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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증후군, 이렇게 극복했습니다

보람 충만 '사내 강사' 활동... 무기력 탈피하는 활력소

등록 2023.02.24 21:20수정 2023.02.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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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퍽한 직장 생활에도 찾아보면 소소한 재미 거리가 분명 있다. 퇴사가 열풍이 되어버린 요즘, 어쩌면 그 재미 거리가 계속 회사를 다닐 큰 힘이 되어줄지 모른다. 여기에 18년 차 직장인의 재미를 전격 공개한다. [기자말]
아침 알람이 울렸다. 잔뜩 물 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면장으로 향한다.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고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지하철 안은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치 서핑을 타듯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다 보니 어느새 회사 앞이다.

커피 한잔을 타서 자리에 앉는다. 오전부터 밀려드는 일들로 살짝 짜증은 났지만 급한 것부터 하나씩 처리한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직원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얼른 사무실로 들어와 휴식을 취한다. 까만 불이 하얗게 변하면 어느새 오후를 알리는 신호이다. 오전에 처리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고, 부서장에서 몇 가지 보고를 마치면 일과가 끝이 난다.


또다시 만원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한다. 씻고 저녁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과 잠시 이야기 나누면 잘 시간이 다가온다. 아쉬운 마음에 누운 상태로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잠이 든다.

직장 생활이 10년이 넘은 시점에 나의 하루였다. 회사 업무도 어느 정도 손에 익었고, 아이들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전보다는 손이 덜 갔다.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그렇고 그런 삶의 반복 속에서 권태기가 찾아왔다. 물을 잔뜩 먹은 미역처럼 축 쳐져, 무얼 해도 재미없고, 무기력했다.

일상의 활력이 되어 준 사내 강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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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교육 교육생들이 직접 작성한 교육을 받는 이유 ⓒ 신재호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사 게시판에 사내 강사 모집 공고를 보았다. 벌써 4기였다. 무심결에 클릭을 해보니 지원서류부터 활동 사항까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 인사 가점도 없었고, 특별 수당도 없는 말 그대로 봉사였다. 그대로 닫으려는 순간 문구 하나가 멈칫하게 했다.

"감수성을 함양하여 업무에 적용할 뿐 아니라 직원 서로 간 존중하는 올바른 직장 문화를 정착하는 데 이바지함."

차갑게 식었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가 사내 강사로 활동한다는 기억이 났다. 바로 연락을 해보았다. 동료는 객관적으로 장단점을 설명해주었다.


동료가 뽑은 가장 큰 장점은 함께 활동하는 강사들이었다. 나이, 직급, 성별, 지역 모두 다르지만, 강사라는 틀 안에서 동등한 지위를 가졌다. 면면이 직장 내에서 인품도 훌륭하고 일로도 인정받는 분이었다. 강사가 되면 이렇게 좋은 분들과 퇴직 때까지 계속 교류할 수 있었다.

강사 활동을 하며 누리는 보람 또한 컸다. 평소 직장 내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 함께 토론하며 좋은 해결 방안까지 찾았다. 그 과정에서 변화되는 직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자체로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물론 일과 중에 별도의 시간을 내야 했기에 윗사람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실질적으로 나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없었다.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정성스레 서류를 작성한 후 제출했다. 그리고 며칠 뒤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합격이었다. 가슴이 벅찼다. 실로 오래간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그간 교육 업무를 담당했던 경험과 심리학을 전공한 이력이 도움이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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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 입구 5일간 강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연수원 입구. 건물 디자인이 세련되었다. ⓒ 신재호


일주일간 연수원에서 교육받았다. 나와 같이 신규 강사로 뽑힌 동료는 총 다섯 명이었다. 회사에서는 선후배 간이었지만 여기서는 서로 강사로 불렸다. 선배 강사들은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그때부터 치열하게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때 마침 새로운 교재가 개발되었고, 강사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때론 의견 차이로 논쟁도 벌어졌다. 그 모습이 신선했다. 나 역시 회사에서의 무기력한 모습을 탈피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교육을 마치고 저녁때는 강사들끼리 모여 맥주도 한잔했다. 모이면 늘상 나누던 뻔한 직장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어떻게 하면 교육생에게 더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을 까 하는 고민이 가득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기도 했다.

총 3일, 6개 교육과정 중 나는 2일 차 오후 강의를 맡게 되었다. 강의의 주된 내용은 직장 내에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고, 역할극 시연을 통하여 부조리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어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었다.

3달이 지난 뒤 첫 강의가 잡혔다. 사전에 PPT를 만들고, 수도 없이 모의 강의를 해보았다. 찌르면 바로 튀어나올 정도로 반복에 반복을 더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평소와 달리 멋지게 양복을 갖춰 입고 길을 나섰다. 마치 신입사원으로 돌아가 처음 회사에 출근하는 듯 긴장과 떨림이 교차했다. 연수원에 도착해서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내 강사 신재호입니다."

단상 앞에 서서 나를 쳐다보는 수십 개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필살기로 준비한 몸풀기 게임을 통해서 분위기를 띄웠고, 그 사람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미처 몰랐던 내 안의 숨겨진 끼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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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교육 회사에서 갖고 있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며 해결책도 찾아본다 ⓒ 신재호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교육 내용이 아니었다. 나는 화두만 던졌고, 그다음부터는 교육생들 스스로 이야기 나누고 해결점을 찾아갔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나 역시도 직장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이기도 했고, 풀지 못해 답답했던 점을 오히려 교육생들의 토론을 통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조별 역할극 시연에 이르러서는 교육생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짧은 시간임에도 하나의 극을 만들어내는 점이 경이로웠다. 모두가 약속한 대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과를 도출했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내내 차오른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사내 강사를 지원하길 잘했다며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벌써 5년 차 사내 강사로 활동 중이다. 일 년에 4번은 꼬박꼬박 강의했다. 그리고 매년 강사 워크숍을 통하여 동료 강사와도 계속 교류했다. 카톡방을 통해서 정보도 수시로 주고받고, 좋은 일, 슬픈 일도 나누며 정을 쌓았다.

올해는 5기 강사 모집이 있었다. 평소 눈여겨보았던 후배에게 지원해보라고 권했더니 머뭇거렸다. 따로 시간을 내서 강사 활동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 과정에 후배가 최근에 슬럼프가 크게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험도 공유하며 강사 활동이 새로운 활력이 되어 줄 거란 말에 지원하겠다고 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서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날은 따로 시간을 내서 저녁을 함께 먹으며 자축 파티를 했다. 후배에게 강사 활동이 새로운 도약이 되리라 믿는다.

번아웃증후군,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번아웃증후군이란 용어가 있다. 번아웃(Burnout)은 '에너지를 소진하다'는 뜻으로,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번아웃증후군이라고 말한다.

지난 2021년 3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번아웃증후군 경험 여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번아웃증후군을 겪었는가'라고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4.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매우 그렇다' 22.4%, '다소 그렇다' 41.7%로 나타났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35.9%에 불과했다.

이렇듯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번아웃증후군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예방책으로 '업무와 관련 없는 활동'을 통해 심리적 공백이나 불안정을 해소해야 하거나 운동이나 등산 같은 취미생활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배우자나 사내 멘토와 자주 만나 대화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목표나 이상을 크게 잡아 자기 능력 이상으로 무리하게 일을 하는 것도 경계할 점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번아웃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도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강사 활동을 통해서였다. 혹여나 지금 무기력이 찾아왔다면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건 직장 안이 될 수 있고, 직장밖이 될 수 있다.

나 역시도 퇴직 때까지 꾸준히 사내 강사 활동 통하여 그 힘으로 직장 생활의 활력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올 3월 초에 새로 뽑힌 신규 강사와 함께 워크숍이 잡혔다. 요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회사 일들로 골치가 아팠는데, 그곳에 가서 모두 털어놓고 와야겠다.

봄바람이 살랑 부는 따스한 날에 동료 강사들도 만나고, 강의에 관해서 실컷 이야기 나눌 생각에 벌써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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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번아웃증후군 #사내강사활동 #무기력 #직장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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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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