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스토킹 처벌법의 한계, 2차 가해와 반의사불벌죄의 모순

[TV 리뷰] JTBC <안방판사>

23.02.22 14:37최종업데이트23.02.22 14:37
원고료로 응원

JTBC <안방판사>의 한 장면. ⓒ JTBC

 
애정어린 관심과 고통을 주는 괴롭힘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2월 21일 방송된 JTBC 가상법정 예능 <안방판사>에서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화두가 된 '직장 내 괴롭힘'과 '스토킹'의 현실 사례에 대하여 조명했다.
 
이날의 의뢰인으로 등장한 4년 차 소방관 전병석씨는 2년 선배인 이민호씨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했다. 실제로는 절친한 선후배 사이지만, 병석씨는 민호씨의 잦은 호출과 집중적인 관심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민호씨는 위험한 소방관 업무의 특성상 후배를 생각하는 선배의 마음이라고 해명했다. 과연 선후배간의 애정과 직장내 괴롭힘의 경계는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소방관 선후배의 일상이 공개됐다. 피고소인인 선배 민호씨는 자신의 집보다 배송 시간이 빠르다는 이유로 고소인인 후배 병석씨에게 택배 셔틀을 시키는가 하면, 근무 시간중에도 수시로 호출을 거듭했다. 오후 근무 시작 전 휴식시간에는 갑작스럽게 민호씨가 병석씨에게 훈련을 통보하며 사다리차 조작과 체력 훈련을 1대 1로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병석씨는 휴일에 후배의 거듭된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굳이 민호씨의 집을 찾아가 못 먹는 석화를 억지로 권하는가 하면, 자신이 가져온 해물 재료 손질을 온통 병석씨에게 떠넘기고 본인은 남의 집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경악시켰다.
 
민호씨의 입장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 나이에 소방관이 된 민호씨는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후배가 처음이라 친해지고 싶었던 마음"을 밝혔다. 하지만 병석씨는 일주일에 1~2회 찾아오는 선배의 잦은 방문과 일방적인 관심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했다. 왜 단호하게 싫다는 의사표현을 하지 못 했냐는 질문에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고 고백했다.
 
고소인 측은 일반 회사보다 위계질서가 강한 소방관 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상하 관계를 이용한 선배의 강압적 행위와 휴식권 침해를 주장했고, 피고소인 측은 두 사람의 친분이 두텁고 후배의 자발성이 일부 있으므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변론 전략을 세웠다.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의 법적 정의는 무엇일까. 사업주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관계 우위를 이용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을 의미하며, 근로기준법에 따라 2019년부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됐다.
 
법이 시행된 지 불과 3년 만에 약 1만 5천여 건의 직장내 괴롭힘 신고가 쏟아졌다. 그런데 정작 실제 검찰로 송치되는 비율은 1%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가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형사처벌 규정은 없는 실정이다. 금지법 도입 이후에도 많은 피해자들이 신고해도 실익이 없거나 2차가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더구나 소방관같은 공무원들은 일반 회사같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보다 국가공무원법을 우선적으로 적용받는다. 국가공무원법에는 현재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된 규정은 없는 상황이라고.
 

JTBC <안방판사>의 한 장면. ⓒ JTBC

 
피고소인은 민호-병석씨의 관계를 괴롭힘으로 해석할 경우 자칫 모든 '친목행위'가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고소인 측은 업무를 빙자하여 지속적-반복적으로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선 요구를 하는 것은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군법무관 출신인 이지훈 변호사는 "선배로서 장난이거나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모든 가혹행위가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하며 "군대같으면 취식 강요 등은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징계를 받을 수 있고 심지어 형사처벌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소인 측 이언 변호사는 "군대와는 다르다. 두 사람은 직장과 사생활이 분리되어있는 만큼 사생활에서의 우위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편으로 이 변호사는 "개인적 관계와 구조적 관계 사이에서 모호한 게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경계"라고 설명했다.
 
직장 생활에서 종종 발생하는 후배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다거나 가벼운 신체접촉, 후배 혼자 고기를 굽게 시킨다면 이런 경우들은 과연 직장내 괴롭힘 조건에 해당할까. 변호사들의 의견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커피 심부름이 반복적이라면 문제있지만 업무의 일환이라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친근함의 표시로 툭 치거나 헤드록을 거는 것은 잘못하면 괴롭힘을 넘어 폭행죄까지 성립될 수 있다. 또한 직장에서의 상하 관계를 떠나 '관계의 우위'를 통하여 부하가 상사를 놀리거나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행위들도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사적 갈등이 아닌 '업무 관련성'과 연관된 문제인지도 직장내 괴롭힘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직장내 괴롭힘 발생시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했다는 신고가 나오면 고용주는 즉시 자체 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피해자는 근무장소를 변경하거나 유급휴가 등의 보호조치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가해자는 사실로 밝혀진다면 징계를 받아야 한다.
 
안방판사들의 판결문이 내려졌다. 민호씨의 행동은 직장내 괴롭힘보다는 '선배로서의 과한 애정'으로 인정되며 고소인 병석씨의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단 눈치껏 후배의 거절 시그널을 확인해서 행동하라는 제안도 덧붙였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선후배가 될 것을 약속했다.
 
스토킹처벌법, '반의사불벌죄' 한계 없애야
 

JTBC <안방판사>의 한 장면. ⓒ JTBC

 
'영혼을 파괴하는 범죄'로 불리우는 스토킹이 다음 주제로 등장했다. 최근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 신당역 지하철 역무원 살인사건 등으로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은 1999년에 처음 발의되었으나 무려 22년이나 지난 2021년에야 겨우 통과했다. 큰 사건과 피해자가 발생해야만 이슈가 되어 뒤늦게 법이 통과되는 현실에 모두가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첫주에만 무려 451건, 연간 1만 4천여 건에 이르는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스토킹에 해당하는 행위는 다양하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없이' '지속적으로 따라다니거나' '공포심과 불안감을 유발하는 행위'를 했다면 모두 스토킹으로 인정된다.
 
피해자에 대한 미행과 접근, 기다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연락, 원치않은 물건 전달의 반복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률적인 기준은 없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의사'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표시를 했는지 여부에 따라, 문제시 증거로 채택하여 스토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저지른 행위를 사랑으로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과 스토킹의 차이는 명료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공포와 불안'이라면 명백한 스토킹인 것이다.

스토킹 범죄는 어떤 관계에서 주로 발생하는가, 주로 모르는 사이나 전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피해자 성비는 여성이 80%, 남성이 20% 정도다. 여성 가해자 역시 흉기나 방화 등의 수단으로 언제든 상대에게 치명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만큼, 스토킹 범죄는 성별 차원이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로서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실제 스토킹 사례들은 섬뜩함을 자아낸다. 아이돌 연예인을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무단 가택침입까지 서슴지 않던 사생팬은 참다못한 피해자가 화를 내자 오히려 자신과 드디어 소통했다며 오히려 좋아했다고.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른 상간녀는, 병상에서 이혼을 거부하던 본처의 자녀들을 찾아가 "너네 엄마는 곧 죽을 거니까 빨리 이혼해주라고 해라"고 요구했다는 충격적인 일화도 있었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 전에는 이런 스토킹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피해자들이 고스란히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상황도 많았다.
 
스토킹 피해자는 어떤 보호를 받게 될까.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응급조치-긴급응급조치-감정조치 등으로 나뉜다. 피해자를 보호시설로 인도하거나 가해자의 물리적 접근이나 통신망을 이용한 접근을 금지하고 심하면 구치소나 유치장에 수감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스토킹 보호조치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의문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보호조치 과정에서 오히려 가해자를 더 자극하거나,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보호받지 못 하고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신중권 변호사는 과잉대처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경찰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며 대응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언 변호사는 "스토킹 처벌법은 합의되면 처벌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는 한계를 거론하며 "가해자는 처벌을 피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과정에서 추가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거나 감정이 격해지다보면 더 위험한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 반의사 불벌죄 규정을 삭제한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인 상황이라고.
 
노종언 변호사는 "스토킹은 지독한 자기애와 집착을 수반한 병적 상태"라고 정의하며 재범 위험성이 가장 높은 범죄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스토킹 범죄를 아직도 애정싸움이나 사적인 문제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는 인식이 남아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은 것이 스토킹 범죄의 결말이다. 현재 추상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스토킹 관련법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인 법해석을 통한 '예방적 조치'는 물론이고, 관련자에 대한 '정신적 치료'가 동반한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법조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안방판사 스토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