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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만 2시간... 휴대전화 요금제, 제발 조건을 단순화하자

[주장]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한 요금제와 할인 혜택... 은연중 불신만 조장

등록 2023.02.19 14:20수정 2023.02.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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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 픽사베이

 
4년 만에 스마트폰을 바꿨다. 부쩍 짧아진 수명에 휴대용 배터리 팩을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에다 이따금 오작동으로 인해 황당한 일을 겪은 터라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느닷없이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가 하면, 도중 화면이 정지돼 껐다가 다시 켜야 하는 난감한 순간도 있었다.


기존의 것은 작년에 사업 철수를 공식화한 업체의 제품이다. 주변에선 프로그램 업데이트가 안 돼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사업 철수로 인해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의뢰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이미 보증 기간도 끝난 마당이니 이쯤에서 새로 하나 장만하라고 조언했다.

지난 2014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본 뒤 지금껏 삼성 제품 불매를 실천해오고 있는 터라 선택지는 사실상 아이폰뿐이다. 생산 공정에서 사회에 끼친 해악으로 치면 아이폰이 삼성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삼성 공화국'에 저항한다는 나름의 다짐이어서 여기서 멈출 순 없다.

매장 안엔 여러 모델이 전시돼 있었지만, 제조사는 삼성과 애플, 단 두 곳뿐이었다. 중국산 제품은 고객이 요청하는 경우에만 따로 구해준다고 한다. 두 제품에 견줘 훨씬 저렴한데도 중국산 스마트폰을 찾는 고객은 열에 한 명도 안 될뿐더러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귀띔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폰 13을 집어 들었다

출고가 124만 원. 매장의 영업사원이 보여준, 작년 말 출시된 아이폰 14 모델의 가격이다. 업그레이드 모델인 아이폰 14 프로의 경우엔 180만 원을 훌쩍 넘는다고 했다. 최저시급을 받는 노동자들의 한 달 월급에 육박하는 엄청난 가격이다. 그런데도 최근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라고 했다.


턱없는 가격에 놀라서 싼 건 없는지 물었다. 2년 전에 출시됐다는 아이폰 13을 꺼내 보여주었다. 구모델이라지만 외견상 아이폰 14와 아무런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크기도, 모양도, 심지어 뒤에 달린 카메라의 위치도 똑같았다. 20만 원 가까운 가격 차 말고는 다른 건 없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포장지에 적힌 기기의 사양을 읽어봐도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차이라곤 단지 제품명에 붙은 숫자에서 1이 더해진 것뿐이다. 영업사원조차 아이폰 13의 업그레이드 모델이 아이폰 14라는 말만 되뇔 뿐, 두 제품 사이의 차별성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마저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고가였다. 더 싼 건 없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아이폰 13 이전 모델은 이미 단종된 상태라 재고가 있는지 알아보거나 중고 제품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애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모델은 통틀어 아이폰 13과 14, 둘 중 하나뿐이었던 거다.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폰 13을 집어 들었다. 모델 선정이라는 '강'을 건넜으니, 이제 통신사와 요금제 선택이라는 '산'을 넘을 차례다. 누구 말마따나,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요금제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는데, 이른바 '호갱님'이 되지 않도록 바짝 긴장해야 한다. 매장 벽면엔 통신사별 요금제를 적어놓은 안내문이 빼곡하다. 제공되는 데이터의 양과 금액이 천차만별이어서 그냥 봐서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업자가 기기별 출고가와 지원금, 판매가 등 지원금 지급 내용 및 지급 요건에 대하여 소비자가 알기 쉬운 방식으로 공시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요금제 자체가 워낙 복잡해서 법 조항이 무용지물이다.

대개 영업사원이 추천하는 요금제를 선택하면 기기의 값을 할인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고객과의 '밀당'이 시작된다. 기기마다 공시 지원금이 다른 데다 선택 약정으로 할인받는 금액과의 차이를 따져보는 것만 해도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당장 용어부터 개념 정리가 안 된다.

통신사와 제휴된 카드 사용 고객을 대상으로 한 할인 혜택도 있고, 가족끼리 같은 통신사로 묶이면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가족 수가 많고, 인터넷 TV 등이 결합 되면 할인율은 높아진다. 대리점에 따라 사용한 스마트폰을 반납하면 통신비를 깎아주는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호갱님'이 아니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모든 통신사가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2년 사용 약정 말고도, 요금제별 사용 약정을 따로 소개받는다. 기기의 값을 할인받든, 제공되는 데이터로 보상받든, 무조건 고객에게 유리하다면서, 가장 비싼 요금제로 몇 개월 동안 사용한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집과 직장에 와이파이가 갖춰져 추가 데이터가 불필요하다고 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기기의 값을 할인받으라고 대꾸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보란 듯이 전자계산기를 눌러대며 다짜고짜 고객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한다. 하긴 통신사를 불문하고 대리점마다 '최저가'라는 안내문을 붙이지 않은 곳이 없다.

급기야 추가 할인을 제공한다면서 통신사와 제휴한 보험사나 상조 업체에 가입을 유도하는 일까지 횡행하고 있다. 매월 납입 비용만큼을 통신사가 지원해준다고 하니 고객의 입장에선 전혀 손해될 게 없다. 단지 가입과 몇 달 뒤의 해지 절차의 번거로움만 감수하면 적잖은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언뜻 선택하지 않는 게 바보짓 같지만, 왠지 찜찜하다.

스마트폰 가격은 서로 묻지 않는 게 불문율?

스마트폰과 비행기표 가격은 서로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언제 어디서 샀는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뜻이지만, 실시간 요금 조회가 가능한 비행기표와는 달리 스마트폰은 통신사와 대리점에 따라, 한마디로 '복불복'이다. 나처럼 어리숙한 사람은 영업사원의 '선의'를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통신사별 스마트폰 대리점마다 최저가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지만, 도시에 커피 전문점만큼이나 많은 걸 보면 엄살처럼 느껴진다. '동네 최저가'에서 '지역 최저가', '국내 최저가'를 지나 '우주 최저가'라는 우스꽝스러운 간판마저 나붙었다. 결국 지역마다 원조 격으로 '휴대폰 성지'라는 곳마저 등장했다.

이젠 발품만 판다고 '호갱님'을 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영업사원과의 '밀당'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관련 법 지식과 용어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의 복잡다단한 약정 설명과 전자계산기의 숫자 변화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간 '호갱님'의 덫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고작 스마트폰 하나 교체하는데도 이토록 번거롭고 힘든 과정을 견뎌야 한다는 게 서글프다. 국내의 통신사별 대리점별 판매 경쟁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출 것으로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우리나라의 아이폰 가격이 미국과 일본보다 훨씬 더 비싸고, 통신비 부담 역시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라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2시간여 동안 영업사원과 '밀당'을 벌이다가 순간 이런 의심이 들었다. 통신사와 대리점이 서비스의 질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업체마다 알아서 고객을 '구워 삶으라'는 듯 의도적으로 요금제와 할인 혜택을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것만 같다는 것. 은연중에 서로의 불신만 조장하는 꼴이다.

누구든 아무런 의심 없이 흔쾌히 계약할 수 있도록 제발 조건을 단순화하자. 기기 가격과 통신비를 뒤섞지 말고, 요금제는 오로지 데이터 제공 양을 기준으로 차등화하면 된다. 기기별 공시 지원금과 의무 약정 기간이야 사실상 통일돼있으니 문제 될 게 없다. 단언컨대, '호갱님'이라는 말이 생겨난 현실을 통신사와 대리점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휴대전화 요금제 #아이폰 13 #통신비 할인 #호갱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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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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