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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논문 표절' 의혹에 침묵하는 국민대, 그 속내

[김건희 논문 사태의 과제들 ①] 연구윤리 신뢰 떨어뜨린 국민대 연구윤리위의 결정

등록 2023.03.01 11:11수정 2023.03.0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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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6일,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 14개 교수·학술단체가 모인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의혹 검증을 위한 범학계 국민검증단’ 관계자들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보고회를 열어 김건희 여사의 논문에 대해 “내용과 문장, 개념과 아이디어 등 모든 면에서 광범위하게 표절이 이루어졌다”고 검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2022년 9월 6일 국민대학교의 최종판정을 전면 반박하는 국민검증단의 국민검증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건희씨의 논문이 단순한 표절을 넘어 점집 홈페이지와 해피 캠퍼스의 내용까지 짜깁기 한 것을 볼 때 대리 작성까지도 의심케 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관련 기사: 국민대 동문이 본 김건희 논문 검증... 참 무책임하다 https://omn.kr/20ryg ).

이에 대해 국민대 측의 재반박을 기대했으나, 지금까지 한 마디의 유감 표명도 없이 묵묵부답이다. 자신들은 연장까지 해가면서 5개월 이상 소요한 조사를 겨우 4주 만에 마친 단체가 기자회견을 했는데, 국민대 측은 왜 대놓고 반박하지 못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검증단은 김건희씨의 논문을 검증함에 있어서 무리한 해석을 동원해 표절이라고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대의 3쪽짜리 최종 판정문에서, 소위 '봐주기'를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을 제외하고 거의 유일한 객관적 자료라고 할 만한 것은 카피킬러를 돌려 얻은 '표절률 7~17%'라는 수치다. 

그에 비해 국민검증단은 표절과 복붙(복사+붙여넣기)의 거의 확실한 증거와 출처들을 참여 교수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찾아냈다. 90쪽에 가까운 국민검증 발표문의 문장 대부분이 누구의 논문을, 어느 점집의 홈페이지 글을, 모 회사의 사업계획서를 출처 인용 없이 따왔다는 식으로 열거했다.

이건 논리와 논리가 맞붙은 게 아니고 사실이냐 아니냐의 다툼이다. 즉, 국민대가 이를 반박하려면 국민검증단 발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거나 상대 주장이 오해라는 증거를 내놔야 하는데, 그것을 할 수가 없으니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대 당국 못지않게 큰 연구윤리위의 책임

국민대는 관련해 변명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포기했다. 나는 이것을 국민검증에 대한 국민대 측의 백기투항이자, 사실상 검증 실패를 인정한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로써 김건희씨 논문의 정체가 드러났다고 본다. 물론 의심스러운 학위로 얻은 과잉 이득을 인정하지 않는 김건희씨, 또 명백히 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 증거들을 간 크게 외면하는 국민대학교 측의 처신이 매우 불쾌한 것도 사실이다. 내가 속한 국민대 동문 비대위는 학교 측과 김건희씨에게 책임은 계속 묻되, 향후 활동은 국민대 자체 논문검증의 전모를 밝혀 비슷한 사태를 방지하는 데 힘쓸 것이다.

앞서 김건희씨 논문 사태에 대한 국민대 학교당국의 태도와 판단은 충분히 예상이 되었다. 그래도 느긋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2020년대에 이르러 우리 사회가 확립해 놓은 연구윤리 준칙과 담당자들의 윤리 의식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권력을 누가 잡았는지에 상관없이 자체의 운용 원리와 힘으로 작동하는 독립성 말이다.

학계의 연구윤리 수준은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성장과 비례하여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연구윤리 규정을 조금씩 수정하고 신설하면서 이만큼 발전시켜왔다. 한국 사회가 박사학위를 준 대학이 어디냐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박사라고 인정하듯이, 윤리위 역시 어떤 기관이 판정하느냐에 따라 공정성과 전문성에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거대한 구멍을 낸 것이 국민대 윤리위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전국의 대학과 학회에 속한 연구윤리 단체들은, 대한민국 연구윤리를 저잣거리 수준으로 끌어내린 국민대 윤리위의 이번 배신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논문검증 참사를 방관한 국민대 교수들에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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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1월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주한 외교단을 위한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연구윤리 위반 여부에 대한 판정 결과와 관련하여 해당 대학 연구윤리위원회의 판단은 항상 존중받아 왔습니다."

이 말은 국민대 임홍재 총장이, 최종 판정에 반발한 교수들의 집단행동을 저지하고자 발송한 메일에 쓴 말이다. 뻔뻔하지만 임 총장이 말은 맞게 했다. 윤리위들의 많은 판정들이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은 그것이 외부의 압력을 견뎌낸 결과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이제 과거의 일이 돼 버렸다. 국민대 윤리위가 대한민국 최초로 연구윤리위의 신뢰에 재를 뿌렸다고 볼 수 있다. 논문의 불량 여부를 검사하는 연구윤리위원회에도 불량기관이 존재 할 수 있다는 불신의 재다.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 뿐 아니라 타 윤리위도 권력자의 논문 검증사태에서 흔들릴 수도 있음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국민대 윤리위가 총대를 메자, 김건희씨의 논문을 게재했던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 연구윤리위원회도 검증 결론을 이렇게 냈다. "논의된 두 편의 논문에 대하여... 국민대학교 연구윤리위원회의 재조사 검증 결과를 인용한다"고 말이다. 조사도 않고 '국민대 판정에 갈음한다'니, 윤리위들이 윤리 없이 굴러가는 셈이다. 이 정도라면 가칭 '전국 대학 및 학회, 연구자단체의 연구윤리위원회와 진실성위원회 대표자회의'라도 소집해 땅에 떨어진 윤리위의 신뢰를 재고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국민대가 2021년 논문 검증을 거부하며 시간을 끌 때와 2022년 논문에 면죄부를 준 최종 판정을 내린 두 차례 중대한 국면에서, 일부 교수들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국민대 교수회 투표가 두 번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절반을 넘지 못해 끝내 의견으로 채택되지 못하면서, 오히려 윤리위와 학교 측 횡포에 면죄부를 준 셈이 되었다. 당시 투표 결과로 볼 때 교수들 중 절반 이상이 '김건희 논문 검증은 학교와 윤리위의 소관'이라면서 논문검증 과정과 결과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을 반대하였다.

교수들의 주된 업무에는 일상적인 연구 활동과 논문작성,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문 작성법과 이에 따른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 포함된다. 또한 논문작성과 학위 수여는 대학이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그러나 교수들의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증 권한은 윤리위와 학교당국에만 있으니 다른 이들은 판단을 기다리고 존중해야만 한다는 이야기인가?

오는 3월이면 개학이다. 제자들이 혹 "김건희씨 논문검증을 국민대가 잘한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학교 같은 큰 조직에는 각자 할일이 정해져 있다. 학교를 흔들지 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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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8일, 국민대가 표절의혹을 받고 있는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서울 성북구 국민대에서 국민대 민주동문회, 국민대 동문 비대위, 숙명 민주동우회 회원들이 규탄 시위를 벌이는 모습. ⓒ 권우성

 
사안을 좀 더 신중히 지켜보자는 보수적 입장을 가지더라도, 역사적으로 합의된 성과만큼은 후퇴하지 않도록 버티는 마지노선의 역할을 교수들이 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지난 1년 6개월 동안 주저함과 꼼수, 면죄부 판정으로 이어진 국민대 윤리위의 과정을 방관한 국민대 교수사회 또한 공동 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학내에서 양심을 세우기 위한 일부 교수님들의 노력에 경외를 표하는 것과는 별도로, 교수회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국민대 교수들이 김건희씨 논문에 대한 부실검증을 수습할 수 있는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 국민대 교수들은 본교 윤리위원장을 비롯한 윤리위원, 김건희 논문을 직접 심사 지도한 교수들의 책임을 엄중히 따져야 한다. 고장나버린 국민대 연구윤리 시스템의 재생은 여기부터 시작이다. 이후, 만신창이가 된 국민대 논문 지도와 학위수여, 사후 검증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을 논할 필요가 있다.

전국의 교수들은 2022년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정했다. 이는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두 번째로 꼽힌 것은 '욕개미창(欲蓋彌彰)'으로, 이는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이다. 마치 국민대 측에 보내는 충고 같지 않은가.

'김건희 논문 사태의 과제들' 2편(링크)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준홍씨는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김건희논문 #국민대 #연구윤리 #김건희숙대논문 #논문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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