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공권력과 주류언론의 민낯

윤미향 사태가 우리 사회에 주는 교훈 ②

등록 2023.02.28 10:35수정 2023.02.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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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NGO '정대협'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국회의 공식 사과를 촉구할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해방 후 1990년대까지 학교교육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가가 의도적으로 외면했고 국가가 나서서 '군 위안부' 실체 자체를 은폐해 왔다.

해방 후 7차 교육과정이 개정돼 학교 현장에 적용되던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사 교과서 어디에도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나 '정신대'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은 국가의 책임 방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오히려 학교 교육이나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방송드라마를 통해 일반 국민은 '정신대' '일본군 위안부'란 용어를 접했다. 1992년 송지나 작가와 고 김종학 피디가 만든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실제로 정부는 수요시위에 참석하려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경찰 등 공권력을 동원해 방해한 적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한국 국적을 버리고 싶다"고 절규까지 했을까!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군 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는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처음 이 사실을 밝히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당당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우리 정부도 피해자에 대한 문제를 일본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내 죄는 대한민국의 딸로 태어난 것밖에 없는데 아직까지 일본은커녕 조국에게도 위로 한 번 받지 못했어요." - 정의기억연대 홈페이지

그런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해 정부의 무책임과 은폐, 그리고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1990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NGO 정대협이 출범했다. 1980년대 윤정옥 교수를 비롯해 1980년대 말 교회여성연합회의 노력으로 1990년 11월, 37개 여성단체·종교단체가 연합해 '정대협'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출신임을 고백하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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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에 참석한 학생들 학생들이 손수 피켓을 제작해 방학 기간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할머니들에게 명예와 인권!>을 촉구하는 피켓팅 장면이다. 학생들 너머 자주색 건물이 예전 일본대사관이다. ⓒ 하성환

 
정대협은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한 수요시위를 통해 차츰차츰 전 국민의 의식을 일깨우며 대한민국 정부를, 나아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키워나갔다.

따라서 윤미향 의원(무소속)은 1990년대 초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투쟁해온 NGO 정대협(정의연 전신) 활동의 산증인이다. 윤미향 의원은 1991년 1월에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오늘에 이르기까지 30년 넘게 이어온 인물이다. 1992년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국가인 필리핀, 타이완, 북한, 중국과 '아시아 연대회의'를 결성했다.


'아시아 연대회의'는 2000년엔 도쿄에서 '일본군 성 노예 전범 처벌을 위한 2000년 여성국제법정'을 개최해 비록 민간 차원이지만 일본 정부를 단죄했다. 당시 피해자 원고측 검사를 맡은 이가 박원순 변호사였다.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받았던 김학순, 황금주, 길원옥 할머니들이 일본과 미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참상과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며 증언을 이어갔다. 그렇게 국내여론, 국제여론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2007년 최초로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인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하원 전체 결의문 채택을 이끌었고 나아가 유럽연합 의회의 결의안과 캐나다 의회, 타이완 의회 결의안도 이끌어냈다. 그 모든 활동의 중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윤미향 의원이 있었다. 할머니들은 일본군 위안부 투쟁을 통해 여성 인권운동가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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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외벽에 걸린 평화나비 관련 펼침막 2012년 마포구 성산동에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 건립되었다. 건물 외벽에 가득한 노란색 종이 편지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 하성환

 
'군 위안부' 출신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들은 인권운동가로서 201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전시 성폭력 범죄 피해 여성들과 연대하는 '나비기금' 모금 운동도 전개했다. 전쟁범죄가 자행됐던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과 나이지리아, 우간다를 비롯해 북이라크, 베트남 피해 생존자들과 자녀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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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사관 앞에 건립한 <평화의 소녀상> 2011년 수요시위 1,000번째를 맞아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권이 일본과 굴욕적인 한일합의문을 발표한 뒤, 소녀상 철거 문제가 현실화하자 기습 철거를 막고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천막농성을 지속하고 있다. ⓒ 하성환

   
2011년엔 수요시위 1000번째를 맞아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이후 전국에 걸쳐, 그리고 해외에서도 계속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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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프란치스코 교육원 내 <평화의 소녀상> 프란치스코 교육원 안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은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가 중심이 돼 전국 각지에 소재한 53개 고등학교 학생회가 자발적인 기금 모금으로 건립한 소녀상이다. 앞장서서 전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하성환

 
특히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 학생들이 중심이 돼 전국 53개 고등학교 학생회가 십시일반 모금 운동을 통해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2년엔 마포구 성산동에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건립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리고 망각의 역사를 일깨우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오늘날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은 전 세계 23개 국가 60개 넘는 도시에서 수요시위를 동시에 감행할 정도로 국제사회 연대를 튼튼하게 이끌어냈다. 요컨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국화, 세계화하는 데 정대협(정의연)이 뿌린 땀방울과 수고는 가히 경탄할 정도이다. 모두 고통 받았던 피해 할머님들과 윤미향 의원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소한의 활동비로 헌신했던 정대협 활동가들이 이뤄낸 소중한 결실이다.

그럼에도 2020년 '윤미향 사태' 당시 검찰과 조중동 언론들이 보인 태도는 가히 충격이었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기부한 금액을 윤미향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며 회계 부정을 저지른 것처럼 기소하고 언론은 검찰 발표보다 한술 더 떠 그를 악마로 편집해 기사화했다.

한 마디로 시민운동가 윤미향을 사악한 위선자로 내몰았고 정의연(정대협) 활동가들의 '도덕성'조차 헐뜯고 공격했다. 급기야 정의연(정대협) 산하 우리집 쉼터 손향미 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을 초래했다. 악의적인 보도로 도배질한 결과였다.

(*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일본군 위안부 #윤미향 #노무현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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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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