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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주는 제주의 감자 걷이

승자독식을 당연히 여기는 세상은 불행

등록 2023.03.07 09:08수정 2023.03.0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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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감자를 캐는 할망들 제주도 구좌읍 종달리 겨울감자를 캐는 밭에서 ⓒ 김민수

 
제주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첫 번째로 맞이한 겨울, 고향 서울을 단 한 번도 떠나보지 못했던 서울촌놈에게 신기하게 다가온 것이 있었습니다.


한데서 푸른 채소들이 그냥 자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배추도 무도 그냥 한데서 겨울을 나고, 감자의 줄기와 이파리는 말랐지만 그냥 밭에서 겨울을 납니다. 시금치 같은 것은 물론이고, 상추도 텃밭에서 그냥 키워먹습니다. '이것이 남도에 사는 이들의 특권이구나' 싶기도 했고, 남도의 겨울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서울촌놈의 눈에는 신비함 그 자체였습니다.

가을에 심어 노지에서 겨울을 난 감자는 봄이 올 무렵에 수확하고, 수확을 한 후에는 표식을 두어 이삭줍기를 하도록 배려합니다. '이삭줍기'란, 수확을 하다가 떨어진 이삭을 줍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감자나 고구마 등을 캐고난 뒤에 미처 캐지 못해 남은 것을 거두는 일입니다.

그것은 밭주인의 몫이 아니라, 이삭줍기를 한 사람의 몫입니다. 성경에도 '추수할 때에는 모조리 가두지 말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들이나 떠돌이 나그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그들이 이삭을 주워서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사회적인 약자들을 배려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요,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주도도 그렇습니다. 품앗이하는 일꾼들이 일부러 남겨두는 것도 아닌데, 감자를 수확하고 난 뒤 이삭줍기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이들도 꽤 됩니다. 하루 8시간 정도 부지런히 이삭줍기를 하면 일당 정도가 나온다고 합니다.

물론, 숙련된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길 수 있지만, 저도 감자밭이나 당근 밭에 가서 한두 시간만 이삭줍기를 하면 20kg 박스 하나는 채울 수 있었습니다. 감자가 비쌀 때 20kg 한 박스가 얼마인지를 계산해보면 일당벌이가 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제주도의 농사법은 이웃을 배려하는 농사법이요, 더불어 살아가는 농사법입니다.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제주도는 열심히 땀흘려 일할 수 있는 몸과 마음만 있으면 그럭저럭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서울처럼 아주 못 살곳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우리를 끊임없는 경쟁체제로 내몹니다. 그래서 승자독식을 통한 각자도생으로 우리를 내몰고 즐거운 삶을 전쟁같은 삶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의 삶을 내면화 시킨 이들은 최선을 다하여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결국, 그 화살은 자기에게 돌아와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이런 신자유주의 시대가 강요하는 삶의 양식은 결코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삶의 양식은 제주의 감자걷이와 같은 삶의 양식입니다. 땅이 없는 사람도, 밭이 없는 사람도, 심지어는 씨앗을 뿌리지 않은 사람도 이삭을 주울 수 있는, 그런 배려로 인해 이삭줍기를 해도 부끄럽지 않은 삶, 이것이 더불어 삶이겠지요.

어려서부터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사교육으로 내몰리고, 유치원부터 순위경쟁을 시작하고,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의 삶을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간다면 이 나라의 미래도 희망이 없습니다. 교육이 백년지대계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현정부의 교육정책은 지속적인 경쟁, 승자독식의 방향을 고수하고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교육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것들을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피곤하고 고단한 일입니다. 그 피곤함과 고단함이 선을 넘으면 사회적인 질병이 되고, 우울이 되는 것입니다.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데 당장 눈 앞의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감자 걷이를 하는 제주의 농사법에서 뭔가 배울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너무 낭만적인 요구일까요?

해 뜨면 나갔다가 해질녘에 돌아오는 제주의 할망들, 밭주인이 추위타지 말라고 보라색 목도리를 하나씩 주었습니다. 밭주인들은 일꾼들에게 수건도 제공하고 간혹 이렇게 선물처럼 목도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일을 부리기 위해 부른 이들이 아니고, 다 알고지내는 이웃집 할망들이요, 어머니이니 종부리듯 하지 않습니다.

겨울 바람이 제법 차가웠던 어느 날, 그러나 돌담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는 봄빛에 물들어가고, 탐스러운 겨울 감자와 밭에서 울려퍼지는 흥겨운 노랫가락에 잔칫날 같은 날의 풍경, 한 점입니다.
#감자걷이 #이삭줍기 #제주도 #종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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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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