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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성' 빠진 3.1절 기념사, 2011년 이후 처음

[팩트체크] 역대 기념사 70회 분석... 문재인·박근혜 '반성 요구' 100%, 전두환·노태우 0%

등록 2023.03.04 11:35수정 2023.03.0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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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과거사 반성' 언급 안한 건 2011년 이후 처음 

윤석열 대통령의 첫 3.1절 기념사를 향한 비판이 거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104주년 3.1절(삼일절) 기념사에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고 밝혔다. 정작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 일본의 과거사 인식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반성이나 사과도 촉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국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반성을 언급하지 않은 건 처음 아니냐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관련기사 : 윤 대통령 3.1절 기념사, 세 가지에 경악했다 https://omn.kr/22x21 )

김동연 경기지사도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는 진솔한 사과와 책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대통령의 3ˑ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104년 전 독립만세를 외친 순국선열께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일본군 위안부 등 일본 과거사 인식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된 2011년 이후만 따지면,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 반성' 언급이 빠진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역대 대통령 3.1절 기념사를 분석했더니,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1990년대 국제 무대에 본격 등장했지만, 당시 고노 담화 등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로 한일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우리 정부의 '반성 요구'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12년 아베 정부 출범 전후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3.1절 기념사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과거사 반성' 언급한 대통령은 7명... 70회 가운데 21회 


<오마이뉴스>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30주년)부터 2023년(104주년)까지 역대 대통령 3.1절 기념사를 분석했다. 기념사 전문은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기록컬렉션'에서 검색 가능한 역대 대통령 연설기록을 바탕으로 했다.

3.1절 기념사 70회(대통령기록관에 기록이 없는 1953년과 1960~63년 제외) 가운데, 일제의 침략, 수탈, 강제동원,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를 언급한 것은 37회(52.8%)였고, 일본 정부의 책임이나 반성, 사과를 요구한 것은 21회(30.0%)였다.

3.1절에 일본의 반성을 한 차례라도 요구한 대통령은 모두 7명이었다. 문재인-박근혜가 100%(5회/5회)로 가장 비율이 높았고, 노무현 80%(4회/5회), 이명박 60%(3회/5회) 순이었다. 김대중은 5회 중 1회, 이승만은 10회 중 1회였고, 박정희는 16회 중 2회였다.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은 한 차례도 없었다.(*첨부파일 : 3.1절 기념사 분석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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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3.1절 기념사 가운데 '일본 과거사 책임이나 반성 요구' 횟수 ⓒ 김시연·강석찬

[1949-1987년] 이승만·박정희도 강제동원 등 반성과 사과 촉구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전 권위주의 체제 대통령들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기보다는 반공 의식 고취나 독재 체제 옹호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0년대 6.25전쟁 전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기보다는 주로 북한과 공산주의 비판에 할애했다. 다만, 그는 한일 협상이 교착 상태이던 지난 1959년 40주년 기념사에서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은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물건을 다 돌려주어야만 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면 우리 인심에도 호의가 나게 될 것"이라면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

아울러 그는 "일본이 한인들을 전 같이 학대할 생각을 버리고 동등한 친구로 대우해서, 대미전쟁에 쓰려고 데려간 우리 사람들을 보상해서 갚아주고 한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하면 우리가 다 받을 것이니 이것이 양국 간에 정당한 조처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일본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보상도 요구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65년 6월 한일협정 타결 이전에는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 그는 1964년 40주년 3.1절 경축사에서 "오늘 항일투쟁의 기념일을 맞아 전체 민족의 이름으로 그들의 자성과 대승적이며 투철한 성의를 다시 한 번 촉구하는 바"라며 "지난날 군국주의 무력지배시대의 우월의식을 불식할 것이며 속죄하는 담담한 자세로써 과거의 악유산을 미련없이 청산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한일협정 반대 여론이 확산되던 지난 1966년 47주년 기념사에서도 그는 "나는 오히려 3.1의 근본정신과 진정한 의의에 대하여 일본 및 일본인들이 보다 더 절실한 반성과 회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본의 반성을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1970년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과거사 언급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반공 정신이나 유신 체제 옹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1980년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1988-2002년] 일본 정부 공식 사과로 '화해 분위기' 형성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치러진 대통령 직접 선거로 당선한 노태우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과거사 문제에 대한 책임이나 사과를 요구한 경우는 없었다.

'문민정부' 시대를 연 김영삼 전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 시기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공식 인정한 '고노 담화'에 이어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일본의 전쟁 범죄와 식민지 지배를 공식 사과했다.

김영삼도 1994년 3.1절 기념사에서 "과거를 소중한 교훈으로 삼아 미래를 향해, 세계를 향해 앞으로 전진해야만 한다"면서 "우리는 자신감과 민족적 긍지를 가지고 일본과 당당하게 협력하며 경쟁해 나가야 하겠다"면서 일본의 반성보다는 협력을 더 강조했다.

다만 그도 1995년 광화문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쇠말뚝 뽑기 등 일제강점기 잔재 청산이 한창이던 지난 1996년 3.1절 기념사에서 "잘못된 역사는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바로 잡아야 한다"면서 "잘못된 역사를 과감히 바로 잡을 때, 비로소 미래를 향해 힘 있게 전진할 수 있다"라며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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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상회담 1998년 10월 8일, 국빈 방일 2일째를 맞은 김대중 대통령은 8일 숙소인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첫 여야간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10월 12일 오부치 당시 일본 총리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한 한국 국민의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1년 "저는 일본이 이와 같은 합의정신 아래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인근 나라들과 미래지향적 우호협력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3일 <오마이뉴스> 전화 통화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동원이 대표적인 일본 과거사 문제인데 1980년대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1990년대 들어 국제적인 문제가 됐다"면서 "90년대 일본에서도 혁신세력이 힘을 얻어 연합 정부가 들어서, 고노 담화 등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나오면서 한일 관계가 괜찮아졌다"고 설명했다. 

[2003-2023년] 아베 정부 들어 한일 관계 악화... 2011년 이후 '과거사 반성' 촉구

하지만 화해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독도 영유권 분쟁,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한일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2012년 아베 정권 출범 이후에는 일본의 우경화 경향이 더 심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3.1절 기념사에서 "과거는 말끔히 청산되지 않았고 새로운 역사의 대의도 분명히 서지 못했다. 역사적 사실과 진실은 아직 많은 것이 묻혀 있다"면서 "한국이, 한국의 정치 지도자가 굳이 역사적 사실을,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일본의 법, 제도의 변화를,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관해서 말하지 않는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소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다케시마의 날'을 만든 지난 2005년에도 그는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그 연후에 화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지난 2011년 "일본은 지난 해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를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행동과 실천에 나서야 한다"면서 "그래야만 우리 양국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2년에도 "양국이 진정한 동반자로서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면서 "특히 군대 위안부 문제만큼은 여러 현안 중에서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할 인도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해 8월,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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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찬바람 속 대학생들 "소녀상 지켜주세요" 한일협상폐기 대책위원회 소속 대학생과 시민들이 2016년 1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소녀상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어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성 없는 사과를 규탄하며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협상 폐기를 촉구했다. ⓒ 유성호

 
이어진 박근혜 정부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 화두였다. 그는 2013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일본이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21세기 동아시아 시대를 함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면서 일본의 책임을 강조했다.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이 한창이던 2015년에도 "우리는 양국이 미래로 함께 가는 여정에서 반드시 풀고 가야할 역사적 과제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것을 촉구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해 12월 합의 후에는 "일본 정부도 역사의 과오를 잊지 말고 이번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온전히 실천으로 옮겨서 미래 세대에 교훈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근혜 탄핵 이후 위안부 협상도 번복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3.1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면서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이라며 계속해서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

이어 2018년 10월 대법원의 일본 강제동원 배상 판결, 2019년 7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따른 무역 분쟁으로 국내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한일 관계는 급격히 악화됐다.

서중석 교수는 "다시 자민당 단독 정권으로 바뀌고 2000년대 들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하는 등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박근혜 정부에서 위안부 당사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일본과 위안부 협상을 타결한 게 문재인 정부 들어 문제가 됐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일본은 과거사 반성 안 하는데 협력만 언급"

윤 대통령 기념사가 비판받는 이유도 이같은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과 '협력'만 강조했다는 점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3일 <오마이뉴스> 통화에서 "대통령의 3.1절 담화에는 기본적으로 강제동원 뿐 아니라 한일 역사 문제 현안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야 하는데 그런 걸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협력 파트너가 되었다'는 부분도 '일본이 과거의 군국주의 역사에 대해 현재 반성하고 있느냐'를 봐야 한다"면서, "일본은 현재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거부하고 있고, 사도광산이나 군함도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문제,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내용 삭제,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 등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있는데도 (윤 대통령이) 전혀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중석 교수도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 등 당장 현안과 일본의 침략 만행을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독도 문제, 일본의 침략과 강점(강제점령) 등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거꾸로 우리 잘못으로 국제 정세에 어두워 대처하지 못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 입장에서 발언해 국민적 혼란을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3.1절기념사 #윤석열 #일본과거사반성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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