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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나이-체급 없이 공정한 경쟁? '피지컬100'에 묻고 싶다

[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 100>으로 보는 몸 쓰는 대중문화

23.03.02 14:44최종업데이트23.03.0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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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육체는 저급하며, 인간 고유의 정신 기능을 방해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원론으로 정신과 육체를 바라본 철학자들이 한 말이다. 그들이 죽음에서 잠시 깨어나 2023년을 목격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몸을 관리해 자기 통제감과 육체미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대에서 '정신보다 몸이 저급하다'는 인식은 전복된 지 오래다. 몸을 둘러싼 저마다의 욕망을 간파한 미디어는 빠르게 흐름을 흡수해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한동안 미디어에서 지적 능력을 활용한 문제 풀이, 추리 게임이 인기였다. tvN <문제적 남자> <더 지니어스> <대탈출> 등이 흥행하며 '뇌가 섹시한 남자/여자'라는 신조어까지 유행했다. 지적 능력 못지않게 신체적 능력이 인간의 가치와 매력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 지금, '3대 몇'(3대 운동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쾃의 중량 최대치를 합산한 무게를 뜻한다-기자 주)은 운동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소개로 통한다.
 
한편, 미디어에서 반복된 몸의 재현은 대개 굳어진 성별 규범의 답습이었다. 여성은 아름다운 곡선과 성적 매력을 갖춘 몸, 남성은 단단한 근육과 폭발적인 신체 능력을 갖춘 몸을 이상적인 몸이라고 규정했다. 한편 몸 쓰는 콘텐츠의 등장은 위와 같은 규범을 해체하는 데 고무적인 역할을 해냈다. 여성이 주인공인 스포츠 예능은 격렬하게 부딪치고 땀으로 범벅된 여자들의 얼굴을 발굴했다. 그동안 남성이 독식했던 스포츠 예능의 폭을 한 발 넓혔을 뿐인데 <골 때리는 그녀들> <노는 언니>의 흥행은 취미 운동과 여성 리그전에 대한 관심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피지컬: 100> 포스터 ⓒ 넷플릭스

 
몸 쓰는 예능은 2023년을 기점으로 또 한 번의 변주에 성공했다. '몸'과 '경쟁'을 결합한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이 국내외로 뜨거운 관심을 얻었다. 이대로 성공 가도를 달릴 것 같았던 <피지컬: 100>은 종영 이후 출연자 검증 소홀과 결승 승부 조작 논란으로 휘청거리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경기에 임한 출연자들 덕분에 운동인들 간의 스포츠맨십에 감탄하고 생소한 운동 종목을 접하기도 했다. 넘치게 받은 애정을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으로, 제작진들이 부디 모든 의혹에 의문 없는 답을 남기길 바란다. 사랑했던 사람의 안타까운 뒷모습을 봐야 하는 기분이지만, 매주 회차 공개를 기다리며 행복했을 나 같은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피지컬: 100>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잊고 있던 '몸'의 가치를 되살리다

완벽한 몸을 탐구하고 찬미하는 <피지컬: 100>에는 다양한 몸이 나온다. 아름다운 몸, 신체 균형을 단련하는 몸,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몸, 국가를 대표해 경쟁하는 몸, 근육을 고루 발달시킨 몸 등등… 모두 사회적 가치와 특정한 목적을 지닌 몸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식어를 제거한 마지막 자리에는 어떤 몸이 남을까. 드라마 <킹덤>의 좀비 안무를 디자인한 출연자 '전영'은 생존하는 몸의 원초성을 말한다. 1대 1 데스매치에서 낮은 포복으로 경기장을 가르는 전영의 움직임은 마치 먹이를 조여 들어가는 살쾡이를 닮았다. 신체 능력이 곧 생존이던 시대에서 인류가 만들었을 필사적인 몸부림이 그에겐 내재돼 있다. 어떠한 가치판단도 들어서지 않은 몸, 생존의 주문을 따랐을 몸의 수행을 전영의 눈빛을 통해 어렴풋이 감각했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에서 공을 잡고 뒤로 구르는 안무가 전영 ⓒ 넷플릭스

 
그렇다면 이 유능하고 유한할 것 같은 몸들의 천적은 무엇일까. 출연자들 모두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었다. 몸 또한 재화 혹은 마음처럼 소진되므로 병들고 늙는다. 출연자들은 입을 모아 "졌지만 다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펼쳐서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이기는 경기보다 안전하게 능력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그렇기에 '가학성'에 대한 재고가 부족한 경기 방식을 볼 때 우려가 앞섰다. 파이널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고안된 5개의 게임 중 폭발적인 근력을 요하는 2개의 경기는 손에 땀을 쥐고 봤는데, 박진감이 아니라 불안함 때문이었다. 약 50kg의 바위를 들어 올려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리하는 '아틀라스의 형벌'에서 출연자들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2시간 동안 땀을 흘린 후에야 승자가 가려졌다. 언덕을 오가며 100kg의 바위를 미는 '시지프스의 형벌'에선 과도하게 몸을 혹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행과 고문은 한 끗 차이이므로, 몸의 취약성을 출연자들이 무겁게 이해하는 만큼 제작진들도 경기 방식을 섬세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의 한 장면. 위부터 '퀘스트4: 아틀라스의 형벌 / 시지프스의 형벌' 경기를 진행 중인 참가자들 ⓒ 넷플릭스

 
'실력주의'를 내건 '몸' 경쟁이 공정해 보이는 이유

경쟁 예능의 스펙트럼을 넓힌 출연자들에 매료돼 잠시 잊었던 사실. 이 경쟁에서 대한민국 1등 피지컬이 탄생한다. <피지컬: 100>은 성별, 나이, 인종, 체급의 구분 없이 가장 완벽한 피지컬을 탐구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방식은 5가지 퀘스트를 통과해 생존하는 '경쟁'이고 보상은 1등 피지컬이라는 명예와 우승 상금 3억이다. 기계적인 비교지만, <쇼미더머니11> 우승 상금이 1억, 올림픽 금메달 연금 및 포상금 합이 약 1억 3천만 원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100명 중 오직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상금 3억은 절대 적지 않은 액수다. 그렇다면 이제 "게임이 구현한 공정은 어떤 종류의 공정인가?", "게임의 규칙은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할 차례다.
 
먼저 <피지컬: 100>은 기존 스포츠 영역에서 첨예하게 구분했던 성별, 체급의 벽을 허물고 모든 출연자가 자신이 가진 역량으로만 경쟁하도록 만든다. 이는 신체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격차는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줄 세우겠다는 뜻이다. 이는 '실력주의'가 대변하는 '차별 시정 없는 공정'이 정의롭다는 믿음과도 연결된다. 또한 여타 사회적 영역보다 신체적 경쟁에서 운과 배경이 작용할 가능성이 낮다고 믿기 때문에 그나마 공정해 보인다는 것 또한 게임의 틀을 설득하는 데 기여한다. 물론 경계를 허물었을 때 남성과 여성 모두 같은 목적을 두고 동일한 룰 안에서 경쟁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장면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힘의 논리가 판을 지배하기 쉽도록 짜인 만큼 '규칙'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표1. ‘피지컬:100’ 전체 퀘스트 종목 및 방식 정리 ⓒ 고은

 
다양성이 허문 장벽, 반쪽짜리 규칙

경기장 안에서의 약자는 체급이 낮은 남성, 여성, 부상자이다. 여성들이 특히 불리한 종목은 압도적인 '근력'이 필수적인 게임이다. 다행히 사전 미션에서 패자 부활전까지는 근력 이외의 지구력, 순발력, 밸런스 발휘가 중요했고 정신력이 받쳐줘야 승리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여성이 남성을 지목해 매칭된 1: 1 경기, 약자들로 이루어진 최약체팀과 강팀을 이기는 언더독 드라마 등 극적인 재미가 모두 이 리그 안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파이널 관문으로 향하는 퀘스트 3에서 약자들은 난관에 부딪힌다. 1.5톤의 배를 끌어야 하는 것도 막막한데 더 큰 장벽은 팀 연합을 맺는 방식이 자율이라는 점이다. 악어가 강을 건너는 물소를 사냥하는 게 차별이라고 얘기하지 않듯 규칙이 손 놓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여자와 부상자가 없는 팀에 가는 게 유리하다"는 말이 결국 당위를 얻는다. 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놀라운 경기력을 펼쳤다는 사실은 다들 잊었는지 레슬링 선수 장은실이 "우리가 그냥 여자가 아니잖아"라는 말로 호소해도 못 들은 척이다. 결국 모든 팀에게 선택받지 못한 장은실X김상욱 팀이 연합을 맺어 최선을 다해 미션을 완수했고 후회 없이 졌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 '퀘스트3: 1.5톤 배 끌기' 경기를 진행 중인 장은실X김상욱 팀 ⓒ 넷플릭스

 
퀘스트 4, 5에서 남성 출연자들은 각자 정진해 온 분야를 이용해 맹활약한다. 파이널에 진출하기 위해 생존율 25%를 뚫어야 하는 '고대 신화' 퀘스트에서 여성들은 힘도 써보지 못했다. 어떠한 사회적 지표와 관계 없이 모든 몸에게 열린 문처럼 보였던 프로그램에서 결국 우승의 문턱에 가까워진 몸이 어떤 성별, 어떤 체급, 어떤 인종을 가진 사람들인지 떠올린다.

장호기 PD는 "가장 완벽한 피지컬을 찾아가는 과정이나, 그 과정을 통해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경쟁' 예능에서 다양한 몸의 노출을 시도했다는 점은 긍정하지만 애초에 보여주기로 결심한 다양성의 폭이 명확했다는 점은 아쉽다. 작지만 유연한 몸, 뚱뚱하지만 날렵한 몸, 획일화된 미에서 벗어난 여성의 몸에게 허용된 무대는 퀘스트 3까지다. 파이널 관문은 의도한 대로 강자들의 리그였고 다양성이 빠진 경쟁은 익숙하게 봐왔던 몸통박치기였다.

몸 쓰는 대중문화가 가야 할 다음

대중문화에서 새롭게 쓴 몸의 기준은 현실을 사는 '몸'들의 규정을 만든다. 한동안 몸들의 경쟁이 뜨겁게 이어질 예정이라면 몸의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마음껏 확장하는 콘텐츠를 만나고 싶다. 또한 <피지컬: 100> 제작진들이 놓치거나 숙고하지 않았던 출연자 검증, 공정한 경쟁을 위한 방송 환경까지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만날 콘텐츠와는 완벽한 몸과 불온한 몸을 넘나들고 그 경계가 과연 필요한지까지 질문할 수 있기를. 그렇게 <피지컬: 100>에서 5000만 인구의 몸으로 논의를 확장할 때, 우리가 드디어 '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피지컬:100 넷플릭스 대중문화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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