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5월 28일 귀환한 납북 귀환 어부들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내용을 담은 결정문
김재수
지난 2월 28일 납북 귀환 어부 피해자 김재수(1969년 5월 28일 귀환)씨 등 23척, 150명은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문을 받았다. 이는 앞서 2월 7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납북 귀환 어부들의 인권 침해에 대한 진실 규명을 결정한 뒤 그 내용을 자세히 통보하는 결정문이었다.
이번 진실규명 결정문의 주요 내용은 ▲ 납북 귀환 어선들은 대부분 남한 해역에서 납북되었으므로 월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 ▲ 귀환 뒤 대한민국 수사당국으로부터 불법감금,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점 ▲ 형사 처벌 이후에도 지속적인 감시 등 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권 침해 사실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권고를 결정하였다.
국가는 납북 귀환 어부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는 재심 등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이 권고가 이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앞서 1기 진실화해위원회(2005~2010년)부터 이번 권고와 같은 수백 건의 진실 규명 권고가 있었는데도 피해자에게 사과하거나 피해 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먼저 사과를 해야 할 주체가 '국가'라는 표현으로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문에 따르면 '합동심문반'이라고 표현되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방첩대(현 국군방첩사령부), 강원도경찰국 등이 수사의 주체를 맡고 있었다. 또 사건의 처리 지침이나 수사 방향에 대한 내용은 내무부 소속의 치안본부가 맡고 있었으며, 속초지청의 검사가 수사를 지휘하고 기소를 담당하였다. 이뿐인가. 당시 잘못된 기소 내용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법원 역시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뿐만 아니다. 납북 귀환 어부들의 수사, 기소, 재판 등을 생중계 하듯 실시간 기사화한 언론은 또 어떠한가. 더불어 한국의 어선들이 납북될 당시 북한 경비정의 침투와 납치 행위를 막지 못한 해경과 해군 등 경찰의 수장과 국방부의 수장 또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시민의 인권 침해 과정에는 이렇듯 수많은 국가기관의 책임자들이 거미줄 얽혀 있듯 서로 연결되어 연대의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런데 '국가'라는 표현으로 책임의 소재를 '퉁' 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애매모호한 책임 소재로 인해 어느 기관 하나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관의 사과 방법이나 대상을 정해주지 못한 탓에 억지스럽고 심지어 일방적인 사과가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육군 본부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사과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갑작스러운 전화에, 나를 다시 협박하려 하나 생각했는데, 그걸 근거로 내가 사과에 '부동의'했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임헌영 문인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 KBS "이제는 '사과'해야"…힘 실리는 과거사 '권고'
위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 '사과'의 책임 소재가 분명히 가려진 경우 불법 행위에 가담한 기관은 하나같이 사과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사과의 방식 또한 피해자의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방식으로 공론화하여 피해자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과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진화위 결정만 나왔지 후속 조처는 없다
다음으로 '실질적 조치'라는 모호함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국가폭력, 인권침해 사실에 대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수많은 결정이 있었는데도 인권 침해 피해자나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 고문 피해자 등에 대한 지원 사업이나 기념, 교육 사업과 관련한 법령 제정이나 기관의 설립 등 국가의 적극적 조치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다.
아직도 많은 고문 피해자들이 고문의 악몽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며, 고문으로 인해 상처 받은 육체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는 이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에 의해 상처받은 몸과 마음의 치료를 사비로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가 형사보상금이나 국가배상금으로 이행의 모든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월 27일 국회에서는 진실화해위원회 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진실회해위 권고를 받은 정부기관 등은 3개월 이내에 권고 사항의 이행계획을 행안부 장관에게 제출'토록 하고 있으며, 권고사항을 이행하면 그 결과 역시 제출토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권고사항을 받은 정부 기관이 권고사항을 이행하도록 하는 강제 규정은 빠져있다. 권고사항 이행 역시 점검일 뿐 이행하지 않았을 때 강제할 수 있는 내용 역시 포함되지 않았다.
2월 28일 자 진실화해위원회가 작성해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한 사건은 모두 1179건이며 이중 313건에 대한 개별 권고를 진행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으로 이 313건의 개별권고 사건에 대한 권고이행을 소급적용해 점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앞서 진실규명 결정이 된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씨의 경우 "진상규명을 해주셔서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만, 아직 저희는 국가에 대해서 (사과나 보상에 대한) 정확한 확답도 받지 못해서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라고 했고, 삼청교육대 피해자 정00씨의 경우에도 "사과 서한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온 '결정문' 이게 다예요"(이상 앞 KBS 보도)라며 국가의 후속 조치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앞으로 밝혀질 진실규명 결정 사건뿐만 아니라 이미 이전에 밝혀진 수백여 건의 진실규명 사건에 대한 권고 이행 역시 뒤따라야만 피해자들이 국가의 진정성 있는 사과·화해 조치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