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진여객 춘양영업소에서 지금의 코리아와이드인 아진여객 춘양영업소를 맡았을 때이다. 당시에 춘양에는 대구·경북과 태백을 잇는 노선이 있었다. 안내양이 없어지면서 영업소에서 자율배차를 했다. *자율배차란? 승차권 확인과 승객운임징수업무가 기사 자율에 맡겨진 것을 말한다.
최명인
영업소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고객의 상당수는 예식장 하객들이었다. 지금은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춘양에는 두 개의 큰 예식장이 있었다. 삼광과 서울예식장에는 매 주말 4~5건의 예식이 있었고 시장통과 면내 거리는 북적거렸다. 하객들을 위한 대형식당은 두 곳뿐이었고 메뉴는 한우 불고기 백반이었다.
"한우가 당시 한 근에 만 오천 원에서 이만 원할 때 수입 소고기가 4~5천 원 선이었어요. 한우는 또 수입 소고기보다 질기기도 하니 '이거다!' 싶었어요."
청년은 즉시 소불고기 식당을 차렸다. 대박이었다. 돼지고기 뒷다리에 덕지덕지 붙은 못생긴 비계처럼 온갖 뒤숭숭한 이야기들이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수입축산물 전문점도 오픈했지요. 가격경쟁력이 엄청났어요. 매달 4~500킬로의 소고기를 팔았죠. 연 매출이 5억이 넘어갈 정도였으니까요."
억지 춘양시장 상인회에 입성했다
수입축산물점을 시작하며 그는 억지 춘양시장 상인회에 입성했다. 어린 시절에는 오로지 국가대표 유도선수만이 인생의 목적이자 종착지였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열차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 반드시 예정했던 종착역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인생(人生)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1950년대 자전거조차도 귀할 때 혼다 오토바이를 몰고 다닐 만큼 유복했던 어린 시절, 그러나 예상치 못한 파도의 고는 높았다.
"나이가 들어가니 아픔도 치유되고 고향이 더없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고향이구나 싶었죠. 파란만장한 젊은 날을 보내고 나니 이젠 내 고향에 뭔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상인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2021년 상인회장 취임 당시 시장에는 157개 상회가 있었고 상인회원은 57개였다. 지금은 157개 상회가 모두 회원이다.
"처음에는 상인회가 의무만을 가진 조직처럼 여기면서 상인들이 권리주장만 했었어요. 그런데 '해주세요!'가 아니라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로 바뀌더라고요. 정말 보람이고 기쁨이죠. 마음이 하나로 모여가는 것 같아요."
상인들은 설비자격증이 있는 그가 시장을 지나갈 때마다 고칠 것을 모조리 이야기한다. 얼어 터진 보일러도 전기도 모두 그가 직접 고쳐준다.

▲억지춘양시장 상인들과 함께 지난해 가을 야시장 개막 이후 상인들과 함께했다.
최명인
억지춘양시장, 문화관광형 시장에 선정되다
그의 바람처럼 억지춘양시장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주관하는 2023년 문화관광형 시장사업에 공모하여 선정되었다.
"2년짜리 사업으로 기간은 짧지만 우리 시장을 사람이 북적거리는 가고 싶은 시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단양군이나 타지역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볼 계획이에요"
국가대표 유도선수 유망주에서 해장국집으로 건설 현장으로 운수회사로 인생의 파도는 참으로 질곡이 많았나 보다. 스포츠 경기는 승부로 판가름하지만 인생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 살아봐야만 끝까지 가봐야만 아는 일이니 그러하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도 때가 되면 은퇴를 해야하는데 인생은 마지막 날까지 선수로 뛸 수 있다. 그의 인생 경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의 인생 최고의 순간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다. 그는 국가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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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공간구성을 위해 어떠한 경험과 감성이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지 연구해왔습니다. 삶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것이 저의 과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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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정해진 궤도 따라 가는 열차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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