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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보던 교사들이 무너진 까닭

서울교사노조 250명 집단관람 소감문에 나온 반성..."소희 회사와 학교 칠판, 현실과 똑같다"

등록 2023.03.03 16:46수정 2023.03.0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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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장면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다음 소희>는 내용을 따져보면 사실상 교원 저격 영화다. 이 영화에 나오는 교사와 교감은 하나 같이 학생 취업실적 경쟁에 찌들어 산다. 그러다보니 특성화고 실습생인 소희와 같은 학생의 고통은 뒷전이다. 결국 영화 속 교원이 실랑이 중 형사로부터 주먹으로 맞을 정도로 소위 '밉상'으로 묘사된다.

1분 만에 교사 250명 신청 마감

그런데 이처럼 교원에겐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는 영화를 교사 250여 명이 모여 집단으로 관람했다. 서울교사노조가 지난 2월 24일 서울의 한 영화 상영관을 통째로 빌린 것이다. 그런데 "참가 안내문을 교사들에게 돌린 뒤 단 1분 만에 신청자 250명이 순식간에 마감됐다"는 게 서울교사노조의 설명이다.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은 3일 <오마이뉴스>에 "교사는 모든 계층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 담론은 대학 입시 위주로만 흘러간다. 이 속에서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다"면서 "제2, 제3의 소희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교사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집단 관람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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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다음 소희' 영화를 보는 250여 명의 교사들. ⓒ 윤근혁

  
상영관 스크린 안에서 성실하게 춤을 배우던 소희가 현장 실습을 나간 뒤, 학교 교사의 무관심과 회사 간부들의 강압 속에 끝내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 모습은 무겁지도 일부러 슬픔을 자아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교사들로 꽉 찬 영화관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이 영화를 본 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됐을까? 교사들이 영화 뒤 직접 쓴 소감문을 살펴봤다.

특성화고에 근무하다가 지금은 특수학교 진로전담교사를 맡고 있다는 한 교사는 "영화를 보면서 결국 그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고 적은 뒤, 그 이유에 대해 "그의 죽음이 슬펐던 것이 아니라 '힘들다'고 이야기를 해도 '참으라'고 이야기하던 선생이 나였음에 그랬다"고 자신을 되돌아봤다.


"(영화 속 소희의 교사 모습은) 과거 업체 등을 돌아다니면서 취업 좀 시켜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내가 지도하던 학생들을 취업시키고는, 그 아이들이 '힘들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내게 하소연하고 그만두고 오기라도 하면 야박하게 굴던 내 모습이었다. '소희'가 힘들다고 하소연을 할 때 내가 했던 말과 똑같이 설득하던 (영화 속) 담임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보았다."

이 교사의 소감문은 다음처럼 이어진다.

"(영화에는) 소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을 추적하는 형사의 모습이 나온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왜 그런 애를 여기에 보내서....'라고 말한다. 결국 이런 인식이 10·29 참사나 세월호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도, (오히려 피해자인) 개인을 조롱하고 욕하는 시대를 만든 것 같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육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학교는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나 있어야 할 텐데 '다음 소희'는 학교 또한 그렇지 못하다고 말해 준다"면서 "카메라가 소희가 다녔던 회사, 학교, 교육청 칠판을 똑같이 비췄을 때 그 똑같음(학교별 실적과 등수를 적어놓은 똑같은 글귀)에 저는 교사로서 무너지고 말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어 이 교사는 "우리가 마음 속에 그런 칠판을 안 가져 봤던 적이 있을까? 서울대에 몇 명 진학, 의대에 몇 명 진학... 소희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은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 모른다"면서 "교사로서 이러한 환경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학교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소희 같은 피해 학생 나오지 않게"

한 고교 교사는 "상영이 끝나고 나서도 자리를 쉽게 뜰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냥 눈물이 줄줄 나더라. 그 예쁜 아이들을 힘들게 만들고, 힘들다는 말도 못하게 만든 어른들이 다 미워져서 그랬다"면서 "(이 영화를 본)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고 새 학기를 맞이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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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극장에서 '다음 소희' 영화표를 나눠주는 서울교사노조 집행부들. ⓒ 윤근혁

  
한 유치원 교사는 영화를 본 뒤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다음 소희'는 아마 끝없이 나올 거예요. 내가 큰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다음 소희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조금씩이라도 바꿔나갈 수 있도록 모두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고 함께 싸우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음 소희 #교사 집단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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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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