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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 최다승' 유도훈 감독 400승의 빛과 그림자

[주장] 아직 이루지 못한 무관 탈출... 최장수 감독 신화 이어갈까

23.02.20 16:01최종업데이트23.02.2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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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한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유도훈 대구 한국가스공사 감독이 걸어온 농구인생과도 가장 어울리는 표현일지 모른다.
 
유도훈 감독은 최근 의미있는 기록을 달성했다. 한국가스공사는 19일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전주 KCC를 81-79로 물리치며 9연패 후 2연승을 달렸다. 그리고 이 경기로 유도훈 감독은 프로 사령탑 지휘봉을 잡고 정규리그 통산 400승(394패)의 위업을 이뤘다.
 
26년 프로농구 역사상 400승 고지에 오른 감독은 유재학(724승), 전창진(523승), 김진(415승) 감독에 이어 유도훈 감독 등 단 4명뿐이다. 여기서 유도훈 감독의 400승 기록이 좀더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유 감독을 제외하고 유재학-전창진-김진 감독은 모두 프로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다. 세 감독의 정규리그 우승 횟수를 합치면 14회, 챔프전 우승은 10회에 이른다. 하지만 유도훈 감독만은 유일하게 정규리그와 챔프전 모두 우승 경력이 없다.
 
유도훈 감독은 프로농구 역대 '무관 최다승 감독'이라는 이색적인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성적으로 평가받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우승을 한번도 차지하지 못한 감독이 프로무대에서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체가 보기드문 업적이다.
 
유도훈 감독은 선수 시절에도 '현역 최단신'의 핸디캡을 딛고 프로무대에서 주전과 키식스맨급을 오가며 살아남았던 근성의 소유자다. 지도자로서는 2007-08시즌 안양 KT&G 카이츠(현 안양 KGC 인삼공사)을 한 시즌만 이끌었던 것을 제외하면, 2009-10시즌(감독대행 포함)부터 인천 전자랜드를 거쳐 지금의 대구 한국가스공사까지 13년간 줄곧 한 팀의 지휘봉만을 잡아왔다. 유재학 감독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18년 만에 현대모비스 총감독 자리로 물러나며 이제 유도훈 감독이 현역 중 '한 팀을 가장 오랫동안 이끈 최장수 감독'이 됐다.
 
유도훈 감독이 거둔 400승 중 총 361승이 전자랜드-가스공사 시절에 거둔 성적이며 당연히 이는 구단 역대 감독 최다승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유도훈 감독은 현재 총 794경기를 감독으로 소화하며 역대 5위에 올라있는데 이변이 없는 한 올시즌 남은 11경기를 완주하면 김진(803경기)과 추일승(797경기) 감독을 제치고 역대 3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유도훈 감도보다 더 높은 곳에는 1257경기의 유재학과 923경기의 전창진 감독, 두 명만 있다. 
 
유도훈 감독은 어떻게 우승 경력없이도 치열한 프로무대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유 감독이 지휘봉을 처음 잡았던 시절의 KT&G나 전자랜드는 모두 우승권과는 거리가 있는 중하위권 전력의 팀들이었다. 유 감독은 팀을 무려 12번이나 플레이오프로 이끌었고 이중 4강PO까지 오른 것이 5회, 준우승이 1회였다.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한 것은 단 3번이었는데 이중 2009-10시즌은 팀이 최하위로 추락한 상황에서 중간에 지휘봉을 물려받아 감독 대행을 했고, 2019-20시즌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시즌이 중단됐다. 사실상 성적부진으로 플레이오프 탈락의 책임이 있었던 시즌은 단 1번 뿐이다.
 
전자랜드는 이전까지 '개그랜드'라는 놀림을 받던 약팀에 가까웠으나, 유 감독이 부임한 이래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으로 거듭났고 창단 첫 챔프전 무대까지 밟았다. 슈퍼스타들이 많지 않았음에도 플레이오프에서 상위팀들의 발목을 잡거나 업셋을 일으키는 이변으로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언더독'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단지 우승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도훈 감독이 쌓아 온 성과가 저평가될 수 없는 이유다. 전자랜드를 인수한 가스공사 역시 이러한 유도훈 감독의 능력을 인정하여 감독교체 없이 동행을 이어갔다.

하지만 가스공사로 모기업과 연고지가 바뀐 이후로는, 유도훈 감독에 대한 팬들의 반응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전자랜드의 경우 가난한 구단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했지만 후반기에는 거물급 외국인 선수 영입 등에 나름 투자를 아끼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정상에 이르지는 못했다.
 
가스공사는 전자랜드의 선수단을 그대로 이어받은 데다 지난 시즌의 '두낙콜' 트리오(김낙현-두경민-앤드류 니콜슨), 올시즌의 이대성 영입 등으로 플레이오프를 넘어 우승권 전력으로까지 꼽혔다. 그럼에도 지난 시즌에는 고작 6강 턱걸이에 그쳤고, 심지어 올시즌에는 15승 28패로 꼴찌 삼성에만 간신히 앞선 9위에 그치고 있다. 최근에는 팀 창단 이후 최다인 9연패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예전과 달리 유도훈 감독의 경기운영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가스공사는 연패탈출 이후 2연승을 달리며 희망을 살렸지만 현실적으로 6강플레이오프 진출이 쉽지는 않아 보이는 상황이다. 유도훈 감독이 400승 대기록에도 마냥 웃기 힘든 이유다.
 
유도훈 감독과 동시대에 경쟁했던 '586세대' 지도자들은 최근 세월의 흐름 속에 하나둘씩 퇴장하고 있다. 이미 유재학 감독과 추일승 감독(현 국가대표팀)이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상범 감독도 시즌중 성적부진으로 DB 사령탑에서 하차했다.
 
유도훈 감독은 이제 현역중에서는 전창진 KCC 감독을 제외하면 두 번째 최고령 감독이 됐다. 공교롭게도 전창진의 KCC 역시 우승후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7위에 그치며 베테랑 감독들이 이끄는 팀들 모두 부진한 상황이다. 

오랜 감독 경력에도 아직 이루지 못한 무관 탈출과, 최근 젊은 후배 감독들의 득세속에 유도훈 감독이 앞으로도 최장수 감독의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올시즌의 결과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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