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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사랑하는 각기 다른 방식에 대하여

1미터 목줄에 묶인 포천 밭지킴이 강아지 이야기

등록 2023.02.19 19:27수정 2023.02.1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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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반강제로 개를 키우게 된 우울증 환자가 개로 인해 웃고 울며 개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편집자말]
코로나 시대가 내게 알려준 가장 큰 사실 하나는 나란 사람은 도저히 갇혀서는 못 산다는 (어찌 보면 자명한) 것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집순이라 전에는 외딴섬에서도 인터넷만 된다면 혼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거라 믿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자가격리를 몇 차례 겪어보니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좁디좁은 방안에 몇 날 며칠을 갇혀보니, 감옥에 갇히는 게 괜한 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달까.


포천의 칼바람, 개들은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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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우는 강아지 복주. 3개월 무렵의 사진이다. ⓒ 이선민


그 잠깐의 경험도 고립이라면 고립이라고, 이 시기를 지낸 후 나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갇혀 사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연민의 감정이 생겼다. 나는 부쩍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병원에 입원해 오래 외출을 못하는 환자들, 보행이 자유롭지 못한 교통약자들, 또 동물원이든 수족관이든 한평생 철창에 갇혀 사는 동물들의 처지가 남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겪는 것과 겪지 않은 것의 차이가 크다는 걸 익히 알았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묶여 지내는 모든 생명체의 심정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서울 외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 미터 목줄' 신세의 밭지킴이 개들에게 자꾸자꾸 마음이 간다. 아마도 내가 개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리라.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전보다 자주 병원 신세를 지는 탓에 최근엔 포천의 산골에 방 하나를 얻어 요양차 들어갔다. 산 좋고 물 좋은 데서 스트레스 안 받고 살아 보려는 요량으로 말이다. 한데 시골살이의 복병이 있었다. 일 미터 목줄에 묶여 사는 개들을 '천지삐까리'로 보는 것이다.

포천은 서울과 멀지 않은데 거리가 무색하리만치 서울과는 모든 게 다르다. 이 중 최고는 단연 날씨인데 11월에 내린 눈이 2월까지 녹지 않는다. 한겨울엔 네팔인지 포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천지가 눈이다. 눈이 그토록 안 녹으니 바람은 어땠겠나. 칼바람은 그야말로 면도칼이다. 바람의 기세가 어찌나 매서운지 기상청에서 한파경보라도 발령하는 날엔 종일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개들도 나도 외출을 자제하고 종일 전기장판 위에서 뒹구는 데 그럴 때면 자꾸 이웃에 묶여 지내는 개들 걱정이 된다. 개집이라고 해봐야 몸 한 칸 간신히 눕힐 공간이고, 그마저도 엉성한 합판으로 짜여 있어 눈과 비만 겨우 피하는 실정이다.

개집에 깔린 건 홑껍데기 담요 한 장뿐인데 이 추위를 개들이 어찌 견디나, 밤사이 얼어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자꾸 자다 말고 일어나 앉아 개들의 기척을 들으려고 귀를 열었다. 하루를 꼬박 기다려도 개 짖는 소리를 못 들을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어느 틈엔가 다시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럴 때마다 속으로 어떤 게 나은가를 헤아려 봤다. 먹지도 못하게 얼어 버린 물과 사료를 씹으며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사는 생이 이 친구들에게 좋은 건지, 아니면 얼른 죽어 더는 고통 없는 세상으로 떠나는 게 나은지. 알 수 있나, 개들의 심정을.

개의 주인과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그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이렇게 개를 묶어 기르는 건 나름 다 생각이 있어' 이러는 거다. '개를 좋아해서 이렇게 기르는 거다, 애초에 개를 싫어했으면 개장수에게 팔았다'라고 한다. 사람이 남긴 밥을 먹이며 밖에서 묶어 놓고 기르는 게 왜 문제인지조차 모른다.

상황이 이러니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차라리 개를 싫어하면 낫겠다 싶다가도 아니지, 그럼 또 개장수에게 개를 팔 테니까 싶다. 이방인 처지의 내가 끼어들어서 갑자기 '그렇게 기르지 마시라'고 개 주인을 설득할 상황도 안 되는 거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좀 비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사랑한다며 벌어지는 폭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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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무렵의 복주 ⓒ 이선민


전에 용인 한 보육원 자원봉사에 열을 올리던 시절에 겪은 일이다. 주말마다 오시는 한 아주머니께서 수녀님들 몰래 자꾸 아가들 입에 사탕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넣어주는 게 아닌가. 볼 때마다 그러지 말라고 좋게 말씀드려도 그때뿐 그분은 자꾸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 몰래몰래 애들 입에 단 걸 밀어넣었다.

하지만 그가 남몰래 작전을 수행한다 해도 우리 눈에 안 걸릴 수 없다. 그가 왔다 가면 애들이 전부 구석에서 뭔가 오물거리고 있다. 입을 벌려 보면 사탕이니 젤리니 하는 것들이 여지없이 나온다. 그분의 심정을 모르진 않는다. 딱한 마음이 앞서 뭐라도 해 주고 싶어 그러셨겠지.

하지만 이는 결코 아이들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고 떠나면 애들이 밥을 잘 안 먹는다. 그뿐인가? 단 거 내놓으라고 울고 떼쓴다. 그럼 우는 애도 우는 애를 봐야 하는 우리 수녀님들도 보통 힘들어지는 게 아니다(결국 이 문제는 사무실에서 따로 나서서 해결했다).

그때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구나. 내가 좋다고 남도 좋은 게 아니구나. 당장 좋다고 나중까지 좋은 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아직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어쩌면 나 역시 많은 날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남에게 휘둘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 나는 전보다 노력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행복한 게 어떤 걸까 고민한다. 개들을 사랑하며 깨달은 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행복할 때 사람은 기쁘도록 설계되어 있구나 하는 것이다.

개가 웃어도 좋은데 날 닮은 애가 좋다고 손뼉 치며 웃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제야 어려서 부모님들이 왜 그렇게 주말마다 차도 없는데 온갖 짐을 다 싸 들고 우리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다녔는지 알게 됐다. 늦었지만 이제야 코끝이 찡하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게 사랑이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유기견 #우울증환자 #반려견 #사지말고입양하세요 #진도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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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라는 게시글 하나로 글쓰기 인생을 살고 있는 [산만언니] 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재난재해 생존자에게 애정이 깊습니다. 특히 세월호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반려견 두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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