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단독] 지하 4층서 홀로 쓰러져 숨진 하청노동자... 금감원, 한달 넘게 '쉬쉬'

소독·방역 용역업체 소속 60대 노동자, 하루 이상 방치... 금감원 "하청 책임"

등록 2023.03.03 20:48수정 2023.03.03 21:00
8
원고료로 응원
a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 연합뉴스

 
금융감독원에서 소독·방역 업무를 하던 용역업체 소속 60대 노동자가 금감원 지하 4층 주차장 펌프실에서 홀로 쓰러진 채 최소 24시간 이상 방치됐다가 뒤늦게 발견돼 끝내 사망한 사실이 한 달이 넘은 후에야 밝혀졌다.

2022년 4월부터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코로나19 소독·방역 일을 해온 민아무개(68)씨는 지난 1월 31일 오후 7시경 다른 업체 소속 청소·미화 노동자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에 따르면, 민씨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로 저체온증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민씨는 곧장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날 밤 11시 55분께 숨졌다. 사인은 뇌내출혈이었다. 20층이 넘는 금감원 건물에서 소독·방역 업무를 맡은 건 민씨 혼자였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민씨가 쓰러진 시점이 사망 당일(1월 31일)이 아니라 사망 전날(1월 30일)이었다고 추정한다. 평소 민씨는 매일 출퇴근할 때마다 '방문증'을 끊고 금감원에 출입해왔는데, 사망 전날 방문증이 반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민씨의 핸드폰에는 '금융감독원 안내데스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방문증 미반납되어 연락 드렸습니다. 언제 반납 가능하실까요?'라는 문자가 1월 31일 오전 9시 45분경에 수신돼있었다.

민씨의 부인인 김아무개(65)씨는 "사망 전날(1월 30일) 저녁에 남편이 집에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질 않아 전화를 계속 하다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딸에게 '아버지 핸드폰 위치 추적을 해보니 금감원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별일이 아닌 줄 알았다"고 했다.

가족들이 민씨와 마지막으로 연락이 된 건 사망 전날(1월 30일) 오전 9시 30분께, 부인 김씨가 고인과 통화를 했을 때다. 민씨를 아는 한 금감원 환경·미화 직원은 "민씨가 사망하기 전날(1월 30일) 점심 시간에 사내식당에서 민씨를 봤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 후로 민씨를 봤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고 했다. 민씨가 다음날(1월 31일) 저녁 7시경 발견되기 전까지, 최소 하루를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홀로 방치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민씨의 딸 민아무개(36)씨는 "아빠가 매일매일 방문증을 발급받아 출입을 해야 했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한 금감원에서 왜 그날 아빠 방문증이 반납되지 않았는데도 아빠를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며 "아빠가 금감원에서 일하다 돌아가셨는데 금감원에서는 장례식장에 조문을 오기는커녕 지금껏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씨는 "CCTV를 보고 싶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보지 못했고, 경찰도 제대로 수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금감원이라고 쉬쉬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가족들 "원청, 사과 한마디 안 해"... 금감원 "용역업체 책임"
  
a

금감원에서 소독·방역 업무를 하다 홀로 쓰러져 지난 1월 31일 숨진 민아무개(68)씨 핸드폰. 1월 31일 오전 9시 45분경, 전날 방문증이 반납되지 않았다는 문자가 와있다. ⓒ 유족제공

 
금감원은 "민씨는 소독·방역 용역업체 소속 직원"이라며 용역업체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3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직원에 대한 관리 책임은 용역업체에 있다"면서 "고인에게 펌프실에 들어가라고 한 일이 없는데 고인이 임의로 들어가신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가족들의 CCTV 열람 요구에 대해 "CCTV를 보전해놓았고, 이것을 제공해도 되는지는 확인해보겠다고 한 상태"라고 했다.


다만 금감원 측은 '민씨가 쓰러진 시각이 몇시인지 확인됐나', '사망 전날 민씨 방문증이 반납되지 않은 것이 사실인가', '방문증이 반납되지 않았는데 민씨를 찾아보지 않은 이유는 뭔가', '가족들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나', '민씨 사망 이후 재발방지 조치가 있었나' 등의 질문에는 일체 답변을 거부했다. 경찰 측은 "현재 해당 사안에 대해 밝힐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민씨가 소속된 용역업체 측 역시 관련 답변을 하지 않았다.

금감원의 입장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원청인 금감원의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중대재해네트워크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해우 법률사무소)는 "고인이 금감원 소속이 아니라고 해도 원청인 금감원이 지배·관리하는 장소 내에서 근무했고, 매일 방문증을 발행해 출퇴근 여부를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씨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뇌출혈양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최근에 뇌출혈로 사망하는 경우는 많이 줄고 있다"라며 "일찍 발견만 됐다면 장애가 남을 수는 있어도 생명을 잃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금감원 #사망 #하청 #노동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창녀에서 루이15세의 여자가 된 여인... 끝은 잔혹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