다른 판결문 속 사실관계들... 14개 혐의 중 13개 무죄

등록 2023.02.17 20:05수정 2023.02.2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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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주영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활동 당시 기부금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1심에서 검찰이 제기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가 공개한 1심 판결문에는 3년 전 언론 지면을 뜨겁게 달궜던 '마녀사냥식' 보도와는 다른 사실관계들이 담겨있다.

당시 다수의 언론은 검찰의 수사내용 등을 인용해 "윤미향 의원이 기부금 1억 원을 200여 차례에 걸쳐 생활비로 사용했다"거나 "정부보조금을 빼돌려 정의기억연대를 사기로 운영했다"고 단정해 보도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길원옥씨의 각종 기부 행위를 두고 "윤 의원이 치매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7900만 원을 기부받았다"고 하거나, "힘겨워한 할머니를 후원행사에 끌고 다녔다"고도 썼다. <조선일보>는 "윤미향이 대한민국을 기망했다"는 검찰 주장까지 기사 제목으로 올렸다.

하지만 1심 결과는 대부분 무죄.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문병찬, 배석판사 신철민·박준범)는 지난 10일, 검찰이 제기한 14개 혐의(사건별 구분)중 13개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고 횡령 혐의에 한해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윤 의원이 2011년~2020년 동안 1억37여만 원을 217회에 걸쳐 횡령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 중 68회 1718여만 원만 횡령으로 인정했다. 윤 의원에겐 1500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도덕적 비난이 가장 집중됐던 '준사기' 혐의에도 무죄가 선고됐다. <오마이뉴스>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판결문 속 주요 내용들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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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사적유용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 1500만 원을 선고 받고 법원을 나오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이희훈

  
[길원옥 할머니 기부] "길원옥, 재산 처분 의사능력이 없다 단정 못해"

검찰은 2017년 11월 길원옥씨가 여성인권상 상금 1억 원을 받은 직후 5000만 원을 정의기억재단에 후원한 것을 두고 "윤 의원과 손영미 소장(검찰 수사 중 사망)이 그의 치매를 이용해 상금 일부를 취득하기로 공모했다"고 밝혔다. 길씨가 2020년 1월까지 총 9회에 걸쳐 유관 단체에 기부한 7920만 원을 모두 윤 의원의 준사기로 봤다.

2017년 11월, 길씨는 1000만 원을 양자 A씨에게도 줬다. 그런데 이 돈의 출처도 여성인권상 상금 1억 원이었다. A씨는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부턴 매월 60만 원씩을 길씨로부터 이체받고 있었다. 목사인 A씨는 서울 마포 쉼터에서 지내던 길씨를 방문할 때마다 선교비로 5만~10만 원씩을 받곤 했고, 2015년엔 배우자 수술비로 400만 원을, 2017년 5월에도 아들 아파트 구입 명목으로 200만 원을 받았다.


A씨가 길씨 양자로 입양된 시점은 2020년 6월이다.

재판부는 "길씨가 1000만 원 지급에 대해선 정상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5000만 원에 대해선 그렇지 못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며 "입양은 수천만 원을 기부하는 재산상 법률행위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인 점에 비춰 (2020년 6월) 이전의 각 기부행위도 길씨 의사에 따라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길씨가 치매 진단을 받은 건 사실이나 형법상 '심신미약' 상태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K-MMSE'라는 치매 진단 지표를 근거로 삼았으나 재판부는 "이는 치매진단을 위해 고안된 검사가 아니고 약 처방 시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검사 정확성의 오류, 1년에 한 번씩 반복 검사하는 환자의 학습효과로 인한 오류 때문에 의사들은 이 점수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길씨의 의무기록사본과 길씨 상태가 보고된 정대협 회의록 등을 봐도 그의 증상만 적혀있을 뿐 치매 증상이 얼마나 더 심각해졌는지, 언제부터 중증에 접어들었는지 등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검사 또한 이를 입증하지도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길씨가 2002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재일조선학교, 대북 지원, 전쟁 피해자 등의 문제에 활발히 연대해온 점 등을 종합해 길씨가 자기 의사에 따라 기부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결론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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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전 이사장 관련 부실 회계와 횡령 의혹 등에 대한 고발 관련 서울서부지검의 압수수색이 집행됐다.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물이 든 박스를 들고 나오고 있다. ⓒ 권우성

 
[안성 쉼터 매입] 검찰 제출한 '4억 원 감정서'의 오류

검찰은 윤 의원이 '4억 원짜리 부동산(안성쉼터)을 7억5000만 원에 샀다'며 업무상 배임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법정에 제출된 증거가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봤다.

먼저 구입 당시 안성쉼터가 4억 원가량의 매물에 불과했다는 검찰의 감정평가서 증거에 오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수사단계에서 두 감정평가사로부터 의견서를 받았는데, 이들 평가사들은 이후 법정에서 해당 감정평가가 불충분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증축된 면적 109.2㎡을 제외한 195.98㎡ 부분 면적의 건물만 감정했고, 고가로 보이는 조경수, 조경석, 연못 등의 토지정착물을 평가 대상에 포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평가사들은 법정에서 "수목 전문가들에게 용역을 의뢰하는 단계에서 검찰이 '그걸 빼고 납품하면 좋겠다' 하여 진행이 안됐다"거나 "보강하려고 했는데 검찰에서 시기적으로 딜레이된다고 해서 일단 제외하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안성쉼터 부지 매도자는 건축비부터 인허가대행비, 각종 공사비, 취득세, 상수도, 전기·가스 공사 등을 전부 셈해 건축에 총 7억7740만 원 정도가 소요됐다고 법정에서 주장했다.

검찰 수사 단계에선 윤 의원 측이 비상식적인 거래를 하면서 중개자나 매도자와 금전적 비리를 저질렀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재판부는 중개자나 매도자 모두 "피고인들로부터 금품 이익이나 대가를 제공받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서울 마포구 부지를 고집하던 정대협 측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가 서울 근교를 먼저 요청한 점, 정대협이 용인·안성 등 지역에서 20여 개 주택을 답사한 점, 매도자가 요구한 10억원을 7억5000만 원으로 감액해 거래한 점 등을 종합해 윤 의원 측에 배임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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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치유재단 해산하라' 92세 김복동 할머니 1인 시위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고 김복동 할머니(92세)가 생전인 2018년 9월 3일 오전 종로구 외교통상부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횡령 혐의] 법원은 왜 '5.8%'만 횡령으로 인정했나

재판부가 횡령으로 인정한 금액 1718만 원은 검찰이 기소한 횡령액 1억37여만 원의 5.8%가량이다. 나머지 94%는 어떻게 지출된 금액일까.

재판부는 나머지 8319만 원(149회)은 대부분 정대협 활동과 운영에 쓰였다고 봤다. 지출 명목이 적힌 일부 이체 내역을 보면 '○○ 할머니 선물', '○ 점심', '강화수련회' 등이 적혔다. 나머지 각종 식당이나 휴게소 등에서 결재된 체크카드 내역은 윤 의원이 법정에서 정대협 활동에 따른 지출임을 소명해 횡령 무죄가 인정됐다.

예로 '요가강사'에 지출된 내역도 정대협 활동가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매주 1회 요가교실을 진행하면서 지출된 강사비라는 점을 소명해 재판부에 받아들여졌다.

윤 의원은 횡령으로 인정된 1718만 원 대부분도 사무처 직원들 간식비, 회식비, 외장하드 구입비, 활동 경비 등에 지출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객관적인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횡령이라고 봤다. 횡령액 중엔 사무실 주변을 배회하던 유기견을 동물병원 및 애견호텔에 맡긴 금액 24만 원도 포함돼있다.

횡령액 중 일부는 윤 의원이 실수로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인정하거나 지출 용도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포함됐다. 정대협이 윤 의원의 출장비를 보전하는 과정에서 이중 보전된 사례도 8건 포함돼있다.

지난 16일 항소장을 제출한 검찰은 1심 판결이 "증거와 법리,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항소심에서 적극적으로 다툴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무죄로 판단된 각 지출 건들이 고의와 불법영득의사(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면서 그 재물을 자기 소유물처럼 처분하려는 의사)가 추단됐는데도 정대협 활동에 사용했을 가능성만으로 무죄가 인정됐다고 주장했다.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모금] 시민사회장에 대한 검찰 이해 부족 꼬집은 재판부

2020년 논란 당시엔 윤미향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고 김복동씨의 장례비를 개인 계좌로 받은 사실 때문에 회계 비리 의혹이 일었다. 검찰은 이 장례비를 '법에 정해진 모집·사용계획서를 작성한 후 관할 등록청에 등록해야 한다'는 기부금법상 기부금품으로 보고 윤 의원이 이 등록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법 적용은 사회운동가의 시민사회장 성격과 기부금품법의 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관련 등록 절차에 통상 1~2주가 소요된다는 점에 비춰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모집계획서 등을 작성하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고, 기부금법의 모집 등록제도가 모집등록증이 발급되길 기다렸다가 장례식을 진행해야 한다거나 등록증 발급 이후부터 장례비를 받을 것을 요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든 시민사회장에 이를 일률 적용하게 되면 장례비 모집·사용의 적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민사회장에까지 형사처벌 영역을 확장해 그 문화를 위축시키고, 의미와 가치를 훼손할 위험성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장례비가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할 기부금은 맞으나, 시민사회장에 따른 장례비 모금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기에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시민사회장이란 "고인의 삶과 뜻, 그리고 죽음에 대한 추모를 넘어서 평소 그가 추구한 가치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를 사회에 표출하는 수단의 기능"이자 "단순한 장례식을 넘어 시민이 표현의 자유를 영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장례비 모금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긴급성 등을 모두 인정했다.
#윤미향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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