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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김치 그리고 약... 외로운 밥상, 위태로운 농촌

끼니 거르는 건 일쑤, 반찬은 사치... 옥천 노인들의 부실하고 쓸쓸한 '혼밥'

등록 2023.02.25 11:54수정 2023.02.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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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만 밥에 장 하나, 김치. 농촌 노인들의 흔한 밥상 풍경이다. ⓒ 월간 옥이네

 
물에 만 밥에 장 하나, 김치. 

농촌 노인들의 흔한 밥상 풍경이다. 누가 봐도 영양 불균형이 심각한 밥상이지만, 그걸 몰라서 이렇게 끼니를 때우는 걸까. 사실 초라한 찬 위엔 그보다 짙은 외로움이 깔려있는지 모른다. 

<월간 옥이네>는 홀로 살며 혼자 끼니를 챙겨야 하는 면 지역 노인들의 밥상을 살펴봤다. 더불어 함께 나누는 밥상을 실현하는 현장을 담는다. 바야흐로 '혼밥'의 시대, 그러나 여전히 '밥은 먹었냐'는 인사가 유효한 우리들의 세계에서 '함께 먹고 나누는 것'의 의미를 기록한다. 이 소박한 밥상을 나누는 일이 삶의 토대였음을 기억하며. 

#1
1월 17일 옥천읍 가화리에 사는 A(90)씨가 하루 동안 먹은 것
떡국 한 그릇과 물, 김치 조금, 그리고 혈압약과 당뇨약


A씨의 하루는 식사 준비로 시작된다. 오전 8시 즈음 이부자리를 벗어난 그는 냉장고를 열어 오늘 먹을 것을 준비한다. 그 나이대 혼자 사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A씨 역시 늘 맨밥에 국 하나 정도로 식단을 차려낸다.

오늘은 마침 설을 앞두고 마을 이장이 챙겨다준 떡국이 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활동하는 마을 이장은 가족이나 친지의 경제적 지원 없이 홀로 사는 A씨를 위해 월에 몇 번씩 반찬이나 국을 챙겨오는데, 오늘 식사가 조금이나마 명절 기분을 낼 수 있는 것도 그 덕이다.

"(오전)9시에 아침 먹고 점심은 안 먹어요. 차리기도 귀찮고 먹을 것도 없어. 평소에는 그냥 밥에 된장국, 미역국 끓여서 먹지. 반찬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데, 이장이 가져다 준 반찬이랑 먹기도 하고, 아니면 김치 놓고 먹어요. 점심을 안 먹으니 저녁은 조금 일찍 먹지, 한 4~5시쯤."
        
매일 혈압약과 당뇨약을 챙겨야 하는 그에게 이런 식단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균형 잡힌' 식사는 사치에 가까운 형편이다.

"영세민(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이라고 달에 28만 원 정도가 나와. 여기에 기초연금이 30만 원 나오고. 그런데 약값에 전기요금 같은 거 주고 나면 혼자 쓰기에도 바빠. 요즘처럼 추울 땐 기름도 넣어야 하는데 그러면 30, 40만 원씩이 한 번에 나가니까..."

아흔의 나이이지만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걷기, 버스 타기 등의 활동이 힘들지 않은 그이기에 제대로 된 밥상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그리고 그 마음은 혼자서 밥상에 앉는 날이 거듭될수록 체념에 가까워진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고, 누가 조금이라도 챙겨주면... 그래, 좋겠지요. 그런데 그럴 사람이 누가 있나요? 그런 거 속 시끄럽게 생각하느니 그냥 이게 편해."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점심을 건너 띈 그는 다시 저녁상을 준비한다. 아침에 먹다 남은 떡국이다. 

가스불 위에 올라간 냄비 속 떡국은 이미 불을 대로 불어 있다. 가스비 걱정에 그마저도 팔팔 끓이진 못하고 적당히 덥혀지면 알루미늄 소반으로 옮겨와 숟가락을 든다. 홀로 사는 노인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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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1인 노인 가구 상황은 특히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빈부격차 심화, 고령화로 인한 활동력 감소, 양질의 식재료에 대한 접근성 부족 등으로 먹거리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사진은 한 어르신의 약 봉지.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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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아침 먹고 점심은 안 먹어요. 차리기도 귀찮고 먹을 것도 없어." ⓒ 월간 옥이네

     
#2 
1월 12일 안내면 월외리에 사는 B(86)씨가 하루 동안 먹은 것
끓인 누룽지, 된장찌개, 김치, 그리고 당뇨약, 고지혈증약, 관절약


척추관협착증에 무릎이 좋지 않은 B씨. 그는 집 안에서도 지팡이를 짚어야 할 정도로 혼자서 움직이는 일이 버겁다. 나이가 드니 허리와 무릎의 통증이 온몸을 더 무겁게 짓눌러온다. 이런 상태는 해가 갈수록 심해져 그는 요즘 주로 생활하는 거실에서 부엌으로 몇 걸음 건너가는 것도 마냥 귀찮기만 하다.

"요즘은 배 안 고프면 안 먹어. 피곤하고 귀찮아. 우리 같은 시골 노인들 다 비슷햐. 어떻게 때마다 다 챙겨 먹어"
     
이날 그가 아침으로 먹은 것은 끓인 누룽지와 된장찌개. 누룽지 두어 숟갈을 덜어내 끓인 거라 양도 적다. 점심은 당연히 걸렀다. 그나마 B씨가 된장찌개 놓은 누룽지라도 먹을 수 있는 건 평일 오후 3시간 정도 집에 들르는 요양보호사 덕분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4등급인 그를 위해 밥이나 반찬 등의 식사 지원, 청소와 자잘한 심부름 등을 대신해준다.

B씨는 그렇게라도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주고 끼니 챙기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고맙다. 그래서 혼자 밥을 챙겨야 하는 시간이 더 외롭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2~3년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움직이는 게 힘드니 만사가 다 구찮고 하기 싫어. 안 먹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약 봉지가 가득 든 약국 봉투를 들고 그가 말한다. 안 먹고 싶다는 것이 약인지 밥인지 알 수 없지만, 무엇이든 먹어야 살아내기에 그는 또 어렵게 걸음을 부엌으로 옮긴다. 가스불에 먹다 남은 찌개 그릇을 다시 올리며 말한다. "예전에는 회관에 모여 같이 밥도 먹고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는데." 그가 조금 더 낮아진 목소리로 덧붙인다. "다른 사람들은 다 회관에 모였을랑가." 어두운 부엌, 적막한 공기, 그러나 어느 노인에겐 일상인 풍경 속에서 말이다.

#3  
1월 18일 안남면 연주리에 사는 C(89)씨가 하루 동안 먹은 것
곰국, 찐 밥, 김치, 그리고 혈압약


안남면 연주리에 사는 C씨의 냉동실은 도시에 사는 아들네가 챙겨다 준 식재료 봉지로 가득하다. C씨의 사정은 좀 나은 걸까?

"큰아들네가 곰국 가져다준 게 있어서 그거 데워 한 숟갈 먹었어, 김치랑. 엊그저께 해둔 밥 쪄서 말아 먹었지. 오늘 저녁? 같은 거지, 곰국에 김치."

사골로 만든 곰국이니 영양면에서는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소 그의 부실한 식단은 여느 홀몸노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 하나에 밥, 김치는 선택. 365일 거의 모든 밥상 풍경은 대동소이하다.

그가 주로 먹는 음식은 미역국. 마을 부녀회가 바자회에서 판매하는 미역을 사두는 것으로 C씨의 1년 치 국거리 준비가 끝난다. 가끔 이웃이 가져다준 호박을 넣고 국을 끓이기도 하니 별미도 있는 셈. 그렇지만 '균형 잡힌' 식단이 아닌 것은 이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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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하나에 밥, 김치는 선택. 365일 거의 모든 밥상 풍경은 대동소이하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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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2~3년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움직이는 게 힘드니 만사가 다 구찮고 하기 싫어. 안 먹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 월간 옥이네

 
2021년 남편이 세상을 뜨기 전까진 C씨 역시 소박하지만 알찬 밥상을 꾸렸다. 국은 기본에 반찬은 못해도 서너 가지, 때때로 고기와 생선도 상에 올랐으니 C씨가 "그때가 좋았다"고 회상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혼자 있으니 더운밥도 못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전기료를 아끼려 보온밥솥 취사가 완료되면 일단 전원을 끄고 그때그때 먹을 만큼 다시 밥을 쪄서 상에 올린다. 자발적인 절약이지만 때때로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남편 살아있을 적엔 삼시 뜨신 밥해서 반찬 갖춰놓고 먹었지. 그땐 시장도 자주 갔어. 혼자 살아보니 그때가 행복했던 거 같어...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들 다 그렇대. 국이면 국, 장이면 장, 그거 하나 놓고 먹는다고. 나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

외로운 밥상을 마주하는 게 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그에게 조금의 위로가 된다. 하지만 그만큼 함께 나누는 밥상에 대한 그리움도 깊어진다.

"남편이 국가유공자였어서, 보훈처에서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재가보훈실무관)이 와. 나 잘 지내나 들여다보고 말동무도 해주고 가끔 국, 반찬 같은 걸 갖다 주거든. 그러면 또 그걸로 한 며칠 먹는 겨. 그런데 혼자 먹는 게 뭐 맛있나. 나 같은 이들 많은데, 여럿이 모여 먹으면 끼니 챙기기도 수월코 밥맛도 더 좋지 않겠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사는 연주리 마을회관에서 대한노인회의 식사 지원 활동이 재개된다는 소식이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중단됐던 공동 식사가 부활하는 것인데, 이 역시 월 10회만 진행되는 점에서 한계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고, 함께 둘러앉아 먹는 밥상의 의미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에 있지 않음을 아는 C씨는 조금 마음이 들뜬다.

"내일(1월 19일)은 올해 처음 그 식당이 열리는 날이여. 내일은 집에서 점심 먹자마자 회관으로 가있을 거여. 나 만나러 올 거면 집으로 오지 말고 그리루 와."

[다음기사] 한달에 딱 10번, 이들이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는 날 https://omn.kr/22u3q

월간 옥이네 통권 68호 (2023년 2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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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옥천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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