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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본 콜센터 노동자 "변한 건 딱 하나입니다"

[인터뷰] 콜센터 실습생 죽음 후 6년, 현실은... "내 일상 그대로 옮겨둔 것 같았다"

등록 2023.03.04 19:38수정 2023.03.04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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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포스터.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지난 2017년 발생한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모티브로 한 영화 <다음 소희>를 계기로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와 콜센터 노동자들의 감정노동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관련 기사: 과몰입 피해야 했던 '다음 소희', 차가운 폭로에 데다 https://omn.kr/22n7u ).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있어 '안전'은 오랜 화두였다. 지난 2018년 10월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근로자' 보호 규정이 신설·시행되기도 했다(2018.10.18.). 그렇다면 약 4년이 지난 2023년의 현장 상황은 어떨까?

2일, 현재 통신3사 중 한 곳이 운영하는 고객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콜센터 노동자 서영(가명, 21)씨에게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영씨는 통신사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면 전국의 모든 고객센터 중 한 곳에 랜덤으로 전화가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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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통신3사 중 한 곳이 운영하는 고객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유선채팅상담팀 서영(가명)입니다. 지난해 6월부터 콜센터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유선채팅상담팀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희 팀은 인터넷을 비롯한 모든 업무를 봅니다. 영화 <다음 소희>에 나온 해지방어부서에 가기 전에 오는 곳이 저희 부서입니다. 부서명과 달리 콜도 받기 때문에 웬만한 업무는 1차적으로 저희를 통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하루에 많으면 50콜, 적으면 30콜 정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유선채팅팀에 티오가 있어서, 지원했습니다. 영화에 나온 해지방어부는 인터넷 시스템을 알아야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저희 부서 같은 곳에서 업무를 할 줄 아는 분들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에게도 해지 관련 콜이 옵니다. 해지를 원해서 전화한 분도 있고, 틈만 나면 해지한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해지하겠다고 하면 혜택을 주기 때문입니다. 내부 시스템을 아는 분들은 심지어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해지부서로 연결해 달라'고 하십니다. 얼마 전, '이전 신청'을 문의한 고객님을 해지부서로 연결했습니다. 비용을 안내하자, '거기를 10년 정도 이용했는데 그 돈을 내가 내야 돼?'라고 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해지부서에게는 별도의 권한이 있습니다. 고객님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요금에 3년간 할인을 넣어주거나 재약정을 걸어 상품권을 제공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고객 짜증은 기본, 신음 소리 내며 성희롱하는 고객도 

- 업무를 시작하실 때, 교육은 어떤 식으로 받으셨나요?

"신입이 오면 몇 주간 교육을 합니다. <다음 소희>에 나오는 것처럼 헤드셋을 연결해서 뒤에서 듣게 합니다. 이후 바로 투입되는 건 아니고, AI를 상대로 좀 더 연습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실전은 다릅니다. '설치비를 왜 내야 해요?'라는 질문만 받아도, 처음엔 '설치비가 있다'는 것만 알기 때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내 메신저로 문의하는데, 답변이 굉장히 늦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객님들의 짜증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못 버티고 퇴사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 일하는 과정에서 힘든 지점이 있다면요?

"매일 너무 많은 일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 고객센터는 (고객이) 통신사 번호를 입력해 전화하면 전국의 모든 고객센터에서 랜덤으로 전화를 받습니다. 얼마 전 타지에 사는 분과 상담 전화를 하는데, 제가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고객님이 '외국 사람이야?'라고 하신 게 기억납니다.

고객님의 이름이 헷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이름이 동규라고 되어 있으면 '고객님 성함이 동자, 규자 맞으실까요?'라고 확인합니다. 이때 '내가 방금 이름 말했잖아'라는 식으로 화를 내시는 분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화가 난 상황에서 전화를 거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님 저희 쪽에서 확인이 안 돼서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다시 물으면, '왜 두 번 말하게 해. 나 시간 없어' 이런 식으로 막 대하는 겁니다.

어떤 분은 몇 차례 이름을 재확인하자 '네가 10번 물어봤으니까 사과 10번 해'라고 사과를 지시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금 감정을 드러내, 팀장님에게 혼난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는 고객센터고 (네) 감정을 드러내면 안 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쿠션 멘트를 덜 했다는 이유로 제가 잘못한 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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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가명)씨가 일하고 있는 A고객센터. ⓒ 서영(가명)씨 제공.


한 번은 고객센터에서 일하셨던 분을 상담했는데, 다른 부서로 전화를 돌리는 시간이 5시 58분이어서 '혹시나 전화가 끊기면 내일 다시 문의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그분이 '상담사 불친절'로 민원을 넣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타격을 줄 수 있는지 알고 계셨던 겁니다. 민원 이유는 전화 돌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거였고 제 잘못이 됐습니다. 불친절이 찍히면 점수가 깎이게 되고 여러 불이익을 받습니다. 저희는 마지막 멘트를 못한 상태에서 통화가 끊겨도 감점을 받습니다.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

성희롱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성) 상담사에게 '10부터 1까지 세어봐라'라고 한 후 신음소리를 냅니다. 그분이 하도 자주 전화를 거셔서, 최근에는 바로바로 고객만족팀에 넘기고 있고, 그때마다 남성 팀장님이 10부터 1까지 세어드리고 있습니다."

모티브 된 사건 일어난 뒤 6년, 변한 건 딱 하나

- '고객응대근로자' 보호 규정 신설이 준 영향은 없나요?

"예전에는 대놓고 욕설을 하시는 분들이 더 많았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고객님들도 욕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이 때문에 욕설 대신 불쾌한 방식으로 말씀을 하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할 경우에, '너 앵무새야? 다른 말 못 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통신3사 상품의 경우 너무 많아서 외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 일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용을 찾아야 압니다. 그런데도 이럴 때 짜증을 내면서 '하, 상담사라면서 이런 것도 못 해? 세상에'라며 소리를 지르는 분들이 계십니다. (상담 과정에서) 욕설 역시, 실은 여전합니다. 욕설을 들으면 멘트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고객님 욕설이나 성적인 말씀을 하시면 콜을 중단해야 합니다'라고 한 뒤에도 욕설이 반복되면 고객만족팀으로 연결합니다.

그런데, 욕설을 해도 수사기관에 넘기지는 않습니다. 콜을 넘긴 후에 윗선에서 어떤 식으로 상담했는지 텍스트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끝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희는 대기업인 모 통신사의 이름을 걸고 있기 때문에 고객님이 불편하셨다면 사과하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고객님의 기분이 풀리지 않으시면 풀리게끔 해야 한다'는 게 고객만족팀의 기본적 인식으로 돼 있습니다."

- 영화 <다음 소희>, 어떻게 보셨나요?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현실 반영이 잘 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많은 상황들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고객센터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들이 마치 제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의 현실과 다른 점은, (전과 달리) 요새는 심한 욕설은 끊을 수 있다는 점뿐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인 2017년 이후 변한 건 딱 이것뿐입니다. 이것만으로 우리는 '다음 소희'를 막을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면서, 콜센터에서의 일이 저를 어떻게 변하게 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냥 좀 다 내려놓게 됐다고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제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짜증을 내도, '모두가 그래',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내려놓게 됩니다. 이런저런 인간적인 감정이 생겨나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그중 일부를 잃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어쩌다 한 번 고객님께 '문의를 한두 개 드린 것도 아닌데 잘 상담해 주셨어요.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칭찬을 받으면 하루 종일 쌓였던 짜증들이 풀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사소한 따뜻함이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힘낼 수 있게 하는 거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영화 <다음 소희>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일이 있어 상담원과 통화를 하실 때 조금만 더 친절하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소희 #감정노동 #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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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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