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가 어머니 정정화 여사 품에 안긴 김자동 선생
김자동
'임시정부의 소년'은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당시 백범을 '아저씨'로 부르셨다지요. 백범은 회장님을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 이 몸의 아명은 김후동(金厚東)이었습니다. 백범은 절 '후동이'로, 어머니를 '후동어멈'이라 부르셨죠. 백범은 제 증조부를 선생으로 모셨으니 제 아버지도 동배로 여겼나 봅니다. 두 분이 형제처럼 지내셔서 남들이 백범을 '할아버지'로 부를 시기에 저만 '아저씨'라 불렀습니다. 이런 광영이 또 있겠습니까(김 회장의 부친은 성엄 김의한 선생, 모친은 정정화 여사다. 성엄의 부친, 즉 김 회장의 조부는 동농 김가진 선생이다).
- 백범과 '후동이'의 관계는 살가웠나요.
= 글쎄요. 자주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던 것 같아요. 임정 어른들이 다니던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오면 귀한 초콜릿을 사다 주시곤 했어요. 백범이 주신 초콜릿 맛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 윤봉길 의사와의 추억도 있나요.
= 윤 의사의 아들은 제 또래였습니다. 부인과 아들은 충남 예산 고향에 두고 윤 의사만 홀로 상하이에서 타국살이를 한 거죠. 그래서인지 윤 의사가 절 아끼셨습니다. 한 번은 고향의 가족들이 남편 먹으라고 예산에서 상하이까지 사과를 한 상자 보냈어요.
한 알씩 나눠 먹고 나머지는 홍커우공원에 좌판을 벌여 팔았죠. 상하이에서 사과는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윤 의사가 김영린에게 사과를 얼마에 팔라고 시키고서는 바로 옆에서 일본인과 '시시덕거리며' 얘길 나누더랍니다. 잡담이 아니라 정보 수집이었던 거죠. 얼마 지나지 않아 의거를 일으키셨습니다. 그게 1932년입니다(홍커우공원은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장소다). (주석 6)
주석
4> 김자동 회고록,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 푸른역사, 2018.
5> 앞의 책, 84쪽.
6> <'임정둥이' 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매일경제>, 2019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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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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