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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등대지기가 목격한 가장 멋있는 풍경

[인터뷰] 28년차 항로표지관리원 손한일씨

등록 2023.02.27 16:33수정 2023.02.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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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등대지기 손한일씨가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 조찬현

 
얼어 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 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작사 미상의 등대지기 노랫말이다.

"등대지기 노랫말은 슬픈 단어들을 다 모아놓은 것 같아요. 고독도 있고, 외로움도 있고, 그리움도 있고... 제 삶이 그 노래에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오동도 등대지기(항로표지관리원) 손한일(53)씨, 그는 1997년 여수지방해양수산청에 입사한 등대지기 28년 차다.

여수 바다, 243기 항로 표지 모니터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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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손한일씨는 오동도 등대를 관리하고 지키며 243기의 항로 표지를 모니터링한다. ⓒ 조찬현

 
21일 오동도 등대에서 근무 중인 등대지기 손씨를 만났다. 그의 임무는 오동도 등대를 관리하고 지키며 243기의 항로 표지를 모니터링한다. 또한, 야간에 항해하는 선박이 사고 없이 운항하며 항구에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바다 지킴이인 등대지기의 삶은 우리가 아는 낭만적인 감상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였다. 늘 외로움을 안고 산다는 그의 근무지인 오동도 등대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듯했다. 오동도를 관광하며 보았던 등대의 멋진 풍경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 하루 몇 시간 근무합니까?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을 합니다. 야간 근무조와 12시간 맞교대를 합니다. 한 사람은 휴무 중이고, 세 명이 교대로 근무합니다. 맞교대하는 게 좀 힘들긴 하지만 여기 울타리 안에 숙소가 있으니까 휴식 때는 편하게 쉴 수가 있습니다."

- 오면서 보니까 오동도 참 멋지던데요, 여기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아요.
"그렇긴 하죠, 처음에는 좋았죠. 근데 오래 근무하다 보니 감성이 둔해진 것 같습니다. 1997년에 입사를 해서 올해 28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 가족과 떨어져 산 세월이 많아 서로 서먹서먹하겠어요.
"자녀들과 사이에서 오는 갈등 같은 거 있잖아요. 식구들하고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보니 뭐랄까 갈등이 생기면, 그걸 해결하는 과정이 상당히 오래 걸리더라고요. 결혼 생활 20년이 넘었지만, 집사람에 대해서 제가 알고 있는 게 도대체 뭔가 싶을 때도 있고요."

- 주로 하는 임무는.
"여수지방해양수산청에서 관리하는 항로 표지가 있거든요. 243기 정도 되는데 여기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면서 그 상황에 맞게 대처를 하는 겁니다. 항로 표지라고 하는데, 그 안에 무인등대, 방파제등대 또 섬에 있는 등대들 그리고 여수광양만에 있는 등 부표들을 비롯해 항로 표지라고 지칭되는 것들은 다 관리하고 있습니다."

- 등대지기 하면서 목격한 가장 멋있는 풍경은?
"별이 많이 떴을 때요.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반짝하는데 바다는 까맣잖아요. 하늘하고 바다가 밤에는 바뀐 것 같아요. 밤에는 바다가 육지가 되고, 육지가 바다가 되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밤하늘에 풍차... 등대 백색 섬광이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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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5월 12일 처음 불을 밝힌 오동도 등대는 오동도 정상에 있다. 등탑의 높이는 8.48m였으나 2002년 높이 27m의 백색 8각형으로 개축하였다. 10초 간격으로 빛나는 등대 불빛은 46km 떨어진 먼바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조찬현

 
- 오동도 관광, 이것만은 꼭 봐야 해. 추천해 줄 게 있다면?
"오동도에서 꼭 보고 가야만 될 거는 등대 전망대입니다. 그곳에 올라가서 남해부터 돌산까지 한번 보시는 게 1순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아주 그냥 확 튀죠."

- 오동도 밤바다의 매력은?
"여수 밤바다는 아무래도 불빛인데, 오동도 등대 불빛이 4면으로 빛을 발산하면서 10초에 한 번씩 깜빡이거든요. 그걸 보면 밤하늘에 풍차가 돌아가는 것처럼 백색 섬광이 바람개비처럼 돌죠, 상당히 멋집니다.

1997년 남면 연도 소리도 등대에서 5년 근무하다 처음 이곳 등대가 지어지고 제가 바로 발령을 받아서 왔거든요. 2002년도에 오동도로 왔죠 여수 관내에 유인 등대가 소리도, 거문도, 백야도, 오동도까지 네 군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백야도와 소리도는 무인화됐고요. 여기서 CCTV로 원격 감시를 하고 있어요."

- 등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등대는 길잡이도 되겠지만 '희망이다'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바다에 나갔다 돌아올 때 등대 불빛을 볼 거 아닙니까. 만선이라든지 아니면 안전 항해라든지 그런 희망을 등대를 보면서 기원하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제가 생각하는 등대는 아빠 같은 존재입니다. 등대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그렇게 있으면서 주위를 살피는 역할을 하죠. 그래서 집에 있는 아버님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등대지기는 인내가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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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등대 전망대에 오르면 여수 바다는 물론 남해, 하동 등의 바다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 조찬현

 
- 등대지기를 꿈꾸는 청소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모든 직장이 다 그렇겠지만 등대지기는 인내가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부터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처럼. 처음에는 관심이 있어서 직종을 선택하겠지만 선택한 것만큼 의지를 갖고 생활을 하면서 그 분위기를 더 익히는 그런 기술을 연마해야 할 거 같아요."

- 직업에서 오는 힘든 부분은?
"아무래도 세상과 떨어져 격리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조금은 서툴러요. 혼자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요. 등대지기 노랫말은 국어사전에 있는 슬픈 단어들을 다 모아놓은 것 같아요. 고독도 있고, 외로움도 있고, 그리움도 있고... 제 삶이 그 노래에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노래 가사에 맞는 그대로 생활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대인관계는 조금 떨어지죠. 저 같은 경우도 등대에 들어오기 전에는 활동하는 걸 참 좋아했었거든요. 활발하고 막 그랬는데 지금은 이제 고향 친구들과 회사 직원 만나는 정도입니다. 사람들과 멀어지니 모임에서도 다 탈퇴가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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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등대홍보관에서는 VR 렌즈를 통해 거문도, 마라도, 어청도, 독도, 네 군데의 모습을 현지에서 본 느낌처럼 체험할 수 있다. ⓒ 조찬현

 
- 등대지기, 직업으로 참 좋아 보이는데요.
"지금은 편안합니다, 어디서 근무하든지 간에.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28년간 도를 닦았는데 뭐든 못하겠습니까? 공기 좋은 데 살아서 그런가보다 싶기도 합니다. 그전 직장 선배들에 비하면 실은 저희가 편해졌죠."

- 오동도 자랑하고 싶은 거 있나요?
"3천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3월 중순쯤 만개하게 될 텐데요. 동백꽃 필 때가 절정입니다. 오동도 동백꽃은 저희 등대 전망대 다음으로 좋지 않나 싶습니다. 등대홍보관의 찾아다니는 VR 여행도 좋아요. 이곳에서 VR 렌즈를 머리에 쓰게 되면 등대에 대한 배경이랑 등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거문도, 마라도, 어청도, 독도, 네 군데를 여기서 볼 수 있어요. 현지에 간 것처럼 그 감흥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오동도 #등대지기 #오동도 등대지기 손한일씨 #오동도 동백꽃 #여수지방해양수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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