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3 07:13최종 업데이트 23.02.2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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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창간 23년을 맞은 데는 시민기자의 효용을 널리 전파하는 시민기자들의 역할도 컸습니다. 자발적으로 오마이뉴스를 알리고 시민기자를 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늘 밭에 간다 안카더나. 전에도 제사 모시고 여기서 깝깝하고 그러면 밤에 세 시 돼서 저 건너편 밭에 간다 안카더나. 밭에 가서 후라시 가지고 풀 뽑고 그러지. (밭에 가면 뭐가 좋아?) 밭에 가면 인자 맘에 후~하고 포롱포롱하게 올라와 있고 그러면 맘이 풀어지고 그렇대. 나이 많은 사람들 치매 치료할 때, 밭에 채소 이런 거 심어서 한다고 텔레비전에 안 나와샀더나? 그기 느껴지더라."

며칠 전 글쓰기 수업에서 한 학인이 엄마를 인터뷰한 글의 일부다. 엄마는 속 썩는 일이 생길 때마다 들판에 나가 마음을 다스렸다. 자신의 화를 독으로 분출하는 게 아니라 작물을 가꾸어 식구들 입에 들어가는 약으로 만든 엄마의 지혜와 맛깔나는 사투리에 다 같이 한바탕 웃고 울었다. 이런 글에 푹 빠졌다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이 글 오마이뉴스에 보내보면 좋겠네요."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얻은 것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캐릭터 마뉴. ⓒ 오마이뉴스

 
올해로 13년 차, 나는 정기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거나 외부 단체에서 강연을 하며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가진 이들을 만나고 있다. 회사원, 예술가, 학생, 공무원, 은퇴자 등 나이와 직업은 달라도 고민은 어슷비슷하다. 자신의 이야기도 글이 될까 하는 의심, 계속 쓰고 싶은데 동기부여가 어렵다거나 혹은 글이 늘지 않는다는 근심을 터놓는다.

그러면 나는 오마이뉴스 같은 곳에서 공적 글쓰기를 시도하라고 권유한다. 니체가 말했던가. 병을 낫고 싶거든 자신의 병을 고친 의사를 찾아가라고. 내가 오마이뉴스를 만병통치약처럼 제시하는 이유는 나부터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얻어간 게 많기 때문이다. 추려보자면,

하나는, 내 글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얻었다. 나는 2008년도에 자유기고가로 일하며 쓴 글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시민기자로 등록했다. 그런데 과연 나한테 재밌고 유익한 이야기가 남한테도 쓸모가 있을지 자신하지 못했다. 기사를 등록해놓고 '채택' 여부를 기다리며 얼마나 초조하던지... 되면 돼서 좋았고 안 되면 부족함을 알아서 좋았다. 시민기자의 데스크인 담당 편집기자의 전문성에 도음을 받아 사적 경험을 알맹이가 담긴 공적 언어로 가공해내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 다음은, 독자가 있는 글을 쓰는 기쁨을 알았다. 오마이뉴스는 광장이다. 이곳에 기사를 내놓는다는 건 서울역 앞에 글을 전단지처럼 뿌려놓는 일과 같다. 어떤 행인이 주워 읽어도 그 글을 이해한다면 잘 쓴 글이다. 그런데 하나둘 가던 길을 멈추고 내 글을 몰입해 읽는 사람이 나타난다! 기사의 조회수가 올라가고 댓글이 달리면 신이 나서 어깨가 올라갔다. 그건 더 써보라는 격려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알았다. 독자가 있는 사람은 쓰게 된다.

그리고 글이 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원고료가 쌓이니까 쏠쏠했고 직업인이 된 것 같았다. 이달의 새뉴스게릴라 상도 받고 해서 나의 원고료는 몇 달 만에 백만 원 넘게 불어났다. '이 정도면 됐다'는 내적 만족감이 들면서 어쩌면 자유기고가를 그만두고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진짜로 그렇게 되기까지 약 10년 쯤 걸렸다).

내겐 그랬다. 오마이뉴스는 공적 글쓰기 훈련장이자 마음껏 쓰고 실패하고 또 써도 좋은 안전한 놀이터다. 시민기자의 경험은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바탕, 독자가 있는 글쓰기의 기본기를 다져주었다. 물론 내가 그랬다고 남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지만, 글을 쓰려는 사람에겐 무엇이든 해보는 게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점에서 두루두루 권할 만한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공적 글쓰기 훈련장이자 마음껏 쓰고 실패하고 또 써도 좋은 안전한 놀이터다. 꾸준히 쓰다 보면 수상의 영광도. ⓒ 최은경

 
"평범한 사람들이 쓴 특별한 글"

실제로 성과도 거두었다. 학인들 중에는 시민기자로 꾸준히 글을 쓰다가 출간을 제안 받고 첫 책을 낸 사례가 꽤 있다. 그걸 볼 때 무척 뿌듯하다. 그들이 저자가 되어서가 아니다. 사실, 저자가 되는 건 행복해지기보다 (일시적으로) 불행해질 확률이 높다. 그토록 힘들게 썼으면 여기저기서 인터뷰도 하자 하고 북토크도 열어주고 해야하건만, 세상은 내 책에 무관심 하고 저자가 되었다고 해서 당장 일상에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하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과정은 남는다. 학인들이 수업이 끝나도 시민기자 활동으로 이어가며 성실하게 글을 쓰고 더 자기답게 변해 가고 제 좁은 울타리를 넘어 시야를 넓혀가며 크게 살아가고 있다.

블로그의 나만 보는 '비밀 글'에서 풀려나, 즉 남들이 내 글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환영에서 벗어나, 공개 플랫폼에서 행하는 글쓰기는 그런 일을 한다. 자기 생각과 입장이 있는 사람, 목소리를 가진 시민으로 만든다.

이오덕 선생님은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지난 13년 간 글쓰기 수업에 임하는 나의 지침이다. 그리고 수업에서 나온 우리만 보기 아까운 글들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세상 밖으로 흘려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학인은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쓴 특별한 글을 읽었더니 특별한 사람들이 쓴 평범한 글을 못 읽겠어요."

그렇다. 사는 이야기는 시시하지 않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집안의 노동력으로 성장기를 보낸 어머니의 서사, 치킨 다리는 아들 차지가 되었던 밥상, 공부 안 하면 배달이나 하고 살게 된다는 수근거림, 콜센터 노동자를 닦달하고 큰 소리부터 치고보는 버릇, 그래도 애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믿음 등등. 잘 들여다보면 일상에서 오가는 말과 행동은 가부장제와 능력주의를 승인하고 차별과 혐오를 미세먼지처럼 퍼뜨린다.

나의 글쓰기 책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도 썼다. "너도 나도 쓰고 말하고 듣고 생의 경험을 교환하다보면 사적인 고민은 공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일상에 먼지처럼 숨어 있는 억압의 기제와 해방의 잠재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할 능력은 없지만 비난할 능력은 있는 사람만을 양산하는 척박한 현실에서, 책과 글쓰기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 이해의 심층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동안 지면이 주어지지 않아서 한국사회 '발화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더 많은 이들이 시민기자가 되어 일상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상을 풀어내면 좋겠다. 흘러다니는 온갖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존엄을 해치는 말에 화를 내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좋은 삶을 만들어내는 삶의 수공예가가 많아지길 바란다.

나는 어디선가 좋은 글을 보면 눈이 번쩍 뜨여 말하고 있을 것이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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