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공화국 중심에서 '검사의 죄'를 묻다

[김성호의 독서만세 180] 윤재성의 <검사의 죄>

등록 2023.02.22 11:21수정 2023.02.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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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48년 <공산당선언>의 도입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고. 오랫동안 도모해온 공산주의가 아직 실체를 확립하진 못했으니 유령이라 적었다. 그러나 그들이 창조한 유령은 분명한 존재감을 갖고 전 유럽을 휩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기대를 한껏 담아 이들은 저 유명한 문장으로부터 공산당의 선언문을 써내려간 것이다.

2023년 한국에도 악령 하나가 있으니, 여러 언론은 그를 경계하며 '검찰공화국'이라 적었다. 검찰공화국 역시 헌법이며 어느 법규를 들춰봐도 그 실체를 알 수 없으나, 곳곳에서 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당선된 이래 검찰 출신 인사들이 여러 기관 수장을 차지하고, 기소와 공소유지 등 공명정대해야 마땅한 권한을 제 입맛에 맞게 다루니 비판이 나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여기 시의적절한 소설 한 편이 있다. 검찰의 핵심 구성원인 검사를 앞세워 오늘의 검찰조직, 나아가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려 하는 포부 큰 작품이다. 작가 윤재성은 <외로움 살해자>, <화곡>에 이어 벌써 세 편째 장편을 내놓은 이야기꾼으로, 정의와 법치에 대한 신작을 기획하였다 말한다. 제목하야 <검사의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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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죄> 책 표지 ⓒ 새움


35년 전 살인자, 검사가 되다

소설은 35년 전 어느 보육원에서 시작한다. 보육원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일어나 원장과 아이들 모두 열다섯이 숨진다. 생존자는 오직 한 명, 여섯 살 아이 순조뿐이다. 핵심 용의자인 순조에 대하여 윽박지르는 수사가 시작되려는 찰나, 어느 검사가 취조실에 들이닥친다. 그리고 더 이상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사건은 종료된다.

이야기는 시간을 가로질러 서울중앙지검으로 향한다. 순조는 여주지청에서 서울지검으로 자리를 옮긴 젊은 검사가 되어 있다. 비상한 기억력과 집중력을 무기로 법대입학부터 사법시험 합격, 검사 임용까지를 뚫어낸 것으로도 모자라 무지막지한 사건처리능력을 뽐내며 괴물이란 평가까지 받는다. 가족은커녕 이렇다 할 친구도 없지만 검찰 내에서 사회생활도 곧잘 해낼 만큼 사회성도 높다.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한 계기로 비롯된다. 순조의 집 앞까지 찾아와 한 검사가 숨을 거두는 것이다. 그 검사는 혓바닥이 잘린 채 죽어가고 순조에게 가로와 세로, 두 줄의 다잉 메시지를 남기고는 죽는다. 순조는 그 검사가 맡던 사건을 쫓다 잊고 싶은 제 과거와 마주한다.

무협지와 현실 사이, 검찰을 말하다


다분히 무협지스럽다는 인상이 드는 소설이다. 태생부터 감춰진 사연이 있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만큼 특출난 능력을 갖췄다. 소설 가운데 기연이라 할 연들이 우연처럼 다가서고 그 대립과 결말, 캐릭터의 묘사들에서도 오랜 무협지들에서 흔히 마주하는 흔적들이 역력하게 묻어난다. 매콤해서 기침이 절로 나는 음식을 마주할 때처럼 강하게 묻어나는 이 같은 특징들이 이 소설의 장점이며 단점으로 이어진다.

장점이라 한다면 읽는 동안 재미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우연에 기대어 이야기가 풀려가고 현실보다는 상상에 치우진 묘사가 넘실댈 때조차 장르소설을 읽는 듯 지루하지 않다.

그렇다고 온전히 상상이며 우연으로만 풀어가는 것도 아니어서 몇몇 대목에선 놀랄 만큼 현실과 유사한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고위공직자 별장 성접대 사건이며 대형 유흥업소와 수사기관의 결탁 문제, 여검사에 대한 성폭력 사건 등은 익히 수차례에 걸쳐 언론지면에 등장했던 사건들이 아닌가. 법을 사유화하는 인사비리와 무마청탁 등도 나름의 취재를 바탕으로 적절한 현실감을 성취한 듯 보인다. 작가는 이를 통해 검찰의 현실을 독자 앞에 생생하게 재현하려 시도한다.

2023년 한국을 배회하는 검찰공화국이란 유령

<검사의 죄>는 말 그대로 검사의 죄를 다룬다. '죄 지은 이가 타인의 죄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했다는, 또 '보다 사실적인 검사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각기 얼마간은 실현된 듯하다. 책에 등장한 많은 이야기는 이미 언론지상을 통해 오늘의 시민들에게 알려진 것들이다. 또한 나머지 이야기 중 얼마도 수사기관 종사자 등 알만한 이들은 풍문을 통해서라도 들어본 적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그 모두가 수많은 사건들에 휩쓸려 잊히는 동안 소설은 이들을 체로 거르듯 붙들어 한 작품 아래 모아두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읽고 나면 도대체 한국사회가, 또 오늘의 한국을 배회하는 검찰공화국이란 유령이 과연 이대로도 좋은가 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검사의 죄'를 다룬 식상한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하게 다가오는 건 한국 사회가 이 소설이 그린 것으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검사의 죄

윤재성 (지은이),
새움, 2023


#검사의 죄 #윤재성 #새움 #검사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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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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