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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난 이웃집 돕기 모금... 반나절만에 천만 원이 모이다

인근 집 화재 소식에 재빠르게 도움 나선 캐나다 사람들... 이웃의 재난에 공감하는 방식

등록 2023.02.19 17:43수정 2023.02.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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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해 불이 난 집(기사와는 상관없는 자료사진). ⓒ pxhere

 
최근 밤늦게까지 글을 쓰고 있다가 안방으로 들어갔더니, 남편이 사이렌 소리를 혹시 못 들었냐고 내게 물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던 부엌은 창문이 산 쪽으로 나 있는 데다가, 밤에는 이상하게 각종 집안 소리들이 시끄럽게 들려서, 바깥소리는 오히려 잘 안 들린다.


남편 말은 바깥 어딘가에서 불이 났는지, 소방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었다. 어디 멀지 않은 곳에 불이 난 것 같았단다. 남편은 노트북 컴퓨터를 열고 페이스북의 동네 커뮤니티에 접속을 했다. 

캐나다 서부 광역 밴쿠버에 있는 우리 동네는 산자락을 끼고 있는 조용한 지역이다. 아파트 단지는 아니지만 담장 없는 단지에는 관리사무소도 있고, 놀이터도 있고, 수영장도 있다. 골목길에서는 차를 시속 20km 이하로 운전해야 하고,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지나가는 차에 손을 흔들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모두가 다 직접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만나는 모두를 이웃으로 생각하고 반겨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네에서 일어나는 많은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다른집 우편물이 자기네로 잘못 배달된 것 같으니 아무개 씨는 자기네 집으로 찾아오라든가, 아이가 자라서 이 장난감이 필요 없는데 가져다 쓸 사람이 있느냐든가 하는 글들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다.

'곰 나타났어요', '냉장고 쓰실 분'... 다정한 이웃들

우리 집도 과거 누군가가 처분한다고 했던 작은 냉장고를 받아와서, 보조 냉장고로 현재 잘 쓰고 있다. 여기서는 소소한 나눔이나 판매도 이루어지고, 담장을 수리하고 싶은데 누구 잘 아는 사람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글도 올라온다. 몇 번지에 곰이 나타났으니 아이들을 집으로 들이라는 소식도 빠르게 뜬다. 사람들이 다정하다.


찾아보니, 페이스북 페이지에 역시 화재 소식이 떴다. 어디 불났느냐고 묻는 게시물 밑에 덧글이 달렸지만, 정확한 것은 확실하지 않았다. 더 자세한 소식은 다음날 아침에야 밝혀졌다.

누군가의 방화로 추정되며 용의자는 현장에서 잡혔다고 했다. 다행히 가족은 집에 없었으나 키우던 개가 있었고, 다행히도 소방관들에게 구출되었단다. 불이 난 집은 전소되었고, 이웃집까지 화재가 번졌다. 90분 동안 진화가 계속되었으며, 다행히 더 많은 집들에까지 옮겨 붙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웃집 전소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재난 뒤 마주한 연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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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모금 사이트인 고펀드미(GoFundMe) 첫화면 ⓒ 고펀드미

 
캐나다 집들은 대부분 목재로 지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불이 나면 거의 무방비이다. 이 지역이 만들어진 지 약 4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이렇게 제대로 된 큰 화재는 처음 발생했다고 했다. 따뜻한 이웃이 사는 곳, 아이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동네에서 놀 수 있는 이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근처 주민들은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집은 아마도 화재보험이 되어있겠지만, 그곳 가족들은 당장 갈 곳도, 옷도, 먹을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 거의 곧바로 기금모금 사이트인 고펀드미(GoFundMe)에서 모금이 시작되었다. 두 집을 돕는 목표금액이 천만 원이었는데, 그 돈이 모이는 데는 약 반나절 정도 걸린 것 같다.

여기는 부촌도 빈촌도 아닌 동네다. 모금을 한 사람들 중에는 익명으로 한 이도 있었고, 이름을 밝힌 사람도 있었다. 백만 원을 선뜻 내놓은 사람도 있었고, 단돈 '만 오천원'이라는 액수도 보였다. 각자 가진 한도 내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힘을 합친 것이다.

사람들은 화재 소식에 마치 내 가족의 일처럼 안타까워했고, 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주유카드, 식료품점 카드, 옷가지나 아이 장난감 등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자, 기부하는 물품들을 동네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오후 4시~6시 사이에 받겠다는 공지가 그날 바로 추가로 올라왔다.

살면서 세상이 참 각박해져 간다 싶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이웃의 재난에 깊이 공감하고, 말로만 위로하는 것을 넘어서 선뜻 자기 주머니를 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너무나 감사하게 된다. 결국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음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피해를 당한 가족이 어서 안전하게 다시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비슷한 글이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화재 #이웃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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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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