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위안부> 모집광고를 낸 매일신보1944년 10월 27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난 ‘軍 慰安婦 急募’ 라는 제목의 군 위안부 모집 광고
하성환
태평양전쟁 말기로 치달을수록 '일본군 위안부'로 끌고 가기 위한 조선인 여성에 대한 '사냥'은 극에 달했다. 1970년 8월 15일 자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1944~1945년 두 해 동안 끌려간 조선인 여성만 5만~7만 명을 넘어섰다. 실제로 1944년 10월 27일 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엔 '軍 慰安婦 急募'라는 제목으로 조선 여성을 군 위안부로 급히 모집하는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조선인 여성이 감당했던 참상과 만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파푸아뉴기니 라파울 지역에 주둔했던 일본군 제144연대 병사 니시야마가 들려준 증언은 그 끔찍한 참상을 이해하는 데 실마리가 된다. 일본인 작가 센다 가고가 써서 중국어로 본역된 책 <종군위안부>(후베이인민출판사)에 실린 니시야마의 증언은 이렇다.
"라파울에 그녀들이 도착해서 여장을 푼 첫날, 사병의 대기행렬이 3km나 되었고 그녀들은 종일토록 그 행렬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3km라면 3000명 이상입니다. 여자들은 1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13살에 끌려가 일본군 장교 가네무라와 나카무라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고 김영숙 할머니 증언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가해자는 주머니칼로 소녀의 신체를 훼손했고, 겁에 질려 도망가는 13살 어린 소녀를 칼로 위협하며 군홧발로 무릎을 짓이겼다. 그밖에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들이 있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맨 먼저 해결했어야 할 과거사 문제였다. 그러나 일본이 저지른 참혹한 전쟁범죄에 대해 불행하게도 역대 우리 정부나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단 한 번도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다. 2004년 3.1 독립운동기념일에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과거사 문제나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본 정부의 잘못을 확인시켰을 뿐이다.
"일본에 대해서 한 마디 꼭 충고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이, 한국의 정치지도자가 굳이 역사적 사실을...(중략)...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관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소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미래를 위해서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얘기들을 절제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뜻으로 우리 국민들은 절제하고 있습니다."
2018년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당시 일본 내각 아베 수상은 적반하장으로 경제 보복 조치로 겁박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승리의 역사를 만들겠다. 우리가 굴복한다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며 단호하게 대응한 게 그동안 과거사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보여준 태도의 전부다.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 행태를 보였던 이승만은 해방 후 반일을 정치적으로 교묘히 악용했다. 박정희는 전 국민의 반대에도 한일 국교 회담을 강행해 과거사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이 거부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전두환은 A급 전범 일왕 히로히토와 축배를 들었고 이명박은 일왕이란 표현 대신 '천황'이란 표현을 썼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3월 13일 "일본 정부에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방침으로 이에 대한 보상은 내년부터 정부 예산에서 하라"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일본 관방장관은 이를 "배상 포기로 받아들인다"며 맞장구치듯 환영했다. 그러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박정희 정권 시절 이미 종결된 문제임을 한국 정부가 인정한 것"이라 부연했다. 그만큼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무관심했고 소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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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참상 앞에 국가는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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