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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처럼 사는 부, 백인에 보복하는 친구... 흑인의 삶 이해하다

토니 모리슨 <솔로몬의 노래>를 읽고

등록 2023.02.25 20:59수정 2023.02.2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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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1931년~2019년)은 인종과 성을 초월하여 폭 넓은 독자층에게 인정 받은 작가이다. 흑인의 비극적인 삶을 여러 기법을 활용하여 다각도로 드러낸 동시에 비극에 함몰되지 않고 흑인의 인간적 삶과 사랑을 탁월하게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편집자로 일하면서 그녀는 흑인과 여성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11권의 소설을 발표한다. 세 번째 소설인 <솔로몬의 노래>(문학동네, 2021)는 노예였던 과거를 잊고 자신의 본래 모 습을 찾아 나서는 흑인 남성 이야기를 다룬다. 1977년에 출간하자마자 문단과 대중 모두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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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모리슨 <솔로몬의 노래> ⓒ 문학동네

  
<솔로몬의 노래>는 흑인 노예 출신인 메이컨 데드 3대의 삶과 죽음을 담고 있다. 메이컨 데드 1세는 노예 해방이후 남부에서 자기만의 농장을 가지려다 백인에게 죽임을 당한다. 메이컨 데드 2세는 북부로 건너와 갖은 고생 끝에 임대업으로 큰 부를 얻고 흑인 의사의 딸과 결혼해 성공한 삶을 산다. 메이컨 데드 3세는 밀크맨으로 불리며, 아버지가 이룬 부와 명예 속에 서 부러울 것 없이 살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는 고모 파일러트를 통해 태어나기 전부터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과 애정 없이 죽음 상태로 관계를 이어온 부모님의 과거를 알고 난 후 방황한다. 연인 헤이가에게 살해 협박을 당하고, 흑인 결사단에 소속된 친한 친구 기타와는 인종차별에 대한 입장 차이로 설전을 벌인다. 밀크맨은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다며 남부로 향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고모의 삶의 흔적을 찾는다.

소설은 밀크맨의 성장을 통하여 흑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복원한다. 그는 백인처럼 사는 아버지와 백인에게 보복하는 기타 사이에서 흑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둘지 고민한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남부, 할아버지 고향으로 갔을 때 그는 사람들에게 큰 환대를 받으며 당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기뻐한다.

밀크맨은 여정 중에 우연히 듣게 된 한 노래가 증조할아버지 솔로몬의 삶이 담긴 곡이며 고모가 불렀던 블루스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밀크맨은 조상의 노래를 통하여 가족의 역사와 전통을 발견하고 불화했던 가족과 공감하기 어려웠던 흑인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가 삶을 왜곡하면서까지 재산을 모으려고 했던 이유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큰 상실감"(p.470)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데드 가의 운명을 통하여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비상'이라고 말한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흑인 결사단의 일원인 스미스는 파란 날개를 단 채 병원 지붕에서 몸을 던지고 동시에 밀크맨이 태어난다. 이는 마지막 장면과 연결되어 죽음과 비상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던 밀크맨이 새로운 흑인 정체성을 인식하고 정신적인 성장을 했지만 흑인을 향한 테러가 만연한 현실 앞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대신에 그는 백인을 향한 증오가 같은 흑인에게까지 총을 겨누게 만드는 끔찍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살의를 품은 형제의 팔"을 껴안은 채 비상한다.


"공기에 몸을 맡기면 공기를 탈 수 있"(p.526)는 사실을 자신의 조상인 솔로몬(샬리마)에게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밀크맨은 흑인 정체성 안에서 이름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현실을 이끌어낼 다음 세대를 향해 날개짓을 한 것이 아닐까.

한 인간의 성장과 의미 있는 비상은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다. 밀크맨은 파일러트의 도움으로 낙태의 위험에서 벗어나 생명을 건진다. 그의 부모는 왜곡되고 불안한 모습이었지만 각자의 방 식대로 그에게 애정을 준다. 맹목적이고 과격한 헤이가의 사랑과 극단을 오가는 기타의 우정도 밀크맨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이처럼 작가는 고통과 죽음 가운데서도 사랑을 주고 받는 인간성을 놓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는 건 궁극적으로 사랑"임을 강조한다. 역자도 작가가 "박해와 설움의 역사를 고스란히 시인하면서도 그 역사 인식이 증오나 피해의식 으로 귀결되지 않고 언제나 한 단계 넘어선 깨달음"(p.532)을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솔로몬의 노래>는 1931년 대공황 직후부터 1963년 민권운동 시작 전까지 참혹했던 흑인 인권 현실을 직시하며 흑인 역사와 정체성을 중심으로 흑인의 미래(구원)을 제시한 작품이다. 작가는 백인처럼 되기 위해 살 것인가 백인을 증오하며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흑인으로서 비상하겠다 대답한다.

"진득한 사랑 타령" 또는 "낭만성"(p.533)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당시 현실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인식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현재도 심각한 인종차별 문제까지 새로운 통찰을 준다. 소설의 주제가 압축적으로 묘사된 첫 장면을 제외하고는 3대 걸쳐 다양한 인물의 서사를 통해 흑인의 역사와 현실을 이해하게 된다.

남부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가족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밀크맨의 모습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참담한 현실을 방대 한 서사와 아름다운 문장으로 구사한 작품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솔로몬의 노래

토니 모리슨 (지은이), 김선형 (옮긴이),
문학동네, 2020


#토니모리슨 #솔로몬의노래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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