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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지도 않고 말도 안 통하는 아이가 일으킨 변화

[책이 나왔습니다] 상담심리사가 쓴 반려동물 이야기 '개와 살기 시작했다'

등록 2023.02.26 15:59수정 2023.02.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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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다음 주면 책이 나오겠어요."

출판사서 보내온 카톡 한 줄에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책이지만, 오랫동안 품었던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여전히 긴장되고 설레는 일입니다. 이번 책은 집필이 끝났을 때 '시원'하기보다 '애틋'한 느낌이 들었기에 실물 책을 곧 만나본다는 소식 자체에 뭉클함마저 밀려왔습니다.


이런 느낌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 옆을 지키고 있는 저의 반려견 '은이'가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작은 아이가 제 삶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커서 도무지 혼자서만 담아둘 수가 없었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은이와의 추억들이 떠올랐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반려인이라면 모르지 않을 이 느낌들에 대해 소통할 시간이 왔다는 게 저를 들뜨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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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명체'로 살 때 삶은 보다 풍성해질 것이다. ⓒ 도서출판 날

 
그래서 출판사에서 만들어 준 책 소개 포스터를 지인들에게 돌리며 세 번째 책의 '개봉 임박' 소식을 알렸습니다. 제가 속한 몇몇 단톡방에 포스터를 공유하고, 친한 지인들에게 개인톡을 보냈습니다. 그리곤 '축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축하 메시지 외에 예상 밖의 질문들이 쏟아진 겁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 지면을 통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저의 세 번째 책 <개와 살기 시작했다>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오타 아니야? 개 한 명이 뭐야?"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이거였어요. 한 친구는 약간 호들갑스럽게 "주연아, 이거 완전 오타다. 얼른 고쳐 달라고 해"라고 전화까지 했더랬죠. 왜냐면 책 소개 포스터에 분명 이렇게 적혀 있거든요.

'4.5킬로그램의 작은 개 한 명이 내 삶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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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비인간동물도 모두 '명'으로 세면 우리가 보다 평등해지지 않을까. ⓒ 도서출판 날

 
책에도 이런 문장이 있는데 이건 오타가 아니라 일부러 이렇게 쓴 것입니다. 제 책의 추천사를 써주신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 작가의 저서 <말을 부수는 말>에 따르면, 요즘 동물을 세는 단위인 '마리'는 16세기 이전 동물을 '머리'로 세던 돼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요. '머리'로 무언가를 세는 건 그 대상을 물건처럼 대한다는 느낌이 강하죠.


그래서 사람에게 '두 당 얼마'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속된 표현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동물을 '마리'로 세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쓰면 비하하는 것이 되는 표현을 동물에겐 당연한 듯 쓰이고 있었던 거죠. 이라영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동물을 마리로 세는 것은 여전히 그들을 생명이 있는 한 존재로 보기보다 사물화해 바라보는 방식이다. 마리가 명이 될 때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달라진다. (<말을 부수는 말> 277쪽)
 
저는 이 문장에 뜨끔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의 개를 '아이'라 부르고 '은이 엄마'임을 자처하면서 저 역시 동물을 '마리'로 세고 있었으니까요. 은이가 제게 준 가장 큰 가르침 중 하나는 생명엔 위계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동물은 '마리'로 사람은 '명'으로 세는 것 자체가 위계를 드러내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마리' 대신 '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책에 이렇게 적은 후 일상에서도 '명'이라는 표현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모든 생명들과 조금 더 평등해진 것 같아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아요.

"상담심리사가 웬 반려동물 이야기야?"

그 다음 많이 들은 질문은 바로 이거였어요. 친한 친구들은 대놓고 "너 오지라퍼 아니야? 사람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 동물에 대한 책은 왜 썼어?"라고 살짝 놀리기도 했답니다.

맞습니다. 저는 상담심리사입니다. 저는 믿어요. 사람들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때, 그러니까 서로의 고유함을 존중하며 살아갈 때 우리 각자의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진정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고요. 그래서 저는 내담자분들이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때로는, 이런 것을 방해하는 사회적 구조나 편견을 바꿔보고자 목소리를 더해보기도 하고요.

그런데요. 저는 반려인이 된 후 우리가 사는 세상엔 인간 뿐 아니라 비인간 동물(사람도 동물이기에 '비인간 동물'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글의 간결함을 위해 뒤에서는 동물이라고 적었습니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매일 체험합니다.

사람이 다양하듯, 동물도 그렇다는 걸, 사람은 물론 동물도 자신의 본성을 존중받으면서 살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좋은 세상이 된다는 것을 숨 쉬듯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가장 약자일 수밖에 없는 동물이 존중받는다면, 그런 세상이야말로 인간에게도 더욱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상담심리사'이지만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동물도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이 되기를, 이를 통해 사람들도 더욱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이런 면에서 이 책이 자신과 타인의 고유함을 존중하도록 사람들을 돕는 '상담심리사'로서 저의 일과 잘 통한다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전작들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저의 첫 책이었던 <엄마로 태어난 여자가 없다>가 여성들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도록 돕고자 했다면 두 번째 책이었던 <이 선 넘지 말아줄래요?>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모든 이들이 스스로를 존중하며 사는 법에 대해 썼지요. 그리고 세 번째인 이 책은 사람을 넘어 동물들까지 포함한 존중과 평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돌아보면, 저 대책 없는 '오지라퍼'는 아닌 거 맞지요?

"좋은 생명체가 대체 뭐야?"

이건 책 소개 페이지에 있는 '좋은 사람을 너머 좋은 생명체가 되고픈 이들에게'라는 문구를 보고 철학을 전공한 한 친구가 보내온 메시지입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이 표현을 책에도 몇 차례 쓰긴 했는데 깊게 고민해보진 않았었거든요. 뒤늦게야 곰곰이 '좋은 생명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책에 쓴 이 표현은 사이 몽고메리의 책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책은 동물생태학자인 저자가 다양한 동물들과 교감한 순간을 적은 책이었는데요, 포유류 뿐 아니라 어류, 조류와도 교감하는 저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저도 은이와 이런 교감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래서 은이가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세계를 느껴보려 했어요. 은이처럼 마룻바닥에 납작 몸을 대고 누워도 보고, 현관 앞에 웅크리고 앉아도 보았죠. 하지만, 아무리 똑같은 자세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도 저는 도무지 은이의 세계를 느낄 수가 없었어요.

결국 저는 은이와 똑같이 느끼기를 포기했습니다. 대신, 우리가 다르다는 걸, 그러니까 은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다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이로 했어요. 제가 책에 쓴 '좋은 생명체'의 의미는 이런 거였던 것 같습니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다른 동물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겸손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요. 아마도 사이 몽고메리는 이런 겸손한 마음이 있었기에 동물들과 연결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내가 쓴 이 책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자!'

책이 나올 때마다 이렇게 다짐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이 다짐이 조금 더 간절한 것 같습니다. 책 뿐 아니라 은이와의 약속이 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은이와 살면서 만난 저의 소소하고 묵직한 고민들에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각자가 '좋은 생명체'로 살아가는 방법들을 찾아 보았으면 합니다.

그럴 때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존중받는 세상에 조금 더 가까워지리라, 인간 역시 더 살기 좋아지리라 믿습니다. <개와 살기 시작했다>가 그 여정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덧) 이 책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글을 써온 박은지, 이은혜 시민기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반려인의 세계' 글 보러 가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개와 살기 시작했다 - 반려동물과 살면 알게 되는 것들

송주연 (지은이),
날(도서출판), 2023


#개와살기시작했다 #동물권 #반려동물 #책 #비거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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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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