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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 소외되는 게 당연? 여기선 있을 수 없는 일"

옥천 '백살공주 공유부엌'과 '오다가다 쉼터'... 든든한 식사 함께 나누며 단단해지는 공동체

등록 2023.02.26 11:13수정 2023.02.2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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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혼자 사는 어르신 밥 걱정 뚝, 매일 '뷔페 잔치' 벌인 마을 https://omn.kr/22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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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백살공주 공유부엌에 모인 주민들 ⓒ 월간 옥이네

 
[군북면 대정리] 백살공주 공유부엌

"혼자서 먹을 땐 그냥 집에 있는 거 먹어. 시골 늙은이들 집에 뭐가 있겠어. 김치나 짠지 같은 거나 있으면 다행이지. 우리 같은 노인들은 뭘 사러 돌아다닐 힘도, 영양 생각해서 챙겨 먹을 여력도 부족하잖아. 그러니 마을 급식소에서 급식한다고 하면 다 나오지. 이상하게 돌아다닐 힘은 없어도 다 같이 모여서 먹는다고 하면 힘이 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도 다 나와서 같이 먹고 그런다니까. 뭘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다 함께 모여서 먹는 걸 더 중요하게 여겨." (김월성씨, 85세)

"다 같이 먹는다는 의미가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뭐니 뭐니 해도 마을 간에는 화합이 우선이니까. 모여서 안부하고 사람들 얼굴 보고 그런 게 화합 아니겠어요? 마을 사람들 모이면 입에 들어가는 거 보기만 해도 배부른 느낌이 나요. 둘러앉아 먹고 얘기하고 놀고 그런 재미가 내 삶의 최고 재미예요. 지금이야 코로나19 때문에 여기(공유부엌)에서 잘 안 해먹긴 하지만요, 전에는 여기에 사람이 북적북적했어요. 마을이 살아난 것 같고 좋더라고. 이렇게 문 열었다 하면 여럿이 모여서 커피도 마시고 그러잖아요." (강희용씨, 81세)

군북면 대정리, 자연마을 대촌과 와정이 더해져 옛 이름 방아실로 알려진 이곳에 2020년 '백살공주의 공유부엌'이 들어섰다. 이정심 부녀회장이 방아실로 귀촌한 첫해, 주민들과 힘을 합쳐 도전한 충북농업기술원의 농촌 어르신 복지실천 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 지원받은 5천만 원의 사업비로 마을 창고를 개조해 공유부엌으로 조성한 것이다.

"우리 마을은요, 마을 크기는 어마어마한데 집들이 골짝골짝 숨어있어요. 대부분이 자연환경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보니 새로 이주해오는 사람들도 없어 어른들은 사람 보기 힘들다고 하시죠. 땅은 넓고 집들은 떨어져 있으니 작은 경로당이 여러 개, 함께 모여 식사하기 어려운 구조예요. 집들이 낡고 좁아 오랜만에 자녀들이 와도 식사하고 가기 애매하다고 해야 할까요. 마음 편히 식사하고 갈 수 있으면서 평소에는 공동급식을 할 수 있도록 공유부엌을 조성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이정심 부녀회장)

마을 어르신들이 100살까지 건강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백살공주의 공유부엌'이라 이름을 붙였다. 식기와 집기를 비치하고, 식탁마다 가스버너를 설치해 방문객들이 편히 이용하고 치우도록 시설도 마련했다.

"공유부엌에서 어르신들의 끼니를 마련한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식사 당번이 정해졌어요. 골짝골짝 떨어져 있던 경로당에서 노인 일자리로 식사 준비하던 분들이 나서서 도움을 주셨고요. 마을 주민들은 감자나 시금치 같은 것을 십시일반 나누어주셨죠. 저는 고기나 생선처럼 필요한 것들을 사다 날랐고요. 그렇게 풍성한 식단이 마련됐어요." (대정리 이정심 부녀회장)


공유부엌의 필요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쉴 틈 없이 바쁜 농번기에는 식사 준비와 농사일을 병행하기 어렵고, 이전부터 대가 없이 몇몇 사람이 계속해서 노동해야만 하는 구조가 이정심 부녀회장의 눈에 밟혔던 것. 마을 어른들의 한 끼를 든든하게 마련하자는 취지에 이런 문제의식이 더해져 마을 어른들은 무료로, 식당을 찾는 이들에게는 5천 원씩 기금을 받아 뷔페 형식으로 운영을 결정했다.

함께 먹을수록 더 가까이 보이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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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백살공주 공유부엌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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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백살공주 공유부엌 내부 ⓒ 월간 옥이네

 
"운영 당시에는 하루에 40~50여 분이 오셨죠.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일하거나 관광객이 오기도 하고요. 주변에 식당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백반을 파는 곳은 거의 없거든요. 처음에는 사업비와 마을 기금을 조금씩 들여서 식재료를 마련했는데, 일반 손님들이 오시다 보니 재료비가 얼추 갖춰지는 구조였죠. 여러 곳에 흩어져 먹던 식사를 한 군데 모여서 하는 것만으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거죠." (이정심 부녀회장)

한 공간에 어르신이 모인 김에 더 많은 활동을 해보자는 의견이 모여 휴대전화 사용법을 알려드리거나 공유부엌 안쪽에서 영화를 보고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했다. 이렇게 마련된 백살공주의 공유부엌은 2020년 농번기에 맞춰 2주간 활발히 운영되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강화되며 운영을 중단한 상황이다. 현재는 마을 주민의 사랑방이자 마을 회의 장소 등으로 이용된다.

"공동급식을 하다 보니 한마을에 살면서도 마주칠 수 없던 주민이 안부를 묻게 되고, 여러 사람이 다정히 지내며 마을에도 활기가 돌았어요. 농민분들도 끼니 걱정에서 어느 정돈 해방되셨고요. 그런데 다시 운영하려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어르신들이 다니기 험한 우리 마을에 가장 시급하게 논의돼야 할 것은 바로 순환버스죠." (이정심 부녀회장)

대부분의 집이 산골짜기에 위치해 어르신들이 공유부엌까지 도보로 오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금과 같은 겨울철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레저 활동을 위해 방아실을 찾는 외부인이 많은 만큼 차에 제트스키나 배를 매달고 험하게 운전하는 차량이 많아 노인이 다니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다.

"마을 어른들께 든든한 한 끼를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공유부엌을 열었고, 이런 경험이 주민들의 눈에 새로운 문제들을 보이게끔 한 거죠. 그렇게 서로의 불편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고요.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누군가의 눈에는 간단한 문제처럼 보일지라도 실은 그 안에 마을의 여러 문제가 얽혀있기도 하거든요. 마을마다 이런 사정은 모두 다를 테고요. 공동급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유기적인 문제들을 마을 안에서 논의하고 마을 상황에 맞게 해결하는 지원이 중요할 것 같아요." (이정심 부녀회장)

[동이면 석화리] 오다가다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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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동이면 석화리 주민들 ⓒ 월간 옥이네

 
"우리 마을은 평소 마을회관에서 점심이 아니라 저녁을 먹어요.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일하다가 들어와서 같이 저녁 먹고 집으로 돌아가서 쉴 수 있잖아요. 점심을 먹고 나가다가도 남아서 뒷정리하는 사람에게 미안해지고, 일단 부담이 가잖아요. 마음 편하게 둘러앉아 먹는 게 사람들이 더 많이 올 테고 좋지요. 우리한텐 점심-저녁이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김용순씨, 81세)

"혼자 먹으면 뭘 놓고 먹겠어요. 다른 마을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마을에는 식재료 파는 트럭도 잘 안 들어오더라고. 와봤자 명절 근처에나 두부, 콩나물 이런 거 팔러 오는 사람이나 좀 있을까. 그러니 혼자 드시면 뭘 든든히 먹을 수가 있겠어요. 먹는 걸로 보나 심적으로 보나 모여서 먹는 게 제일 낫지요." (박민숙씨, 71세)

2019~2021년 시행된 옥천군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동이면 석화리 마을 창고를 개조한 공동급식소 '오다가다 쉼터'가 2021년 12월 문을 열었다.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 전에 마을 주민들이 논의한 거죠. 우리 마을 화합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커다란 도화지에 그림으로 그려보자고요. 그때 마을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공동급식소였어요. 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비 반 정도를 사용한 셈이니 모두의 동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죠." (홍연희 전 부녀회장)

그 이름처럼 친숙한 이곳은 석화리 자연마을 양지말과 음지말을 잇는 굴다리 바로 옆에 만들어져 두 마을의 화합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밥 먹는 자리가 꽤 있었거든요. 그때마다 마땅한 공간이 없으니 한겨울에도 천막 치고 손을 후후 불어가며 야외에서 음식을 하곤 했어요. 우리 두 마을이 모일 수 있고, 잔치도 하며 안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이었죠. 둘러앉아 밥 먹고 함께 웃는 그 자체가 바로 마을의 화합이라고 생각한 거죠. 실제로 이 공간이 양지말과 음지말을 잇는 중간에 있어 마을 화합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석화리 임덕현 이장)

오다가다 쉼터는 마을 주민 80여 명이 모여 잔치를 하고, 노래자랑도 하며 밥을 나눠먹는 공간이 됐다. 지난해에는 약 10회 정도 공동급식과 반찬 나눔을 진행했고,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강화돼 함께 식사할 수 없게 됐을 때는 반찬과 도시락 나눔을 위한 조리 공간으로 활용됐다.

"버섯이며 파, 호박 같은 상시 필요한 식재료는 마을 주민들이 철마다 조금씩 내놓았기 때문에 부담이 적었어요. 농촌활력센터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고기나 생선 같은 주재료는 마을 기금으로 장을 봐서 마련했고요. 우리 마을은 매월 1일에 정기회의를 열어 수시로 대소사를 나누는데, 이때 반찬은 어떻게 할지, 또 수량은 어떻게 할지, 필요한 집기는 무엇인지 함께 논의해요. 마을 어른께 식사를 대접하고, 함께 먹는 자리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석화리 임일재 전 이장)

마을 사정에 맞는 지속 가능한 공동급식 체계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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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동이면 석화리 오다가다 쉼터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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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동이면 석화리 오다가다 쉼터 내부 ⓒ 월간 옥이네

 
"우리 마을 공동급식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이유라면 세 가지를 들 수 있지요. 4번 국도가 생기면서 마을이 갈라져 잘 볼 수 없던 두 마을 어르신들이 안부를 확인하는 중요한 자리라는 것. 귀촌인과 선주민이 반반으로 구성된 우리 마을의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라는 것. 그리고 그런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주민 모두가 인지하고 의욕을 갖고 참여하며 호응한다는 것."(임덕현 이장)

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2023년에는 매월 2~3회 이상 공동급식을 운영하고, 반찬·도시락 나눔 역시 월 2회로 횟수를 늘려 규칙적으로 운영할 계획을 논의 중이다. 2월 5일 대보름을 기념하는 올해 첫 공동급식을 위한 식재료가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하니, 주민들의 의욕이 돋보인다. 식단 역시 마을 어른들의 입맛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할 예정이다.

"일단 어른들이 행복해하시잖아요. 우리 마을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신 분들인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소외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점차 고령화돼 가는 마을에서 어른들 식탁이 부실해지고 외로워진다는 건, 결국 우리 마을이 외로워지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임일재 전 이장)

공동급식 횟수를 늘리고, 자주 이 공간에 모여 건강하고 든든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석화리 주민 역시 공동급식 기금을 마련하거나 공동급식 순번제 등 다양한 방법을 구상·논의 중이다.

"공동급식이 꾸준히 이뤄지기 위한 마을 체계를 구상해보는 거죠. 일단 올해부터 농약병과 폐지를 수거해서 되파는 방식으로 공동급식 기금 마련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민들 모두가 바빠 어르신들을 챙기기 어렵고, 끼니 준비하기 벅찬 농번기에는 공동급식을 확대할 계획도 있고요. 공동급식이 마을 돌봄과 화합을 동시에 실현할 방안인 만큼 실질적으로 체계를 마련할 수 있도록 고민해봐야지요." (석화리 임덕현 이장)

월간옥이네 통권 68호(2023년 2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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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부엌 #옥천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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