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2 21:33최종 업데이트 23.02.2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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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막장, 마지막 정거장, 밑바닥 인생, 완행열차...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폄훼와 하대, 조롱, 멸시당하며 눈물 젖은 밥벌이에 뛰어든 일용잡부를 흔히들 '노가다'(일본어, dokata, 土方)라 칭한다. 노가다 꾼은 씹다 씹다 단물이 쏙 빠진 껌처럼 끝내 버려지는 비운의 삼인칭이다. 27년 동안 한 기자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노동으로 지난해 9월 노가다를 시작했다. 몇 차례에 걸쳐 직접 겪은 땀의 현장을 전한다.[기자말]

새벽시간 공장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 ⓒ 나재필

   
"내일부터 노가다 시작해."

27년간 기자로 활동하며 언론 밥을 먹어온 내 입에서 '노가다(막일)'란 말이 나오자 아내의 입이 떡 벌어졌다. 농담이거니 생각하는 듯했다. 건설현장 취업 스토리를 장광설로 풀어놓아도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주변에서는 일에 대한 편견도 있었다. 우리네 교육이 그랬다. 어렸을 때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며 이른바 노가다꾼(건설 노동자)을 가리키곤 했다. 술 먹고 주먹질하고, 거리에 토악질하는 다수의 남성 직업도 이들인 것처럼 대했다. 한 직업군에 올가미를 씌우고 족쇄를 채워 처참한 낙인을 찍었다.

"그 몸으로? 어떻게? 어쩌려고" 걱정하는 아내에게 "내 몸이 어때서? 해낼 수 있어"라고 답했다. 일찍부터 건설 기초안전교육을 이수해 놓았을 만큼 막일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혈압을 필두로 신체검사도 통과했다. 그렇게 지난해 가을부터 노가다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삽질의 행군이 시작됐다.

새벽은 특히 겨울에 더 시렸다. 빛은 없었고 하늘은 파랗게 질려있었다. 모두 잠든 오전 4시 반. 알람이 울리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세포들 사이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뼈마디와 핏줄 보퉁이에 바람이 불었다.

전장에 나서는 것처럼

이 일의 가장 큰 위기는 출근부터 시작된다. 조금 덜 자느냐, 아예 자느냐가 승패다. '조금 더 자면'을 택하면 공치는 날이 된다. 그 순간이 위기다. 물론 일이 익숙해져도 잠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전장에 나서는 것처럼 중무장이 필요하다. 팬티 포함 내복 세 장, 그 위에 보온 셔츠, 또 그 위에 난방점퍼를 입었다. 아랫도리, 윗도리,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바람구멍 없이 동여매는 게 원칙이다. 전체적으로 눈만 빼꼼 나오는 모양이다. 더구나 오토바이로 새벽 출퇴근을 하다 보니 추위는 상상 그 이상으로 몸을 짓이긴다.

전쟁은 출근 게이트부터 시작된다. 스마트폰과 출입증 보안점검을 하고, 음주상태를 측정한다. 전날 먹은 술이 깨지 않았다면 그대로 돌려보낸다. 하이바(안전모) 등 착용여부를 살피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거나 핸드폰을 작동하는 등의 태도도 안전 관리자들이 일일이 감시해 퇴출한다.

일단 출근부 사인을 마치면 안심등록을 하고 팀장의 지휘하에 움직인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은 통성명 대신 눈인사를 한다.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캐묻지 않는다. 시간이 가다 보면 누군가부터 보따리를 풀 것이고, 그리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터이니 보챌 일이 아니다.

'반장님'이라는 직함을 부여받았는데, 이는 특별한 호칭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반장님이라고 불린다. 김씨, 이씨, 박씨보다는 젠틀하다. 특히 기공(기술공)이 아닌 조공(기술공 지원)이어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 지극히 수동적이고 기계적이다.

이곳에서 기공은 '벼슬'에 가깝다. 조공 서넛을 거느리고 일당도 더 챙겨간다. 결국 노가다 판에서 기술은 곧 돈이고, 상전이고,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자칫 인성 더러운 작자라도 만났을 경우엔 군대 생활 버금가는 정신노동에 시달리기도 한다.

내가 입문한 현장은 일반적인 공사가 아니라 한 지역의 대기업 공장 현장이었다. 인력사무소를 거친 현장은 날마다 간택 받아야 하는 날품이지만, 이곳은 한번 간택되면 월급제이므로 그 결이 달랐다. 대기업의 경우 현장 공사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데다 급여 떼일 일도 없어 선호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보통 작업시간(점심시간 뺀 8시간)이다. 이렇게 하면 1공수(한 대가리), 오전 7시~오후 7시는 1.5공수(쩜 오대가리, 연장), 오전 7시~밤 10시는 2공수(두 대가리, 야근)다. 대가리는 공수를 뜻한다. 조출(조기출근)은 오전 5시부터이고 그만큼 일당이 는다. 노가다꾼들이 선망하는 철야 근무는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8시간에 2~2.5공수다.

2시간에 한 번씩 30분 휴식하고 점심시간은 2시간까지 주어진다. 월급은 출근일수에 따른 공수 합계로 받는다. 조공 기준으로 일당이 14만~18만이니 일반 현장보다 센 금액이다. 야근까지 하는 날엔 30만~40만 원을 받는 셈이다. 공사가 활기를 띠고 해종일 뛸 경우 한 달에 700만~800만 원은 족히 벌 수 있다.

나대지 말고 딱 중간만 하기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모습 ⓒ 나재필

 
일은 고된 편이지만 견딜 만하다. 반복적인 일이 많고, 강도 높은(힘쓰는) 작업도 제법 된다. 팀장이나 작업지휘자(관리자)의 지시대로 하되 농땡이는 금물이다. 요령 피울 틈이 많은 건 인원이 많기에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농땡이보다 더 주의할 점은 '나대지' 말라는 거다. 일 잘한다는 소릴 들으려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이곤 하는데 핀잔을 듣기 일쑤다. 딱 중간만 하면 된다. 시키는 일만 성실히 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잡부는 말 그대로 잡부로서의 책무만 다하면 된다. 농땡이 치는 것도 요령껏 해야지, 표나게 했다간 다음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팀장이 찾기만 하면 화장실 가서 안 오는 뺀질이들도 있는데, 'X싸고 짐 쌀'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가다에 적응하려면 최소 일주일의 워밍업이 필요하다. 팔, 다리, 어깨, 무릎, 팔꿈치 등이 쑤시고 저리다. 그 통증은 운동이나 취미활동으로 생기는 통증과 다르다.

내 몸이 네 몸인 양 앓는 소리가 질질 샌다. 청년의 몸이 어르신의 몸으로 둔갑하는 건 48시간이면 족하다. 흔히들 골병 든다는 말하는데 노가다가 대명사다. 뼛속에 바람이 들고 관절에 피로가 누적되며 몸은 급격히 퇴행기로 접어든다. 쉬는 날 병·의원을 찾아 '고장 난' 부분을 점검해야 한다.

이 일을 하면서 식습관도 바뀌었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삼겹살 세 점이면 나가떨어졌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힘이 부치는 날엔 집 앞 생고기집으로 달려간다. 혼자서 2~3인분을 소주와 함께 쓸어 담는다. 그 맛이 얼마나 꿀맛인지 아내를 챙길 시간이 없다. 매일매일 소삼(소주+삼겹살)이 당긴다.

풀만 뜯어 먹던 초식동물이 약육강식의 육식동물로 변하자 지인들이 기겁을 하고 있다. 이게 노가다다. 입 짧은 어른도 어른 입으로 바꿔주는 신비한 동물세계다.

무명씨들이 묻는다. "당신은 굳이 왜 노가다 판에 뛰어들었냐?"고. 답은 하나다. 돈이다. 99.9999% 일꾼들은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기에 힘듦도 참고, 배고픔, 외로움, 멸시도 견뎌낸다. 물은 100°C가 돼야 끓는다. 1°C가 모자라면 영원히 끓지 않는다. 포기하고 싶은 그 1°C가 견뎌내야 할 인내의 비등점이다. 그래서 오늘도 인생을 버티기 위해 새벽길을 나선다.

(*다음 편에 계속)
 

새벽시간대 몸을 움츠린 채 출근하는 노동자들 ⓒ 나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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