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9 19:13최종 업데이트 23.02.1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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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인구 구성이 다양해지고 문화예술의 향기가 풍성해졌는가 하면, 땅과 바다가 환경파괴로 신음한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4·3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는 한편으로는 새 공항 건설을 두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천혜의 땅 제주도를 살기 좋은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제주 사름(람)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말]

바닷가 무대에 선 해녀합창단 2018년 구좌읍 하도리 바닷가에서 열린 하도 해녀합창단 공연. ⓒ 사진제공 방승철

 
물결이 일렁이네 추억이 일렁이네/소녀가 춤을 추네 꽃다운 나이였지/어느 날 저 바다는 엄마가 되었다네/내 눈물도 내 웃음도 모두 다 품어줬지/나는 바다다 나는 엄마다 나는 소녀다 나는 해녀이다(방승철 작사·작곡 '나는 해녀이다')

꽃다운 나이의 소녀가 엄마가 되고 바다가 되고 해녀가 되어 늙어간다. 해녀의 척박한 삶과 추억은 마침내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노래의 주인공인 해녀들이 무대에 섰다. '하도 해녀합창단'.


25명 합창단원이 부르는 '나는 해녀이다' 노래를 들으며 합창의 수준이 어떨까 궁금했던 게 부질없는 호기심이었음을 곧 깨달았다. 해녀 특유의 호흡에서 나오는 목소리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이토록 진솔하게, 질박하게 표현하는 노래를 함부로 재단한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 공동체가 단단하게 뭉치고 있구나'

하도 해녀합창단의 지휘자이자, 이 합창단의 레퍼토리를 도맡아 작사·작곡해 만들어내는 뮤지션 방승철씨는 해녀합창단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들이 너무 잘 대해주시고, 노래 부르는 합창단 일에 자부심을 갖고 계신다"며 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어머니들도 행복해 하시고, 자신도 행복하단다.

방승철씨가 하도 해녀합창단과 함께한 것은 2015년부터. 두 해 전에 합창단이 생기기는 했으나 뚜렷한 활동을 하지 못하던 터에 그가 결합해 말 그대로 동고동락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그가 처음 해녀들과 만나 합창단을 꾸려갈 때만 해도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해녀들의 제주 말이 억양도 강하고 드세 말뜻을 30% 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자연히 "나는 봉사하고 있는데, 왜 저러시나" 하는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이런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지금은 진짜 친구 같은 사이가 됐어요. 만날 때마다 밥은 먹었냐, 김치는 있냐, 건강관리 잘해라, 걱정해주시죠. 그리고 '우리 두고 떠나면 안 된다'고 하시고, 양평에 어머니가 계시는데 아프시면 모시고 와라, 우리가 놀아줄 게 할 정도로 가까운 이웃으로 지냅니다."
  

해녀합창단과 지휘자 방승철 2023년 1월12일 제주해녀항일운동 91주년 기념식에서 공연하는 하도 해녀합창단. ⓒ 황의봉

 
방승철 작곡가는 해녀들의 갖가지 사연과 일화를 들으면서 마음에 남는 것들을 따로 메모하고, 그걸 노래로 만들었다. 해녀들의 삶을 가사로 녹여낸 노래다 보니 울림이 강한 곡이 되고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됐다. 노래하는 해녀들이나 방승철씨나 해녀합창단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됐을 것 같다. 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해녀 어머니들로부터 들었던, 고생하고 힘들고 마음 아팠던 시절의 이야기에 멜로디를 실어서 들려드리고, 노래로 만들어 연습하고, 또 공연하면 모두들 좋아하세요. 과거의 여러 기억들을 상기하면서 '그래도 나의 삶이 소중한 것이었고, 인생을 잘 살아왔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는 저대로 정서적으로 해녀 어머니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고요. 그런가 하면 어머니들이 물속에 들어가 작업하시면서 노래가 생각나면 울 때도 있고, 좋아서 기쁠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 공동체가 단단하게 뭉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보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해녀합창단은 일주일에 1∼2회 연습을 한다. 공연은 많을 땐 연 20회가 넘을 정도로 자주 한다. 제주의 마을운동회 같은 작은 행사에서부터 영화제 같은 문화행사 나아가 국제적인 행사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안팎의 다양한 곳에서 무대에 섰다. 2019년에는 한국의 해녀 문화를 알리기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에 가서 공연하기도 했다. 원하는 곳엔 가급적 모두 응하겠다는 게 방승철씨의 생각이다. 현재 하도 해녀합창단의 순수 창작곡 레퍼토리만 해도 20곡에 달한다. 모두 방승철씨가 만든 곡들이다.
  

스웨덴으로 간 해녀합창단 2019년 주스웨덴 한국대사관 초청을 받아 현지에서 한국의 해녀문화를 알리는 공연을 했다. ⓒ 사진제공 방승철

 
해녀합창단의 활약상(?)을 들으면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해녀들의 합창이 일반인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길래 이처럼 도처에서 공연 요청이 오는 것일까?

"아무래도 특수한 삶을 사는 분들의 노래다 보니 보통의 흔한 합창단과는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해녀들이 바다에서 일하기 때문에 호흡부터 다르고 따라서 소리도 뭔가 다르게 다가옵니다. 제가 이 소리들을 분석해보려 했는데, 분석이 안 되더라구요.

그리고 해녀라는 삶이, 어머니로서 여자로서 짊어져야 했던 책임감의 무게가 남달랐다는 점도 심금을 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해녀의 삶을 그대로 담은 가사를 노래하는데, 그 소리들에서 생소한 파장이 움직이고 멜로디가 섞여서 나오니까, 이런 목소리와 이런 가사로 부르는 합창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은 무척 감동하고 심지어 우는 모습도 제가 많이 봤습니다."


하도 해녀합창단은 구좌읍 하도리 어촌계 소속 해녀들로 구성돼 있다. 제주도 동쪽에 위치한 하도리는 서쪽에 비해 땅이 척박한 까닭에 해녀가 400여 명이나 될 정도로 많은 곳이다. 해녀합창단이 좋은 평가를 받고, 무엇보다도 단원들이 행복해하자 다른 해녀들도 합창단에 들어오고 싶어 한단다. 합창단 단원은 50∼70대로 구성돼 있는데 73~74세가 되면 나가야 하고, 빈자리가 생겨야 신규 단원이 들어올 수 있다.

제주로 온 '잘 나가던' 뮤지션

방승철씨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그리고 가수로도 알려진 유명 뮤지션이다. 1993년 작곡가로 데뷔한 이래 조규찬, 다나, 핑클, 카라, 제이, 럼블피쉬 등의 가수를 통해 200여 곡을 발표했다. '빅뱅'이란 닉네임은 그가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2집 앨범을 낸 직후 빅뱅이란 그룹이 등장하면서 혼선을 빚기도 했다. 그래서 '원조 빅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요즘은 '제주 판타지'라는 닉네임을 즐겨 사용한다.

이렇게 잘 나가던 뮤지션이 제주로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2012년 여름에 공연도 하고 자전거 여행도 하면서 한 달 넘게 제주에서 지냈어요. 함덕에서 록 페스티벌도 했었고요. 그때 제주가 너무 좋았습니다. 공항에서부터 느껴지는 습한 제주의 바람과 다른 어느 곳과도 색다른 풍경과 활기가 대도시의 반복되는 생활에선 맛볼 수 없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제주로 내려올까 고민하던 차에 표선면 가시리에 사시는 분들과 연결이 됐는데 저에게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서울-제주를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기도 했지요. 그러고는 마침 친구가 세화에 집을 사게 되었고, 2013년 12월 30일 제가 그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으니까 제주 생활 10년이네요."

  

뮤지션 방승철 제주 정착 10년, 음악으로 제주 사람들과 소통하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 황의봉

 
현재 제주도에는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가들이 많이 이주해 살고 있다. 예술적 영감을 얻기에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방승철씨의 경우는 어땠을까?

"추상적인 이야기인데, 저는 바람에 대한 느낌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어요. 이곳 제주는 특히 바람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느낌들이 정서적으로 쌓여서 음악으로 표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한번은 제주에 내려와 음악을 만들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제가 전업 작곡가였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어떤 컨셉에 따른 요구에 맞춰 작곡을 하는 식이었다면, 여기선 제가 좋아하는 풍경을 즐기고 기타를 치면서 자연스럽게 창작이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언젠가 방송 인터뷰에서 '도시에서 닫혀 있던 창이 10개 중 9개가 열렸고, 1개가 반쯤 열렸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와서 온전하게 즐기는 경험을 하면서 비로소 사람들에 둘러싸여 닫혔던 창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창작의 기운이 저를 움직였다고나 할까요."


제주로 내려온 초창기 방승철씨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제주에 온 다음 해인 2014년 그가 '가시리 평화축제'를 직접 기획하고 주최했다. 음악, 그림, 연극, 설치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가시리에 모여 여기저기서 버스킹을 벌이는 등 자유롭게 예술적인 끼를 발휘하고 즐기는 성격의 행사였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상적인 작은 마을을 만들어 즐기자는 취지였다.

대만, 중국, 일본에서도 참가자가 왔던 이 행사는 그 후 일본에서도 열려 4·3과 관련한 공연 등을 했는데, 재정적으로 어려워 3년을 연 뒤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2014년에는 단 1명의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배를 타고 우도까지 들어가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가시리 평화축제 때 기타를 가르쳐주면서 알게 된 한 퇴직 교사가 있었는데, 우도에 정착해 살고 있던 이 분이 자신의 딸에게 기타를 가르쳐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해왔다고 한다.

대학 진학할 나이의 딸이었지만 제도권 교육에 맡기기보다 방승철씨에게 선생님이 되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방 선생님'은 주말이면 기타를 매고 배 편으로 우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려 3년에 걸쳐 우도를 드나들며 기타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많은 대화를 하면서 자신도 배우고 보람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제주에서 만든 앨범 방승철씨가 '나는 해녀이다' '해녀땐쓰' '무지개' 등 해녀와 어린이를 소재로 만든 앨범들이다. ⓒ 황의봉

 
이렇게 시작한 방승철 작곡가의 '제주 판타지'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을까. 제주 정착 이후의 음악 활동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다양했다. 그가 해녀합창단 다음으로 열정을 보인 일은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음악 교육이다. 이런 식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주제를 주고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리고 그가 이 내용들을 엮어서 가사로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든 뒤 어린이들이 부르게 한다. 어린이들에게 어려운 작사, 작곡을 가르치기보다 그들이 표현한 느낌이나 정서가 어떤 노래로 만들어져 나오는지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곡을 어린이들이 불러 동요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이 밖에도 서귀포에서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을 가수 강산에씨와 함께한 것을 비롯해, 국립제주박물관 탐라순력도와 함께하는 제주의 노래, 사진과 음악이 있는 풍경 싱어송라이터 방승철 초대음악회, 방승철 연주로 특별하게 시작하는 김형석 초대 사진전, 사진작가 고 고현주 금악성당 장례미사-천개의 바람이 되어 기타 연주 등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해왔다.

어린이와 노인과 함께할 때 마음이 정화돼

구좌읍 덕천리에 살고 있는 방승철씨의 일상은, 잠을 충분히 자고,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하며,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멍때리는 시간을 즐기고, 그러다가 일이 있으면 집중해서 성실히 임하고, 오름과 바다를 즐기고, 불필요한 일에 관계를 맺거나 시간을 뺏기지 않는 생활이다. 이런 제주생활 10년을 통해 그의 음악에는 어떤 질적 변화가 일어났을까?

"음악을 만드는 과정보다 오히려 음악을 듣는 과정이 훨씬 더 좋게 느껴집니다. 이곳에선 소음이 없어요. 그래서 음의 파장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고, 창작을 하는 데에 커다란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제주에 와서 정규 앨범과 싱글 앨범도 하나씩 냈지만, 창작의 결과물 개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내가 만든 음악 그 자체에 나의 것이 얼만큼이니 실리고 그것이 진심에서 나온 것인지에 가치를 두고 있어요."
  

감사패 받은 방승철씨 하도 해녀합창단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2023년 1월 제주해녀항일운동 91주년 기념식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 황의봉

 
제주에 거주하면서 음악 작업도 만족스럽고, 음악을 통해 제주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도 뜻대로 이루어가고 있는 뮤지션 방승철. 그는 생활 방편으로 세화 바닷가 부근에 '청춘스테이'라는 독채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현재 해녀합창단원보다 더 나이가 드신 80세 전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리고 더 어린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해볼 생각입니다. 어린이나 노인들과 함께할 때 저는 즐겁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치열한 과정을 거쳐 음악을 체득했지만, 여기서는 그걸 즐거운 방법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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