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영(가명)씨가 일하고 있는 A고객센터.
서영(가명)씨 제공.
한 번은 고객센터에서 일하셨던 분을 상담했는데, 다른 부서로 전화를 돌리는 시간이 5시 58분이어서 '혹시나 전화가 끊기면 내일 다시 문의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그분이 '상담사 불친절'로 민원을 넣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타격을 줄 수 있는지 알고 계셨던 겁니다. 민원 이유는 전화 돌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거였고 제 잘못이 됐습니다. 불친절이 찍히면 점수가 깎이게 되고 여러 불이익을 받습니다. 저희는 마지막 멘트를 못한 상태에서 통화가 끊겨도 감점을 받습니다.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
성희롱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성) 상담사에게 '10부터 1까지 세어봐라'라고 한 후 신음소리를 냅니다. 그분이 하도 자주 전화를 거셔서, 최근에는 바로바로 고객만족팀에 넘기고 있고, 그때마다 남성 팀장님이 10부터 1까지 세어드리고 있습니다."
모티브 된 사건 일어난 뒤 6년, 변한 건 딱 하나
- '고객응대근로자' 보호 규정 신설이 준 영향은 없나요?
"예전에는 대놓고 욕설을 하시는 분들이 더 많았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고객님들도 욕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이 때문에 욕설 대신 불쾌한 방식으로 말씀을 하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할 경우에, '너 앵무새야? 다른 말 못 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통신3사 상품의 경우 너무 많아서 외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 일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용을 찾아야 압니다. 그런데도 이럴 때 짜증을 내면서 '하, 상담사라면서 이런 것도 못 해? 세상에'라며 소리를 지르는 분들이 계십니다. (상담 과정에서) 욕설 역시, 실은 여전합니다. 욕설을 들으면 멘트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고객님 욕설이나 성적인 말씀을 하시면 콜을 중단해야 합니다'라고 한 뒤에도 욕설이 반복되면 고객만족팀으로 연결합니다.
그런데, 욕설을 해도 수사기관에 넘기지는 않습니다. 콜을 넘긴 후에 윗선에서 어떤 식으로 상담했는지 텍스트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끝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희는 대기업인 모 통신사의 이름을 걸고 있기 때문에 고객님이 불편하셨다면 사과하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고객님의 기분이 풀리지 않으시면 풀리게끔 해야 한다'는 게 고객만족팀의 기본적 인식으로 돼 있습니다."
- 영화 <다음 소희>, 어떻게 보셨나요?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현실 반영이 잘 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많은 상황들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고객센터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들이 마치 제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의 현실과 다른 점은, (전과 달리) 요새는 심한 욕설은 끊을 수 있다는 점뿐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인 2017년 이후 변한 건 딱 이것뿐입니다. 이것만으로 우리는 '다음 소희'를 막을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면서, 콜센터에서의 일이 저를 어떻게 변하게 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냥 좀 다 내려놓게 됐다고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제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짜증을 내도, '모두가 그래', '어쩔 수 없지' 하면서 내려놓게 됩니다. 이런저런 인간적인 감정이 생겨나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그중 일부를 잃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어쩌다 한 번 고객님께 '문의를 한두 개 드린 것도 아닌데 잘 상담해 주셨어요.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칭찬을 받으면 하루 종일 쌓였던 짜증들이 풀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사소한 따뜻함이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힘낼 수 있게 하는 거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영화 <다음 소희>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일이 있어 상담원과 통화를 하실 때 조금만 더 친절하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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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일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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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본 콜센터 노동자 "변한 건 딱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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