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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극'에서 시작된 밴드, 리더가 된 음반가게 사장

[명반, 다시 읽기] 언니네 이발관 정규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

23.04.16 11:30최종업데이트23.04.1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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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1990년대 대중가요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언니네 이발관 정규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 앨범 이미지 ⓒ 킹 레코드

 
'인디'(Indie)는 본래 거대 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립'이라는 의미이지만, 그럼에도 '인디 음악', 특히 '인디 록'이라고 하면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다. 감히 의견을 내보자면 기성 주류 음악 스타일에 반하는 성향에서 나오는 신선함과 대중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한 자세에서 비롯되는 비범함 정도 아닐까.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1996년 데뷔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들으면 떠오르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화려하지 않고 소탈한 연주, 산뜻한 멜로디와 얼핏 무기력하게도 들리는 보컬 이석원의 매력적인 부조화는 비주류 정신을 내뿜는다. 마치 세상 한가운데 남들과 섞이기를 거부하는 별종, 우리가 소위 인디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원형에 가깝다. 

1집 앨범의 다섯 번째 트랙 '생일기분'의 가사가 특히 그렇다. 축하해 주는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스무 번째 생일을 보낸 화자의 기분은 행복하기는커녕 우중충하기 짝이 없다. 명확한 이유도, 원인도 없는 우울한 정서. 그러나 이것은 꽤 많은 젊은이들에게 공감대를 자아냈다. 획일적인 규범을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작은 반항심과도 연결된다.

범상치 않았던 시작, 악기 다룰 줄 몰랐던 3인조

사실 밴드 언니네이발관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이석원이 PC통신 서비스 하이텔에서 활동하며 현직 음악인들과 거침없는 논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꽤 유명한 일화다. PC통신에서 모던 록 소모임을 만든 그는 성인영화 비디오 제목을 따 자신이 리더인 가상의 밴드 언니네이발관을 창시했고, 이 '사기극'은 이석원이 KBS 라디오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출연하면서 졸지에 전파까지 타버렸다. 류한길과 류기덕이 각각 키보디스트와 베이시스트로 동참하면서 악기 연주 하나 할 줄도 모르는 3인조가 만들어졌다.

일련의 촌극이 역사가 된 것은 노이즈가든 덕분이었다. 당시 친분이 있던 밴드 노이즈가든의 리더 윤병주의 모습을 보고 '가짜' 밴드를 '진짜'로 만들고자 결심한 이석원은 유철상을 팔이 길다는 이유로 드러머로 데려오면서 밴드 구성을 완성했다.
 
노이즈가든 윤병주의 특훈은 오합지졸 멤버들을 빠르게 성장시켰다. 합숙을 통한 연습으로 멤버들은 비약적으로 실력이 발달했고 어느덧 그럴듯한 진짜 밴드가 되어 있었다. 이석원은 세 멤버를 데리고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다시 출연해 '로랜드 고릴라'와 훗날 '우스운 오후'가 되는 'Funny Afternoon'을 선보이며 금의환향을 완수했다. 여기에 기타리스트 정대욱이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며 언니네이발관은 5인조로 데뷔하게 된다. 

때로는 모호하고, 가끔은 추상적인 가사 사이 직설적인 이야기를 펼치는 '로랜드 고릴라'는 이러한 독보적인 언니네이발관의 서사와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내가 처음 너를 봤을 때/ 네가 하는 일이라곤 남의 흉내 내는 것."

자작곡 대신 커버로 레퍼토리를 채우는 다른 팀들에 대한 이석원의 일갈이다. 하지만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PC통신에 접속해 키보드로 싸우던 음반 가게 사장은 이제 진짜 음악으로 말하는 음악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열등감으로 시작했지만... 정겹게 솔직한 밴드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한 언니네이발관이 1집 '보여줄 순 없겠지'를 부르는 장면 ⓒ KBS

 
그럼에도 어느 하나 '척'이 없다는 점이 <비둘기는 하늘의 쥐>가 가진 최대 매력이다. 부족했던 연주와 가창 모두 별다른 포장 없이 날것으로 드러나며 언어는 종종 불분명하긴 하나 결코 장황하지 않다.

'산책 끝 추격전'은 6분 중반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간결한 구성 덕에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오고, 빙빙 돌리는 대신 곧바로 "미안해"라는 말을 건네는 '동경'은 아무리 세련된 은유도 이기지 못하는 소탈함의 미학을 드러낸다. 죽이고 싶은 누군가의 정체를 거리낌 없이 자신이라 고백하는 순간 '미움의 제국'의 섬뜩함은 퉁명스러운 자기 연민이 된다. 일종의 열등감으로 시작한 밴드의 모순적인, 그래서 더 정겨운 솔직함이다.
 
데뷔 앨범의 성공에도 언니네이발관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멤버들이 각자의 길로 떠난 후 이석원이 맡은 애니메이션 음악 프로젝트는 취소되었고, 1998년 발매한 2집 <후일담>은 재평가를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시 상업적 기쁨을 맛본 3집 <꿈의 팝송>부터 수차례 연기되었던 마지막 작품 <홀로 있는 사람들>까지 이석원은 개인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여러 고통을 경험해야 했고, 뮤지션으로도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세월 동안 언니네이발관이 뿌렸던 씨앗은 한국 인디 록의 토양을 일궈냈고, 오늘날 <비둘기는 하늘의 쥐>는 국내 첫 기타 팝 앨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산책 끝 추격전'에서 이석원은 나지막한 넋두리를 내뱉는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주인공이 아닌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머나먼 예지몽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얄미운 기만이었던 셈이다.
언니네이발관 명반다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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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자 한성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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