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놀아봐야 나이 들어서도 놀 줄 압니다

등록 2023.03.03 14:20수정 2023.03.0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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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줍는 할머니 어는 늦가을 아파트 숲 사이 상가골목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 김민수


1938년생 황동규 시인은 몇 해 동안을 마지막 시집이라고 생각하며 시집을 발간했다고 합니다. 2020년 출간된 <오늘 하루만이라도>라는 시집에서 시인은 '마지막 시집이라고 쓰려다 만다'고 합니다. 유고집에 들어갈 공산이 크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으므로.


황동규 시인의 '봄 저녁에'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그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이가 은퇴하고도 늘 바깥일이 있었는데
지난 사흘째 도무지 말을 않고 집에 있네요.'
(중략)
나도 화가 나서 하루 종일 입을 열지 않은 적 있었지.
그 하루 온통 하나의 절벽이었어.
하, 어이없이 주저앉은 자신에게 그가 단단히 화났구나.
(하략)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공원에서 간단한 운동을 하는데 친구가 많이 우울해 합니다.

"왜, 화나는 일이 있어?"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질 않아서 화가 막 나네."
"우리가 그럴 나이지."
"그게 속상해. 언젠가 늙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


그 친구도 저도 코로나19로 겪으면서 헬스장이나 목욕탕 출입을 하지 않으면서 살이 좀 올랐습니다. 다시 원상복귀해보려고 노력을 하는데 한 번 찐 살은 빠질 기미가 안 보이고 몸은 점점 둔해집니다.


"하, 젊어서 농땡이는 늙어서 보약이라는데."
"크, 나 젊어서 농땡이 많이 쳤는데 내 보약은 누가 훔쳐갔나?"


살 빼고 근력 키운다고 운동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따로 시간내지 말고, 일상에서 하는 일을 운동삼아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부르주아적인 삶이라는 것을 알기에 죄스럽기도 합니다. 

폐지값이 형편없이 떨어져 하루 종일 폐지를 모아도 몇 천 원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쉬느니 운동삼아 폐지를 줍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생계때문에 거리로 나서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운동삼아 하는 분들 보기는 하늘의 별따기고, 대부분 생계때문에 몇 천 원이라도 벌자고 거리로 나온 분들을 마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손수레는 자전거 바퀴를 달고, 할머니가 끌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작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손수레에 폐지를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트럭에 싣고 고물상으로 갑니다. 트럭 운전사는 아마도 할머니의 아들 같기도 합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그 일을 그만하셨으면 좋겠는데 운동삼아 하겠다고 하신 답니다.  할머니는 "늙어서 할 일도 없는데, 집 안에만 있으면 더 늙제" 하십니다. 고맙게도 할머니는 그 일이 재미있으시답니다. 폐지에게 새 생명을 주는 의미있는 일이기도 해서 놀이처럼 하신답니다.

예의상 고개를 끄덕여줬지만, 저는 늙어서 할 일이 없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늙어도 할 일이 있어야 하고, 기왕이면 노는 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이가 드니 몸이 따라주질 않습니다. 지갑에 여유가 있은들 몸이 안따라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도 또 하나 놀 줄 모르면 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노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갑자기 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부터 놀아봤어야 놉니다.

'놀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생각은 부정적입니다. '노는 애'라는 딱지가 붙으면 올갖 불량스러운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일과 놀이'는 사실 하나였고, 이 둘이 조화를 이뤄야 삶도 밋밋하지 않습니다.

놀이 문화의 부재는 결국 음지로 사람들을 몰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 일상에서 어른들의 놀이문화를 보십시오. 거리에 우후죽순 간판을 달고 있는 무슨무슨 '방'들에서 건전한 놀이가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이런 놀이 문화의 부재가 일로 사람들을 내몰고 은퇴하고나면 놀 줄을 모르니 화가 잔뜩 날 수밖에 없는 게지요.

그래서 말입니다. 요즘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때문에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냥 속된 말로 '돈 버는 일'에 모든 관심과 열정을 다 쏟아붓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기성세대 어른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안하고 할 말도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씩은 '놀맨놀맨' 하셔도 됩니다. 젊어서 놀아봐야 그 흥이 남아 나이 들어서도 놀 수 있습니다. 놀 줄 모르는 노년, 얼마나 따분하겠습니까?

너무 한가한 말을 한다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한 것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과 돈하고만 연결된다면 그 진지함이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요? 놀면서 명랑하고 밝게 살아도 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젊어서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불혹의 나이부터 노년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서 조금 겉늙었다는 소리를 듣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준비를 했어도 여전히 놀 줄 몰라서 잘 놀지 못합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노랫말이 참 천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못 노는 나이가 되니 참 진솔한 노랫말이구나 싶습니다.
#폐지 #노년기 #놀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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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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